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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석] 언론법 협상타결…靑 연출·김형오 주연, 민주당은 엑스트라?

애써 현실을 받아들이려는 모습이었다. 2일 오후 본회의 개의를 30분 앞두고 여야 대표들이 언론관계법 직권상정 대신 ‘100일’ 동안 국회 문방위 산하 여야 동수로 구성된 사회적 기구를 통해 논의를 진행한 뒤 ‘표결처리’하기로 합의한 것에 대해 민주당 관계자들은 “일단 모든 것을 잃을 수밖에 없는 방송법 직권상정 태풍은 피했어야 했다”고 말했다.

여전히 국회 상식 믿다 허 찔린 민주당

이날 오전까지만 해도 민주당은 비교적 여유로운 모습이었다. 김형오 국회의장이 지난 1일 오후 여야 3교섭단체 대표 회동을 중재하면서 디지털전환특별법과 저작권법은 내달 우선 처리하고 방송법·신문법·IPTV법·정보통신망법 등 4개 언론관계법은 사회적 논의기구를 만들어 4개월 간 논의 후 국회법 절차에 따라 처리키로 잠정 결론을 내렸기 때문이다.

지도부가 서명한 잠정 합의안을 한나라당 의원들이 즉각 반대하긴 했지만 국회의장의 중재안을 거부한 쪽이 결국 손해라는 그간의 국회 전례에 비춰볼 때 크게 조급해 하지 않았다. 그러나 이날 오전 한나라당이 최고위원회의를 취소하고 김형오 의장과 서울 강남의 모 호텔에서 비밀회동을 진행하면서 ‘설마’의 우려가 나오기 시작했다.

이날 오후 1시 30분 ‘설마’는 현실이 됐다. 김형오 의장이 하루가 지나기도 전 자신의 중재안을 180도 뒤집고, 야당이 언론관계법 처리 시한과 방법과 관련해 여당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방송법·신문법·IPTV법 등 15개 쟁점법안을 직권상정 하겠다고 밝힌 것이다.

한나라당에도 방송법 개정안에서 대기업의 지상파 지분 소유를 0%로 수정하라고 요구하긴 했지만, 이는 한나라당이 지금까지 국회의장의 직권상정을 요구하며 내세운 나름의 양보안이었다. 한나라당은 그간 신문의 지상파 지분 소유 20%는 수정할 수 없지만, 대기업의 경우 0%로 지분 소유를 아예 금지할 수 있다는 입장을 밝혀왔다.

결국 민주당 지도부는 긴급회의를 열고 오후 1시 40분께 김 의장에게 여당의 ‘표결처리’ 요구를 수용하겠다고 타협안을 전달했다. 이후 2시 30분부터 국회 운영위원장실에서 열린 여야 원내대표 협상에서 민주당은 ‘100일’ 동안의 사회적 논의라는 여당의 ‘시한’ 확정 요구까지 받아들였다.

▲ 박희태 한나라당 대표와 정세균 민주당 대표가 2일 오후 국회 귀빈식당에서 만나 언론관계법 등 쟁점법안 처리를 위한 최종 협상에서 앞서 악수를 하고 있다.
합의 찬성하진 않지만 현실은…

이 같은 내용의 합의가 전격 타결됐다는 소식에 민주당 의원들은 일단 망연한 분위기였다. 80여석의 제1야당이면서도 과반 이상의 의석을 차지한 거대 여당의 밀어붙이기엔 손을 쓸 수 없는 자괴감이 먼저 엄습해온 것이다.

국회 문화체육관광방송통신위원회(이하 문방위) 위원으로서 언론관계법 개정을 앞장서 반대해 왔던 최문순 의원은 “본회의장을 점거할 수도, 여당 출신 국회의장을 상대로 협상력을 발휘하기도 어려운 상황에서, 힘이 달리니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다”고 자괴감을 표시했다.

최 의원은 “100일, 표결처리 등은 민주당의 입장에선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내용이지만 그렇지 않으면 당장 국회의장이 한나라당의 안대로 법안을 직권상정 하겠다고 공언하고 나섰으니 어쩔 수 없었다. 당장의 태풍은 피하고 차후 논의를 어떻게 (유리한 방향으로) 끌어갈지 고민하자는 게 지도부의 뜻인 듯하다”고 말했다.

최 의원은 자괴감을 표시하면서도 국회의장과 여당의 모습에 대해선 분통을 터트렸다.

“김형오 국회의장은 자신이 제시한 중재안을 어떻게 그렇게 쉽게 포기할 수 있나. 어떻게 입법부의 수장인 국회의장이 한 정파의 지도부에게 끌려 가 그들의 직권상정 요구를 그렇게 순순히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인가. 너무 한심한 일이다. 또 170여석의 거대 여당이 직권상정을 위해 본회의장을 점거하다니, 노조를 막겠다고 사장과 이사, 국장이 시위를 하는 꼴이다.”

마찬가지로 문방위원인 장세환 의원 역시 “개인적으로는 이번 합의는 민주당으로선 받아들일 수 없는 합의라고 생각한다”면서도 “합의를 하지 않고 직권상정 수순으로 갔을 경우 더욱 속수무책인 상황이 될 수밖에 없었을 것인 만큼, (패색을 지우고) 사회적 합의기구와 100일이라는 주어진 시간을 잘 활용할 방안을 마련하는 게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장 의원은 “그간 마련해 둔 대안을 다듬어 (때를 봐서) 제시하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민주당의 한 당직자는 “청와대 연출, 김형오 주연의 치킨게임 드라마에 민주당은 엑스트라로 나섰을 뿐”이라고 촌평하면서 “언론관계법은 야당으로서 민주당이 시민사회와 공고한 연대를 할 수 있는 사실상 유일한 부분이었다. 그런데 이 부분에 대해 경계태세를 제대로 갖추지 못한 채 여당의 작전에 밀림은 물론 울며겨자먹기식 합의를 해준 것은, 향후 수많은 현안들에 대한 연대에 있어 충분한 ‘신뢰’를 담보하지 못하게 하는 요인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명박 정권 아래 제1야당이 얼마나 비상한 각오를 해야 하는지, 아직도 잘 모르는 것 같다”고 탄식했다.

급한 불 껐다 해도 현안은 산적

여당 입장에서도 극한의 충돌은 피했지만 이번의 합의가 100% 탐탁지 않은 게 사실이다. 이번 방송법 개정 논의 과정에서 대기업의 지상파 지분 소유는 포기할 수 있지만 신문의 지분 소유(20%) 부분은 포기할 수 없다고 한 것이 한나라당에게 있어 또 하나의 약점이 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언론관계법 개정에 대한 여론이 여전히 부정적이고, 대기업의 방송 소유 허용을 포기하면서 자본의 투입을 통한 일자리 창출 등의 명분 역시 약화됐기 때문이다. 실제로 언론노조 등은 “신문의 방송소유를 포기할 수 없다는 한나라당의 주장에서 결국 조·중·동 방송을 만들고자 하는 의도가 드러났다”고 비판했다.

또한 “1당 독재의 야만정치가 부활했다”(박승흡 민주노동당 대변인)는 야당의 비판처럼 언론관계법 등 쟁점법안 협상과정에서 드러난 일방통행식 의사진행은 향후 국회를 이끌고 가는데 끊임없는 논란을 부를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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