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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뿌리 닷컴] 김욱한 포항MBC PD

1894년의 프랑스와 2009년의 대한민국.

115년의 시차를 두고 역사는 다시 한 번 희극적인 반복과 재연의 기시감을 우리들에게 던져준다. 이른바 ‘드레퓌스 사건’으로 일컬어지는 19세기말 유럽에서 벌어졌던 광기와 양심의 일대 충돌이 21세기의 대한민국에서 다시 벌어지는 현실을 지켜보는 심정은 참담하다.

1894년 9월 보불 전쟁에서 패배한 프랑스 군부는 패전의 책임을 면하기 위해 희생양으로 몰아갈 전범을 필요로 했다. 유태계 장교 드레퓌스는 그런 희생양에 적합한 인물이었고, 결국 드레퓌스는 비공개 군법회의에서 스파이 혐의로 종신형을 선고받는다. 그런데 그로부터 2년 뒤 진짜 간첩이 적발되었지만 이 사실 자체도 묵살 되고 만다. 

그리고 1898년 소설가 에밀 졸라가 “나를 고발 한다”라는 대통령에 대한 공개 서한을 통해 프랑스의 양심이 살아있음을 주장하고 파시즘 정권의 야만을 고발하면서 유럽 전역의 양심적 지식인의 투쟁을 이끌어내게 된다. 

어딘가 닮아도 많이 닮지 않았는가?

▲ 한겨레 1월12일자 4면.
국가 경제를 송두리째 흔들어놓은 주역들은 따로 있는데 단 한명의 나약한 글쟁이를 희생양 삼으려는 폭력적 음모가 그렇고, 개인의 말과 글은 물론이고 생각과 사상까지 검열하고 탄압하려 드는 양태도 그렇다.

솔직히 두렵다. 내가 미네르바라는 사실을 밝히는 것도 두렵고, 어느 날 경찰과 검찰이 나를 연행 혹은 구속할지도 모른다는 것도 두렵다. 또 경찰과 검찰의 폭력을 법원은 태연히 눈감아주고 영장을 발부해 줄 거라는 사실도 두렵다.  그리고 가장 두려운 것은 이제 어느 누구도 차마 자기의 진심을 말 할 수 없는 그런 날들이 올지도 모른다는 사실이다.

단언하건데 나는 ‘미네르바’다. 미네르바가 인터넷 공간에서 얘기했던 수많은 주장들에 대해서 심정적으로 동조했고 또 그의 주장을 수없이 많은 주위 사람들에게 전달했으니 말이다. 또한 그 이전에 정부로부터 검열 받지 않은 나의 생각과 사상을 남들에게 떳떳하게 혹은 겁 없이(?) 얘기한 적이 많으니 분명 나는 불온하고 위험한 ‘미네르바’다. 현 정권의 기준으로 봤을 때 반정부적인 생각을 하는 그 순간, 정권을 향해 비판적인 담론을 입 밖으로 내뱉는 그 순간, 우리 모두는 미네르바임을 자백하거나 권력의 처벌을 기다리는 예비 범죄자가 되어야한다. 우리가 미네르바일수 밖에 없는 이유다.  

내가 그리고 우리 모두가 미네르바임은 분명해졌다.  여기서 더 나아가야한다. 우리 모두는‘에밀 졸라’가 되어야한다. 그리고 “나를 기소하라”고 외쳐야한다. 자기가 ‘살아있고, 생각하고, 양심을 느끼는’ 인간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모두 에밀 졸라의 외침에 귀 기울여야한다. 야만에 맞서는 양심의 싸움에서 진다면 우리 모두는 날개가 꺾이고 재갈이 물린 말 못하는 미네르바의 부엉이로 살아가야하기 때문이다. 권력과 폭력에 유린당하는 야행성 부엉이로 살 것인가? 권력에 맞서 당당히 양심을 지키는 ‘졸라’로 살아갈 것인가? 이 두 갈림길 외에 다른 길은 없어 보인다.    
드레퓌스 사건의 결말은 어떠했을까?

▲ 김욱한 포항MBC PD
드레퓌스 재판 후 10년이 지난 1906년에 프랑스 대법원은 무죄 판결을 내리게 된다. 또한 처음에는 드레퓌스의 처벌을 옹호하던 언론이 나중에 가서는 그를 살려낼 것을 주장함으로써, 언론 특유의 카멜레온적 속성을 드러낸다. 그리고 1995년, 드레퓌스 사건 이후 100년만에 처음으로 프랑스 군부는 드레퓌스 대위가 무죄라는 사실을 공식 인정했다고 한다.

역사는 반복되고, 모든 역사는 현재 진행형이라는 말의 무게가 새삼 무겁게 다가온다. 그래도 조용히 되뇌어본다. 

“내가 미네르바다. 나를 기소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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