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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야기] 차우진 대중음악평론가

최근에 소녀시대의 신곡이 발표되었다. ‘Gee’라는 곡은 등장하자마자 화제가 되었다. 물론 그들이 가장 많은 관심을 받는 아이돌 그룹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실제로 곡의 완성도나 수준이 기대 이상이었다. 나도 관심깊이 그 노래를 들었다. 곡이 시작되고 30초 만에 중독성 강한 코러스가 등장하는 구성도 그렇고, 빠르게 진행되다가 멈칫거리는 신서사이저 리듬도 매력적이었다.

아닌 게 아니라 최근 한국의 대중음악은 주류와 비주류를 막론하고 수준 이상의 결과물을 보이는 정도에 이르렀다. 그동안 주류 댄스 음악은 외국의 최신 트렌드를 베끼는데 치중하거나 인디 커뮤니티에서 발생한 음악은 곡의 퀄리티와는 별개로 태도 때문에 높은 점수를 얻는 경향이 있었던 게 사실이다.

그에 비하면, 지금의 한국 대중음악계는 그야말로 진검승부가 펼쳐지는 장이 되었다고 본다. 그건 꽤 흥미로운 관점이고, 또 그런 관점에서 소녀시대나 원더걸스나 빅뱅의 음악이 평가되어야 한다는 게 개인적인 입장이다.

▲ 소녀시대 ⓒSM엔터테인먼트
하지만 한편으로는 아직도 아이돌 그룹을 한국 대중음악계를 좀먹는 악이라고 보는 관점도 있다. 일부분 맞는 견해다. 생산과 분배의 관점에서 아이돌 그룹과 그런 그룹을 기획해내는 기획사는 언제나 쟁점이었다. 하지만 그런 관점은 필연적으로 대중음악을 이분법적으로 분리해보게 만든다. 그 기준은 진정성이다. 진정성이라는 건 음악이 음악 이상의 어떤 것이라는 관점의 산물이다. 물론 진정성을 전면적으로 부정할 수는 없다. 대중문화라는 건 복합적인 사회적 산물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대중문화라고 부르는 어떤 현상에는 산업적인 맥락과 예술적인 맥락이 동시에 존재한다. 거기서 창작자의 태도나 세계관, 가치관이 중심을 차지하는 건 맞는 말이지만 그게 부재한다고 해서 그 창작물이 쓰레기가 되는 건 아니다.

소녀시대의 음악에 진정성이 없기 때문에 가치가 없다고 말하는 건 20세기 초에 영어문화권의 대중문화를 지배한 재즈를 폄훼한 시선과 다르지 않다. 그러니까 진정성이라는 개념은 언제나 사회적인 맥락 안에서 유용한 개념일 뿐이지 절대적인 기준이 될 수 없다는 얘기다.

그래서 나는 최근의 한국 대중음악들이 정말로 흥미롭다. 소녀시대의 노래에 대해서 마음껏 얘기할 수 있기 때문이다. 몇 년 전이었다면 분명히 이 정도로 흥미롭진 않았을 것이다. 일본 대중음악이나 미국의 트렌드를 거론하면 그걸로 족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그런 경우가 많았다. 항상 표절 시비에 시달렸고, 대부분은 음악적 가치보다는 생산자와 수용자의 관계, 팬덤이라는 사회적 현상에 대해 말할 게 많았기 때문이다.

▲ 원더걸스 ⓒJYP

하지만 지금은 음악적으로도 흥미롭다. 거대 기획사에 소속되거나, 프리랜서로 작업하는 작곡가들이 만들어내는 비트와 소스들도 흥미롭다. 그것은 대부분 창의적이기도 하고 때때로 의미심장하기도 하다. 그런 변화들이 한국 대중문화에서 발생하고, 그 과정에서 대중적 커뮤니케이션이 벌어지고 있다는 과정을 확인할 수 있다는 것이 참으로 의미심장하다.

여기서 진정성을 거론하고, 어떤 기준을 들이대고, 그걸로 이쪽 편과 저쪽 편을 나누는 건 사실 무의미한 일이다. 대중문화의 발전(이라는 말을 좋아하진 않지만, 어쨌든)을 위한다면 더더군다나 유해한 일이기도 하다. 그건 문화 수용자들에게 어떤 가이드도 제시하지 못함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말하는 발언자들의 권위만 챙기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대중문화는 개인의 자기표현이자 산업의 결과물이다. 그 양쪽의 균형을 지키지 못할 때, 비평은 보다 나쁜 쪽에 가까워진다. 우리는 모두 음악 주변의 환경과 산업이 결코 평등하지 않다는 걸 알고 있다. 하지만 세상의 모든 음악은, 결국 동등하다. 그런 관점이 수용자로서의 우리를 자유롭게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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