늙은 농부와 소, 서로 닮은 그들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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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다큐멘터리 ‘워낭소리’

▲ <워낭소리> 포스터.

다큐멘터리 <워낭소리>는 평생 땅을 믿고 살아온 팔순 할아버지와 그의 ‘오랜 친구’ 마흔 살짜리 소의 이야기다. ‘워낭’은 소의 턱 밑에 달린 작은 종을 뜻한다. 할아버지는 귀가 어둡지만 30년간 함께해 온 소의 워낭소리는 금방 알아챈다.

경북 봉화의 한 산골마을에 살고 있는 최원균 할아버지와 이삼순 할머니에게는 오랜 시간을 함께해온 소 한 마리가 있다. 해가 뜨면 논에 나가 일을 하고 해가 지면 집에 돌아오는 노부부에게 소는 충실한 일꾼이요, 소가 끄는 달구지는 유일한 이동수단이다.

30년을 함께한 할아버지와 소는 많이 닮았다. 서로의 주름진 얼굴을 뚱한 눈으로 바라보는 모습이나 불편한 왼쪽다리를 절뚝거리며 걷는 할아버지와 늙은 소가 발맞춰 걸어가는 장면은 영락없다. 최원균 할아버지는 행여 소가 먹고 죽을까 논에 농약을 치지 않는 ‘쇠고집’이고, “소를 팔고 편하게 살자”는 할머니를 ‘소 닭 보듯’ 한다.

할머니는 내레이션이 따로 없는 <워낭소리>의 내레이터 역할을 한다. 소를 끔찍이 여기는 할아버지에게 늘 “영감 잘못 만났다”며 신세한탄을 늘어놓지만, 할아버지와 소에 대한 속정은 깊다. 몸져누운 할아버지에게 “영감 가면 나도 가야지”라고 말하고, 막상 소를 팔러 나서는 길에는 고개 돌려 눈물을 훔친다.

세상 떠날 때까지 계속될 것 같던 그들의 ‘삼각관계’에도 끝이 찾아온다. 소의 상태를 확인한 수의사는 할아버지에게 “이제 마음의 준비를 하시라”고 일러준다. 거친 손으로 코뚜레와 워낭을 풀어주는 할아버지의 표정에는 오랜 친구를 떠나보내는 깊은 슬픔이 배어있다.

어찌 단순한 짐승일 수 있겠는가. 장터에서 돌아오다 달구지에서 잠든 할아버지를 “알아서 차를 피해” 집 앞에 데려다 놓고, 자기가 팔려가는 것을 직감하고 눈물 흘리는 이 소를 말이다. 말수가 적은 할아버지의 “사람보다 낫다”는 자랑은 괜한 것이 아니었다.

▲ ⓒ<워낭소리>

일흔 살 넘은 노부부와 소의 이야기라니 ‘안 봐도 지루할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오산이다. 할머니가 툭툭 내뱉는 ‘독설’에 웃다가 소를 따라 눈물 찔끔 흘리다 보면 러닝타임 1시간 15분은 지루할 새 없이 흐른다.

게다가 아픈 몸을 이끌고도 소에게 먹일 꼴을 베러 나가는 할아버지, 할아버지와 소의 관계를 질투하는 할머니, 늙은 소를 대신할 젊은 소가 들어오면서 벌어지는 일 등 <워낭소리>는 극적인 요소도 충분하다.

촬영이 낯선 노부부에게 카메라를 들이대기보다는 먼발치에서 이들을 지켜보는 이충렬 감독의 우직한 연출도 소를 닮았다. 이충렬 감독은 5년 동안 소와 할아버지를 찾아다니다 2005년 최원균 할아버지와 늙은 소를 만나 3년에 걸쳐 촬영했다.

부산국제영화제 최우수 다큐멘터리상 수상, 선댄스 영화제 초청으로 주목받은 <워낭소리>는 지난 15일 전국 7개관에서 개봉했다. <워낭소리>는 높은 좌석점유율을 보이며 상영관을 20개로 확대했고, 벌써부터 독립 다큐 흥행의 전통을 이어갈 작품으로 주목받고 있다. 혹시 할아버지 할머니의 억센 경상도 사투리를 못 알아들을까 걱정된다면 100% 자막이 제공되니 염려마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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