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근거로 우리의 투쟁을 ‘노예근성’이라 말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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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계에서] 윤지혜 독립PD

다음글은 지난 1월9일 동아일보에 게재된 변희재 씨의 ‘방송 귀족들에 빼앗긴 영상세대의 꿈’에 대한, 독립PD의 반론글입니다.

열 손가락 깨물어 안 아픈 손가락 없다는 속담은 이제 옛말이 되었다. 나는 그 열 손가락에도 못 드는 비정규직 ‘독립 PD’다. 또한 20대로 88만원 세대다. 최근의 경제 위기 때문에 그런 내 처지에 불안해하고 있던 차에 ‘방송노조 파업에 동참하는 것은 노예근성’이라고 말하는 변희재 씨의 칼럼은 정말이지 분통을 터뜨리지 않을 수 없었다.

흘낏 보면, 언론법 개악에 반대하는 언론노조의 파업은 ‘독립 PD’들의 이익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그 파업은 열악한 방송의 현실을 한층 더 악화시키려는 시도에 맞서 싸우는 것임은 분명하다. 변희재 씨는 지난 9일 〈동아일보〉에 연재한 칼럼에서 “새롭게 시장에 진입할 방송사라면 불필요한 인력을 직접 고용하지 않고 창의적 외주업체에 제작을 맡기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현실은 오히려 그 반대에 가깝다.

▲ 동아일보 1월19일자 26면

방송사 인수에 많은 이해관계가 있는 보수 언론은, 노동자들 사이의 경쟁을 더 심화하라고 주문한다. 그들이 지금과 같은 경제 위기에 자신들의 회사에서 입찰 경쟁을 심화시켜 고수익을 창출하려 하지 않겠는가? 이는 외주제작자의 노동 조건을 악화시키는 방향이지, 그 반대가 아니다. 실제로 방송사들은 외주제작자들과 정규직을 서로 분열시켜, 그들 모두의 노동조건을 더 악화시키는데 사용한다. 외주제작PD들은 대체로 협찬금 마련을 위해 고생했던 기억들을 가지고 있다. 방송사에서 입찰 경쟁이나 방송사 자체 제작을 언급하면서 제작비 삭감을 강요하기 때문이다. 정규직에겐 외주로 전환하겠다고 은근 협박한다. 그러면서 임금삭감과 감원을 노동조합에 흘린다.

변희재 씨의 주장과는 다르게, 언론법이 개악되면 방송인의 삶은 더한층 경쟁의 궁지에 내몰리게 된다. 자본을 가진 사주들은 새로운 방송사를 설립보다는 기존 신문/방송사를 인수·합병하는 방식으로 자본 규모를 키우는 투자를 할 가능성이 더 높다. 이는 IMF긴급금융구제 당시 수많은 인수합병 사례에서 드러났다. 대규모 감원과 노동조건 공격, 제작비 삭감 으로 밀려난 정규직은 ‘방송계 피라미드의 최약자’인 외주제작자가 될 뿐이다.

프로그램도 경쟁 논리에 내던져진다. 투자 대비 시장성이 부족한 프로그램은 프로그램의 가치를 떠나서 바로 ‘퇴출’될 것이며,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은 투자자를 찾지 못하게 될 것이다. 경쟁에서 낙오된 자, 가난한 자들의 삶은 세상 어디에도 없으며, 방송과 신문과 인터넷에서 이들을 위한 단 한마디, 단 한 줄의 배려는 설 자리를 잃고, 그 자리를 대기업과 정부의 입맛에 맞는 프로그램만이 차지하게 된다. 이명박 대통령이 즐겨 인용하는 프랑스에서도 공영방송이 기업에 넘어간 후 제작비가 감소하고 프로그램 질이 떨어졌고, 이탈 리아에서도 ‘언론 재벌’에 넘어간 언론들의 사정도 악화 일로를 걷고 있다.

▲ 윤지혜 독립PD
그러기에 언론노조 파업을 지지했던 독립PD들의 행동은 ‘노예근성’이 아니라 방송에 대한 ‘주인의식’이다. 나는 언론 노동자들의 투쟁이 더 강력해지고 더 많은 외주제작PD와 작가들이 언론법 개악에 반대하는데 나서, 이 투쟁이 방송의 사회 공공성을 강화하고, 외주제작사인력의 임금과 노동조건을 안정되게 나아갈 필요가 있다고 본다. 그리고 그러기 위해 “386세대는 가는 것”이 아니라, 나와 같은 2030 젊은 영상세대들이 더 나은 방송을 위해 싸울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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