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한국 사회? 도서관을 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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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한국 사회? 도서관을 보라!
[헨드릭스의 책읽기] (2) 허지웅의 대한민국 표류기
  • 헨드릭스/ 블로거
  • 승인 2009.01.21 1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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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한 27살 남성의 하루를 생각해 보자. 아침 8시, 엄마가 깨운다. 겨우 눈을 비비면서 일어나 밥을 먹는다. 출근하는 엄마에게 “엄마....”하고 더 말을 하지 않는다. 엄마는 지갑에서 만 원짜리 한 장을 꺼내주면서 더 말을 하지 않는다. 엄마 출근하자마자 아파트 복도에 나가서 담배 한대를 피운다.

아무 생각이 없었는데, 머리 속이 갑자기 복잡해진다. “내일이 올까?” 샤워하고 나서 집을 빠져나와 엄마가 준 버스카드로 학교를 간다. 도서관에 도착. 도서관 앞에는 좀비들이 있다. 〈재정 국어〉와 〈민주 국사〉를 들고 있는 같은 처지의 공시생들. 다른 한편에는 토익 책과 〈SSAT〉문제집을 가지고 있는 녀석들이 있다.

다 고만고만한 01~03학번 들쯤으로 보이는 사람들이다. 다들 멍하니 담배만 뻐끔 피워댄다. 아는 녀석들을 많이 보고 수다도 떨지만, 좀 지나가고 나면 나중엔 할 이야기도 별로 없다. 별로 다를 바 없는 일상이기에. 2500원짜리 도서관 식당 일품 하나를 먹고 또 공부를 하고, 2500원짜리 저녁을 또 먹고 나면 집에 온다. 오늘은 생각만 많아서 공부도 잘 안된 것 같다. 담배 2500원, 커피 네 잔 1000원. 지갑에는 2000원이 남아있는데, 이건 며칠 모아서 친구랑 술 한 잔을 마셔야지. 그렇게 하루하루가 지나간다.

취직한 놈들은 처음에 연락을 좀 했었지만, 이제는 아무도 연락하지 않는다. 지난번엔 내가 한 번 문자를 보냈을 때 “어~ 잘 지내지? 내가 요즘에 정신이 없어서~ 나중에 한 잔하자!”며 답장이 왔었지만, 그 나중에 언제가 될지 모른다는 건 이미 알고 있다.

‘공시 폐인’, ‘고시 폐인’ 그리고 기본적으로는 모두다 ‘토익 폐인’에 ‘5학년’을 살아가는 20대의 지금 모습이 아닌가?

내 이야기, 그리고 허지웅의 ‘88만원 세대’ 이야기

▲ 대한민국 표류기(허지웅, 수다, 2009.1)
대학에 다니는 내내 ‘진보적’이라고 말할 수 있다는 ‘통일운동가’ 학생회 사람들 주위에 있었다. 대학에 입학했을 때, 깃발 들고 다니는 사람들이 멋있어 보여서 따라갔던 것이 화근이었고, 악기를 할 수 있는 곳이 ‘민중가요패’밖에 없었기 때문이었다. 매 술자리에서는 ‘정세분석’을 하는 선배의 끊임없는 ‘강의’가 이어졌다.

대학교 2학년까지 아무도 양담배를 선배들 앞에서 피울 수가 없었고, ‘미제의 똥물’ 코카콜라를 학생회실 근처에서 마실 수 없었다. 이게 언제적 이야기냐고? 2002년의 일이다. 뻥 치지 말라고? 맞다. 뻥 같은 이야기다. 그런데 대학에서 자기들이 ‘진보’라고 말하던 ‘통일운동가’ 학생회 사람들의 정서가 그 정도였다.

난 무조건 ‘진보적’이라면 좋아했고, 책을 읽어도 꼭 ‘좌파적’이거나 최소한 ‘보수적’은 아니어야 읽었고, 학생회 사람들이 보수적인 다른 ‘아무 생각 없는 애들’보다 낫다고 생각하면서 따랐다. 하지만 매번 답답함이 밀려왔다. “이들이 말하는 것이 진보이긴 한 건가?”

이를테면, 미선이 효순이 사태가 났을 때 굳이 깔아뭉개진 사진을 걸어놓고 ‘민족의 딸’ 운운하는 것도 어처구니가 없었고, 어디에 가나 말하려면 ‘학번’을 밝히라고 말하는 그들의 ‘권위주의’ 그리고 습속의 ‘보수성’에 화가 났던 거다. 상상할 수 있는 그들의 복장은 단체로 교복처럼 맞춰 입은 후드티였고, 그들이 생각하는 문화란 같이 무대를 만들어 놓고, 단체로 ‘같은 춤’을 〈우리 하나되어〉 같은 노래에 맞춰 추는 것이었다. 촌스러워 참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난 대놓고 하지 말라는 염색을 했고, 대놓고 Rock음악이 민중가요보다 우월하다고 말할 수밖에 없었다.

머리 살이 어지러운 판에, 허지웅의 책을 잡는다. 허지웅은 운동판의 ‘명부’에 올라와있는 이도 아니고, 사람들이 알다시피 영화 평론가이고, 글쟁이이다. GQ의 에디터도 했고, 그 때문에 〈패션좌파〉라는 이름을 받기도 했다(본인이 원하는 건 〈간지좌파〉다!). 사람들은 GQ의 에디터 인상이 강한지 그를 마치 ‘룸펜’이나 허영기 많은 누군가로 설정하려 하는 듯하다.

하지만 그는 대학 시절 내내 3개의 알바를 뛰면서 생활을 건사했고, 고시원 방을 공짜로 준다는 이유로 고시원 총무를 할 수밖에 없었다. 그에게 〈패션좌파〉 호칭을 붙이려면, ‘패션’이라는 것에 항상 ‘생활’이라는 것의 결 묻어있다는 것을 전제하고 말을 해야 할 것이다.

허지웅의 일상이 담긴 이 책속에서 그의 사생활과 세상에 대한 생각들과 또 영화 읽기를 발견한다. 김애란의 〈침이 고인다〉를 읽었을 때 느꼈던 자그마한 방에서의 일상이라는 것들이 다시금 생각이 난다. 여자 친구와 헤어지고 자취방의 머리칼을 보면서 눈물 흘렸다는 후배의 이야기와, 김광석의 〈잊어야 한다는 마음으로〉와 한 달 동안 밥도 안 먹고 소주로 배를 채우던 내 22살의 기억도 생각이 난다. 하지만 나에게 가장 강렬한 것은 그의 ‘대중문화’에 대한 생각이다.

▲ 지난해 서울시청 앞 광장에서 열린 촛불집회 ⓒPD저널
그의 책을 읽으면서 작년 촛불 집회에 대해서 생각해본다. 이를테면 그런 거다. 집회는 새로운 ‘문화’를 체험할 수 있는 공간이어야 하고, 또한 ‘문화’를 만들어내고 그 ‘새로운 대중문화’를 만들어서 세상을 뒤집을 수 있는 것이다. 그냥 쪽수로 전경을 몰아내고 청와대를 점령할 계획이라면 차라리 무기를 사는 것이 낳을 것이다.

80년대의 운동판의 관성처럼 〈아침이슬〉과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불러대고 새로운 ‘대중문화’를 창출하지 못했던 촛불집회의 실패는 당연할 수밖에 없던 것이다. 물론 “그럴 줄 알았어”라고 회의하자는 것이 아니다. ‘오늘’, 여기의 모습이 그렇다는 것이다. ‘운동’의 시작은 정치적 갈등일 수도 있지만, 그 끝은 ‘문화적 전복’이다. 우리의 삶의 방식이 변하지 않으면 우리가 그렇게 끔찍하게 생각하는 이 세계는 변화지 않는다.

광장에서 간간이 불리고 들리는 노래들은 대부분 과거로부터의 유산에 불과했다. 지금의 것이 아니다. 지지율 7퍼센트의 대통령이 6월 10일 밤 청와대 뒷산에 올라 촛불로 밝혀진 광장을 바라보며 떠올렸다는 것도, 그 광장 위에서 양희은이 부른 것도 저 옛날의 ‘아침이슬’이었다(p.210).

중요한 때 중요한 장소에는 늘 중요한 대중문화가 존재했다. 대중문화는 당대의 시대성을 대변했다. 이를테면 1968년의 프랑스가 그랬다. 그해 2월 고드라와 브뉘엘을 위시한 누벨바그 영화인들의 행진은 당대의 저항정신을 대변하고 상징하는 것이었다. 더불어 강력한 전조였다. 같은 해 5월 파리의 대학들은 일제히 봉기해 기존 질서에 대항하는 혁명을 일으켰다. 학생들은 학교에서 사르트르의 책을 읽고 극장에서 누벨바그 영화를 감상했으면 광장에서 짱돌을 들었다(p.211).

 

‘왜’를 생각하다보니, 다시 공시폐인, 고시폐인 그리고 대기업 입사에 목매다는 ‘5학년’ 이야기로 돌아와 본다. 나, 그리고 허지웅도 88만원 세대이다. 나 역시 약간의 유예기간이 몇 달간을 보내고 나면, 한국사회가 만들어 놓고 있는 ‘대량 실업사회’의 벌린 아가리가 대기 중에 있다. 긴장을 풀고 빈둥대보지 못하고 끝내 죄수의 딜레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88만원 세대에게 ‘새로운 문화’란 어쩌면 배부른 소리일 지도 모르겠다.

우리사회에서 20대가 뭘 먹고 살면 좀 나은 세상이 될까? 이미 늙어버린 386과 이른바 ‘민주개혁세력’들은 매번 ‘민주적 개혁’ 어쩌고 하는 레토릭을 남발하면서 뒤로는 신자유주의적인 질서를 세워버렸다. ‘잃어버린 10년’이라 단순히 말할 수는 없지만, 20대는 공무원 시험과 대기업 취직, 스펙, 토익, 그리고 그것들을 “살아남을 테야, 아니면 찌질하게 살다 죽을테야?”하고 협박하는 자기계발서의 향연 속에서 10년을 보내왔다.

하지만 20대가 그것들을 다 충족할 수도 없지만(결국 그것들을 다 갖춘 20대는 이미 먹고살만한 자본가들의 자식들 혹은 전 세계를 왔다갔다 누비면서 문화적 자본과 경제자본 모두를 갖고 있는 외교관의 자식들밖에 없다) 동시에 그것들을 충족한다하여서 그들에게 ‘더 나은 미래’가 항상 보장되지는 않는다. 이미 극한적인 경쟁구도는 오늘의 ‘생존’이 내일의 ‘안정’을 보장하지 않기 때문이다.

▲ 허지웅의 블로그 (http://ozzyz.egloos.com)
이러한 상황에서 허지웅이 살아남았다는 것은 아직 한국사회에서 20대가 살아있다는(이제 허지웅도 만 서른 살이 되었지만) 징표이기도 하다. 사회의 지배질서가 강요하는 노예의 삶에서 한발 물러나서 조금 덜 부유하게, 조금 가난하게 살아남으면서 자신의 문화적 감성들, 그리고 여지들을 만들어내고 있는 삶들이 하나의 사회적인 양상이 되는 것. 그것이 어쩌면 좀 더 나은 세상으로 가는 길이 아닐까?

물론 모든 20대가 글쓰는 것을 업으로 삼을 수도 없고, 또한 허지웅처럼 글을 쓸 수 있는 것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각자 나름대로의 ‘의미있는 일’들을 찾아내고 그것들을 할 수 있을 것이다(난 이제 그것들을 구체화하는 일들을 해보려 한다). 우석훈이 이야기하는 ‘사회적 경제’처럼 말이다. 괜한 삽질에 돈을 넣는 것보다, 20대가 앞으로의 50년을 바라보면서 기획할 수 있는 일들에 대한 최소한의 사회적 ‘투자’가 필요하지 않냐는 말이다.

대기업에 들어가지 않고도, 공무원이 되거나 고시에 붙지 않고도 생존과 자신의 ‘삶의 품위’를 잃지 않는 조금씩의 ‘여지’를 만들어 준다면 좀 나은 상황이 오지 않을까? 다양한 문화적 아방가르드 들이 춤추고(1980년대의 ‘비분강개의 군중 동원문화’에서 벗어나야 한다!) 노래하고 영화를 만들고 또 새로운 양식의 미술을 만들고, 그것들을 디자인을 통해 건축을 통해서 또 패션을 통해서 ‘삶’에 적용하는 것(그것이야 말로 간지나게 사는 거 아닐까?). 그리고 그런 실험하는 이들이 최소한 견딜 수 있도록 만들어 줄 수 있는 공동체의 복원. 그리고 그것들이 ‘광장’을 통해서든, 아니면 ‘삶’의 결을 통해서든 지속적으로 끊임없이 분출하는 것. 그것들이 어쩌면 다시 새롭게 만들어야 할 사회의 강령이 아닐까? 그리고 그것이 20대들이 추구할 ‘패기와 열정’이 아닐까?

한창 글을 쓰면서 시간을 보내고 있는데, 옆에 있는 영어책이 다시 협박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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