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영방송 광고폐지=사르코지의 ‘방송장악’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글로벌] 파리 = 이지용 통신원

현대 사회에서 방송미디어의 지배력과 영향이 신문미디어를 앞서는 것은 세계적인 추세다. 때문에 많은 민주주의 국가들에서 대중 여론에 대한 방송미디어의 책임을 인식하고 특정한 집단이나 세력이 독과점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해왔다. 방송의 공영성과 사회적 책임성을 가장 중요하게 판단한 것이다.

그런데 최근 들어 소중하게 지켜온 이러한 가치관이 심각하게 훼손될 상황들이 나타나고 있다. 신자유주의의 기치 아래 공영방송 마저도 시장의 논리와 잣대로 재단하려는 미디어 정책들은 어떤 미사여구를 붙인다 해도 결론적으로 보면 ‘법으로 재갈을 물리고 자본으로 관리하겠다’는 발상이다.

▲ 언론·시민단체들로부터 ‘방송장악’ 비판을 받고 있는 니콜라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

지난 연말 한나라당은 신문방송겸영을 골자로 하는 방송법 개정안을 들고 나왔다. 신문방송겸영이 가능하고, 대기업뿐 아니라 외국자본까지 방송진입을 전면 허용하는 것이 방송법 개정안의 대표적인 내용이다. 게다가 TV 수신료를 국회에서 관리하겠다는 공공방송법까지 통과되면, 공영방송의 앞길은 사면초가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에 MBC, SBS 를 비롯 전국언론노조의 방송사들은 강력하게 반기를 들고 총파업을 선언했다. 그런데 이 같은 방송미디어에 대한 문제는 비단 한국에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연초부터 프랑스에서도 공영방송노조들의 파업이 잇따르면서, 이른바 ‘사르코지의 방송장악’ 저지 투쟁에 나섰다.  

2009년 새해 첫 주 월요일 저녁 8시 35분, 프랑스 공영방송에서 광고가 사라졌다. 이른바 사르코지 방송법이 지난 연말 의회를 통과, 2009년 1월 5일 저녁 8시 30분부터 시행된 것이다. 사르코지 대통령은 지난 해 6월 프랑스 공영방송에 대한 변화를 주장했고, 그 내용은 크게 두 가지로 볼 수 있다.

2009년부터 저녁 8시 이후 모든 공영방송의 광고금지와 공영방송사 사장 임명권을 정부가 가지겠다는 것이다. 공영방송의 광고금지는 차츰 확대해 2011년에는 전 시간대에 광고를 금지하겠다고도 했다. 사실 사르코지 방송법 역시 현재 한나라당이 주장하는 것처럼 미디어경쟁력의 강화와 방송의 다양성을 주창한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말하자면 ‘공식적인 이유’에 불과하고 사실 진짜 이유는 따로 있다.

왜냐하면 이 법안으로 프랑스 민영방송 TF1, M6와 유선방송 TNT, Direct8 등이 약 5천만유로 이상의 반사이익을 받을 것이고, TF1의 사주, 마탕 부이그와 TNT의 뱅상 볼레로는 사르코지 대통령의 절친한 친구들로 알려져 있기 때문이다. 강력하고 부자 친구들을 둔 사르코지의 정책은 방송의 공영성과 공정성 보다는 친구에게 의리를 지키는 것이 됐다.

이 법안으로 프랑스 공영방송 3개의 채널은 재정패닉 상태가 될 것이라는데, 지난 2007년 조사결과 총 예산의 약3분의 1(82300만 유로, 2007년도 집행예산)이 광고수익에 있었던데 반해 새로운 방송법으로는 이를 보장받을 수 없기 때문이다. 광고가 사라진 이틀 후인 지난 수요일, 공영방송 F2와 F3 채널 노동조합이 파업을 시작했다. F3 채널은 국회 앞에서 농성을 하며, 24시간 방송파업도 예고했다.

개정안에 따르면 앞으로 매년 방송예산은 정부의 심의를 받아야 하고, 나아가 사장의 임기도 보장받지 못 할 것이 불 보듯 뻔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문제는 공영방송으로만 끝나는 것이 아니라 AFP와 같은 국제통신사도 민영화 수순을 밟을 것으로 보여 프랑스 언론방송계의 대대적인 저항이 시작됐다. 법이 국회를 통과해 실행되고는 있지만, 사르코지 정부가 원하는 ‘그들만의 방송장악’은 쉽지 않을 듯하다.

공교롭게도 비슷한 시기에 드러난 한국과 프랑스의 방송정책 방향은, 지난 부시정권에서 표명해오던 신자유주의의 결과물이다. 그러나 단순히 방송미디어를 경쟁력이라는 이름으로 시장화 시키려는 그 이면에는 사회여론의 획일화와 자본의 논리로 여론을 소유하겠다는 검은 욕망이 있다. 이를 신자유주의 정부가 적극적으로 추진하려는 이유는, 정경유착의 단면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으로써, 정치가 더이상 자력으로 여론을 통제할 수 없는 현 시대에서 자본의 힘을 빌려 보다 더 큰 영향력을 행사하려는 전략인 것이다. 이는 곧 현대 민주사회의 근본이 흔들릴 수 있음을 시사한다.

▲ 파리 = 이지용 통신원 / KBNe France 책임 프로듀서

자유 민주주의 사회의 구성원은 시민이다. 사전적으로, 의사결정시 전체적인 구성원의 의사를 반영하는 정치체제다. 그런데 시민의 자리가 시장논리에서의 소비자로만 인지되면서, 경영, 관리, 기업, 유연성, 경쟁력과 같은 기업적 의미들이 민주주의 사회의 가치관을 오염시키고 있다. 삶의 부조리를 논하던 프랑스철학자 알베르 까뮈는 “나쁘게 규정되는 일들은, 그 세상에 나쁜 시간을 가져온다”라고 했다. 우리가 민주주의 사회를 유지하기 위한 기본 원칙을 버리고, 그 자리에 기업, 경영, 관리, 경쟁력이라는 의미를 사회 모든 것들에 부여한다면 이후 우리에게 다가올 미래는 어떤 시간들이 될 것인지 깊이 숙고해야 한다.  

 

저작권자 © PD저널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모바일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