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법 개정, 그 짝퉁경제학의 민망함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윤성도 PD의 온에어 오프에어]

▲ 윤성도 KBS PD
지난 토요일 밤에 심야토론에서는 방송법에 관한 내용이 다뤄졌다. 요즘 방송법개정을 둘러싸고 국회에서 사생결단이 벌어지고 방송사들이 파업을 하면서 부쩍 화면에 자주 등장하는 나경원 의원을 비롯해 선문대의 황근 교수, 뉴라이트를 이끌고 있는 ‘공정언론시민연대’ 이재교 대표가 방송법 개정이 왜 필요한지에 대해 상대 쪽과 열띤 토론을 벌였다.

요는 신문과 재벌의 방송 진출이 방송을 산업화해 궁극적으로 경제를 살린다는 논리였는데,  과연 그 분들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지 묻고 싶다. 나도 알고 있고 너도 알고 있는 사실이지만 이미 방송시장은 과포화상태로 재벌이나 신문이 뛰어든다고 해서 시장이 갑자기 커질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케이블은 이미 40여개가 넘는 채널이 난립을 하고 있지만 동시간대에 〈사랑과 전쟁〉 같은 프로그램이 대여섯 군데에서 방송될 정도로 콘텐츠는 빈약하고, 시청률 집계가 무의미할 정도로 실제로 시청이 되는 채널은 몇 군데에 불과하다.

공중파 역시 전반적으로 시청률은 조금씩 하락을 하면서 광고수입은 줄어들고 있다. 더군다나 경제성장률이 갈수록 둔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광고판매는 하락하는 추세를 보일 수밖에 없다.

그런데 재벌과 신문이 방송에 진출하면 한국의 방송이 세계적 경쟁력을 갖추게 되고 해외에서 대박 나는 프로그램이 뻥뻥 터지고 젊은이들이 선망하는 방송 일자리가 많이 많이 생긴다?

▲ KBS 1TV <생방송 심야토론> ⓒKBS
물론 어찌어찌해서 이런 장밋빛 미래가 펼쳐지지 말란 법은 없다. 하지만 이런 불확실한 전망을 믿고 운명을 거는 것은 5년 후 집값이 폭등할 테니 적금 깨고 결혼자금 깨고 대출 3-4억 받아 강남에 집사라고 부추기는 것과 같다.

재벌이나 신문이 MBC를 인수하든, 공중파방송사를 따로 만들든 방송시장이 갑자기 커지는 일은 결코 일어나지 않는다. 차려진 밥상에 손님이 몇 더 온다고 해서 밥의 양의 더 늘어나지는 않는다.

몇몇 신문들은 MBC의 파업을 보도하면서 예의 그 '밥그릇싸움'론으로 몰아가고 있다. 어쩌면 틀린 말은 아닐지도 모른다. 공영방송이라는 밥그릇을 시청자와 국민의 손에 그대로 놔둘 것인가, 아니면 몇몇 보수 신문과 재벌에 갖다 바칠 것인가 하는 밥그릇싸움일 수도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남의 밥그릇싸움에 끼어들어 직권상정을 해서라도 법안을 통과시키겠다고 죽기 살기로 덤벼드는 한나라당은 또 뭔가? 예로부터 먹는 걸로 장난치지 말라고 했거늘..

재벌과 신문이 굳이 방송에 진출해야 하는지에 대한 좀 더 정확한 이유는 심야토론 말미에 이재교 대표가 정확하게 언급을 했다. MBC같은 방송은 편파적이고 정파적이었기 때문에 공영방송으로서의 자격이 없고, 때문에 민영화로 ‘개혁’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 지상파 방송3사
교과서에도 나와 있고 우리가 경험적으로 충분히 알 수 있듯이 선진화된 나라일수록 공영방송은 권력과 자본보다는 시민의 이해와 가치를 대변할 수밖에 없고 자유주의적이고 진보적인 색채를 띠게 된다. 반면 상업방송은 자본의 이익을 대변해 보수화될 수밖에 없다. SBS에서 〈이제는 말할 수 있다〉, 〈미디어포커스〉, 〈시청자칼럼〉같은 프로그램을 찾아보기 힘든 것은 SBS의 PD나 기자들이 보수적이서가 아니라 SBS가 상업방송으로서 가질 수밖에 없는 특성 때문인 것이다.

지난 10년간 우리나라의 공영방송은 몇몇 시시비비도 있었지만 이런 변화과정을 정상적으로 거쳐 왔다. 이 상태로 10년이 더 지난다면 아마 한국의 공영방송은 영국이나 독일에 못지않게 독립성을 완전히 갖춰 명실 공히 자본과 권력에 휘둘리지 않는 Public 방송이 될 것이다.

그런데 한나라당과 보수 신문들은 그게 싫은 것이다. KBS 1TV는 NHK처럼 야성을 잃고 점잖기만 한 방송으로 만들고, 나머지 방송은 이심전심 보수적인 방송을 만들고 싶은 것이다.

나경원 의원 같은 분은 만약 그렇게 된다 하더라도 그것은 시청자들이 판단할 문제고, 만약 민영화가 돼서 편파적인 방송을 하더라도 시청자들로부터 외면을 받을 것이기 때문에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한다.

그럼 도대체 미네르바는 왜 구속이 된 건가? 미네르바가 그렇게 거짓말로 혹세무민하는 자라고 해도 네티즌들로부터 외면당하고 시장으로부터 걸러진다면 구속을 할 필요가 없을 텐데 말이다.

이젠 정말 솔직해지자. 재벌이나 신문의 방송진출이(사실 지금도 재벌이나 신문은 방송에 이미 진출해 있는 상황이다. 문제는 ‘보도’를 할 수 있는 권한을 달라는 것이다) 경제 살리기니 민생법안이니 하는 민망한 주장은 집어치우고 우리나라의 공영방송 체제에 과연 어떤 문제가 있는지, 어떻게 해야 우리사회가 더 자랑스러운 공영방송을 가질 수 있는지 진지하게 토론을 해야 한다.

그랬을 때 발의 한 달 만에 4대강 첫 삽 뜨듯이 개정을 밀어붙이겠다는 식의 행동은 나오지 않을 것이다.

※ 이 글은 윤성도 PD 블로그에 실린 글입니다.. [윤성도 PD 블로그 바로가기]

저작권자 © PD저널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모바일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