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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석훈의 세상읽기]

▲ 우석훈 연세대 문화인류학과 강사 (88만원 세대 저자)
올해로 학위 받은 지 14년째가 된다. 10년째가 되었을 때 크게 깨달은 바가 있어서 교수되는 것을 포기하고, 책을 써보기로 마음을 먹었다. 그리고도 또 몇 년이 지났는데, 도대체 내가 14년 동안 한국에서 뭘 한 것인가 생각해보면 정말로 아득하기도 하다.

14년차 강사, 참 듣기만 해도 등골이 서늘한 얘기인데, 내가 그렇다. 중간에 따져보면 2년 정도 강의를 잠깐 쉬었던 적도 있었는데, 어쨌든 14년째 나는 계속해서 대학의 시간강사로 살아왔으니까, 최소한 학생들을 가르치는 법에 대해서는 나름대로 일가견이 생길만하기도 한데, 학생들을 가르치는 것은 여전히 어려운 일이고, 점점 더 어려워지기는 한다.

‘스펙 쌓기’의 굳은 결심을 한 학생들에게 “세상에는 그런 거 말고도 뭔가 있을 수 있지 않겠니?” 이 질문을 처음 던질 때, 솔직히 등 뒤에서 식은땀이 흐른다. “저 새끼 뭐라는 거래?” 이렇게 수군수군할 소리가 환청처럼 들리는 듯하다.

박사라는 단어에 대해서도 별의별 말이 있기는 한데, 넓을 박(博)이 아니라 엷을 박(薄)자를 써서 ‘薄士’라고 하던 농담이 제일 재밌었다. 넓게 아는 사람이 아니라, 얇게 아는 사람. 물론 넓게 알면서도 깊게 알면 제일 좋겠지만, 현실적으로는 좁게 알면서도 깊게 아는 것들을 많은 박사들은 지향한다.

가장 슬픈 것은, 좁게 아는데 그것도 얇게 아는 것, 이 상황은 최악이다. 물론 자조 섞인 말로, 박사들끼리 모이면 사실 우리는 넓게 아는 사람이 아니라, 얇게 아는 사람들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한 마디만 더 추가하면, 우리끼리는 전문가라는 말을 욕으로 이해한다. 아는 것도 별로 없고, 영혼도 없으니까, 세상이 우리를 ‘학자’나 ‘지식인’ 취급하는 게 아니라 기능인으로서의 ‘전문가’ 취급하는 거 아니냐. 그런 말들이 좀 있다.

같은 비유를 PD나 기자들에게 적용해보면, 이 사람들도 넓게 아는 사람들에 해당하니까, 넓은 의미의 박사라고 할 수 있고, 또한 언론이나 방송 분야에서는 전문가이니까 학자들끼리 하는 고민을 어느 정도는 공유한다고 할 수 있다. 자, 이제 본론으로 들어 가 보자.

지난 14년 동안 변하게 된 가장 큰 풍속도 하나만을 들어보자면, 지하철에 있던 신문가판대가 사라져버렸고, 서울 지하철에서는 더 이상 신문을 읽는 사람을 볼 수가 없게 됐다는 변화가 있다. 물론 교통량과 이동량 통계를 보면, 14년 동안 지하철 운송승객수가 줄어든 흔적은 없으니, 그냥 사람들이 신문을 더 적게 보게 되었다는 사실 하나가 변한 셈이다.

지하철에서 책 읽는 사람을 보기 어렵다는 것은, 14년 전이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이다. MP3는? 그 때도 워크맨 꼽고 다니던 사람이 많았으니, 꼭 MP3나 DMB 때문에 신문을 덜 본다고 말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이와 대비시키고 싶은 풍속도가 하나 있다. 작년 여름에 요코하마역에 내렸다가 문예지까지 전부 다 갖춘 큰 서점이 역사에 하나 있는 것을 보고 절망한 적이 있다. 웬만큼 큰 지하철 역사에 책방이 하나씩 서있고, 그것도 몇 개 남지 않은 한국의 사회과학 서점만큼이나 전문적인 책들을 갖춘 나라, 이 나라를 무슨 수로 따라잡고 이길 것인가? 최근 일본 기자들과 PD들을 만날 일이 좀 잦았는데, 한국의 기자들과 PD들과 비교해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내가 느낀 차이점을 차마 입으로 토설하기 민망하다.

한국의 PD와 기자들은 대개 ‘얕지만 넓게 아는 사람들’로 정의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러나 불행인지 다행인지, 딱 한 집단이 ‘좁고 깊게 아는 기자들’이라고 할 수 있어 보인다. 중앙일보 기자들 얘기이다. 어쩌면 그렇게 사주의 이익 딱 하나를 그렇게 ‘좁으면서도 또한 깊게’ 알 수가 있을까? 해도 해도 좀 너무 하다 싶다. 공익도 좀 생각하고, 진실도 좀 생각하고, 한국 사회의 장기적 발전 같은 것도 좀 생각하는 박사가 아니라, 너무 좁게 사주의 이익만을 깊게 생각하는 것 같다. 좀 심하지 않나?

신년, 〈PD저널〉이라는 아직은 익숙지 않은 신문에서 연재를 시작하게 됐다. 이 매체를 보는 모든 PD와 기자들 그리고 언론 관계자 여러분, 올해는 여러분 삶에 ‘넓고 깊게 하는’ 전기를 가지게 된 한 해가 되기를 빈다.

그리고 연재하는 동안, “당신들 이러면 안 된다”라고 듣기 싫은 얘기만 하는 악동 역할은 확실히 해드리겠다. 그래서 사람들 손에 신문이 들리고, 책이 들리고, “한국 방송은 확실히 다르다”라는 긍정적 평가가 절로 사람들 입에서 나오는, 문화 한국을 만들어봅시다. 조금만 이상하게 하면, ‘좁게 깊게 아는 분’이라는 미사일을 확실히 날려드리겠다. (중앙일보 기자 여러분들, 한 번 잘 해보십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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