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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뿌리 닷컴]

비슬산의 한 자락으로 원래 이름은 대덕산이지만 대구사람이면 누구나 그저 편하게 ‘앞산’이라고 부른다. 높지도 낮지도 않은 산세에, 대구 어디서든 남향으로 난 창문만 열면 한 눈에 산자락이 펼쳐져 시야를 맑고 시원하게 해준다. 팔공산이 근엄한 아버지처럼 기세등등하다면 앞산은 포근한 어머니의 치마폭 같다.

그 친근함에 봄, 여름, 가을, 겨울 할 것 없이 소풍객, 등산객이 들이닥치고 인구 250만 도시가 만드는 온갖 소음과 소란에도 묵묵히 제 자리를 지켜왔다. 아마 수천 년은 족히 넘게 달구벌을 내려다보면서 사람들이 무슨 짓을 하건 무슨 일을 벌이건 다 품어주고 감싸주었을 터다.

그런데 그 산이 지금 신음소리를 내고 있다. 사람들이 그 몸통에 구멍(터널)을 뚫고 자기 편리를 위해서 도로를 내겠다고 나선 것이다. 무려 4km나 되는 구멍을 말이다. 도로는 차고 넘치는 데도 더 빠른 길, 편리한 길을 욕심 부린 지방정부가 앞장서고, 도로만 닦아 주면 건설비와 수익금은 통행료와 세금으로 보전 받는 말 그대로 ‘땅 짚고 헤엄치기’에 건설회사가 맞장구를 친 결과다.

일은 거칠 것이 없어 보였다. 환경단체와 주민들이 들고 일어나 반대를 해보았지만 법과 절차를 앞세운 행정은 그마저도 굴복시켰다. 이제는 굴삭기와 중장비를 동원해 수령을 알 수 없는 나무들을 베어내고 땅을 헤집는 일만 남았다고 생각한 바로 그 순간!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공사 현장에서 선사시대 사람들이 살던 바위그늘 유적이 발견된 것이다. 고대인들의 무덤 흔적도 따라 나왔다. 그리고 학계에도 보고된 적이 없는, 바위에 새긴 마애불도 모습을 드러냈다. 문화재청이 서둘러 문화재 지표조사와 공사 중단을 요구했고, 시 당국과 건설회사는 애써 태연한 척 공사는 예정대로 진행한다며 강행의사를 천명했지만 자신들의 중대한 실수를 직시하지 않을 수 없게 됐다.

그런데 더 놀라운 일은 이런 유적들을 발견한 이가 역사학자나 고고학자가 아니라 평범한 직장인이라는 사실이다. 그는 앞산을 지키겠다는 일념 하나로 주말마다 산 곳곳을 누비며 무작정 유물, 유적을 찾아 나섰고 그러던 그 눈앞에 어느 날 갑자기 고대 유적들이 얼굴을 드러낸 것이다.

정녕 산은 그에게 무슨 말을 하고 싶었던 것일까. 앞산은 말이 없다. 그러나 그것은 신음소리가 아니었을까? 아낌없이 모든 것을 내주었건만 비정한 인간들의 욕심은 끝이 없어서 그 심장까지 내놓으라는 순간 튀어나온 산의 절규, 그 절규는 관통도로 건설을 반대해온 앞산꼭지(‘앞산을 꼭 지키려는 사람들의 모임’의 약칭)들을 더욱 결연하게 만들었다.

회원 600여명의 자발적인 앞산 지킴이들의 모임, 앞산꼭지는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다는 판단 아래 지난 연말 앞산 달비골 초입 상수리나무 위에다 쇠막대와 나무판자로 고공농성장을 만들었다. 시간과 여건이 허락하는 꼭지들이 순서를 정해 번갈아 농성장을 지킨 지도 벌써 한 달 열흘이 지났다. 목사님은 올라가 단식기도를 드렸고, 환경잡지를 만들던 편집일꾼은 나무 위에서도 인터넷으로 앞산 지킴이들의 소식을 전하는데 여념이 없었다. 높이 12m의 농성장에는 밤낮을 가리지 않고 매서운 바람과 추위가 몰아치지만 앞산만 지킬 수 있다면 이마저도 그들에게는 행복한 싸움이란다.

▲ 이동유 대구CBS PD

그러나 이 싸움의 끝은 아무도 알 수 없다. 꼭지들은 스스로 자신들을 난쟁이라고 부른다. 건설족이라는 거인에 맞서 싸우는 숲의 난쟁이들. 정녕 이 난쟁이들은 저 무자비한 거인들의 포크레인을 맨몸으로 막아낼 수 있을까. 지금 이 나라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들을 보면 턱도 없는 소리 같지만 그래도 이들은 절대 비관하지 않는다. 드러내지는 않지만 앞산을 사랑하는 대구사람들의 마음을 믿기 때문이다. 앞산을 사랑하는 대구시민의 한 사람으로서 나도 난쟁이들을 열렬히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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