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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과 인권] 최성주 언론인권센터 상임이사

‘미네르바’ 검거와 구속으로 모욕과 비판의 경계에 대한 논란이 뜨겁다. 한편에선 검거된 박모씨가 진짜 미네르바가 아니라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하지만 인터넷상의 이슈나 토론에 대한 시시비비는 시민들의 합의와 공감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는 수많은 전문가들의 의견도 무시한 채, 마치 고지를 향해 달려가는 것 같은 당국과 검찰의 태도는 자칫 무모해보이기까지 한다.

더구나 이 인터넷 논객 ‘미네르바’가 예상했던 고학력의 경제전문가가 아니라 무직에 전문대 졸업이라는 사실 하나에 모든 매체가 들썩거렸다. 그리고 언제나 그렇듯이 우리 언론은 한발 더 나아가 그의 주변을 저인망식 그물처럼 샅샅이 훑었다. 그가 어느 동네에, 지은 지 몇 년 된 빌라에 살고 있는지 사진에 동그라미까지 쳐서 확인시켜주는 신문과 그의 집 현관 문 손잡이를 비틀어 보여주는 TV카메라도 있었다. 또 비록 이니셜로 처리했다고 해도 그가 다닌 고등학교와 대학을 보여주며 고교 등수와 대학시절 수강과목과 학점도 알려주었다.

▲ 한국일보 1월 20일 6면
그의 아버지가 해외봉사활동 중이라 통화가 어렵다는 여동생의 인터뷰에 성공하고, 고교동창, 대학동창들을 만나고 고교담임, 대학교수들의 평가도 들려주었다. 그러나 그렇게 모든 언론이 총동원되다시피 하며 찾아낸 그의 개인 신상에 관한 정보는 그가 몇 달 동안 방에서 인터넷에 글을 올렸다거나 눈에 띄지 않는 평범하고 학생이었다는 정도에 불과했다. 택배가 많았다거나 평소 착실한 청년이라는 이웃주민의 인터뷰가 덧붙여져도 겨우 그런 결과물들을 위해 기자들이 지불했을 시간과 노력이 안타깝다 못해 눈물겹다.

여성월간지 한두 페이지면 족할 것 같은 이런 기사들을 생산하는 한편에서는 사설과 칼럼을 통해 그가 눈먼 동물이라는 원색적인 표현 등으로 노골적인 저주와 모욕을 퍼부으며 인신공격도 서슴지 않았다. 더군다나 연쇄살인범이나 영아유괴범, 뇌물을 받은 공무원도 아닌 피의자에 대한 이러한 과도한 노출은 법률에 보장된 개인의 인격권과 사생활보호의 범위를 침해하는 보도행태이다.

국민의 알권리를 이유로 언론의 자유가 무한대로 보장되지는 않는다. 우리 법률은 형사피의자나 형사피고인의 인권도 무죄추정의 원칙(헌법 제27조 제4항)과 피의사실 공표죄(형법 제126조, 형사소송법 제198조)를 통해 보호하고 그 한계를 규정하고 있다. 또한 우리 헌법은 ‘언론·출판은 타인의 명예나 권리 또는 공중도덕이나 사회윤리를 침해하여서는 아니된다. 언론·출판이 타인의 명예나 권리를 침해한 때에는 피해자는 이에 대한 피해의 배상을 청구할 수 있다.(제 21조 4항)’고 그 책임의 한계도 분명히 규정하고 있다. 또한 신문법 (제4조 제4항)과 언론피해구제법(제4조 2항)에서도 언론에게 인간의 존엄성과 가치존중, 그리고 언론의 사회적 책임을 재차 강조하고 있다.

▲ 최성주 언론인권센터 상임이사

이런 이중삼중의 법적규제에도 불구하고 어떤 사안이 생길 때마다 무차별적 쏟아지는 언론보도는 언론권력이 초법적 영역이라는 비판을 초래하는 자승자박이 될 우려가 크다. 검거 당시 그가 했던 말처럼 미네르바라는 이름의 한 청년이 앞으로 정상적인 사회생활을 할 수 있을지 걱정하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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