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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클리핑] 언론법 휴전…사회적 기구 의미 축소하는 조중동

여야가 신문법·방송법·IPTV법·정보통신망법 등 4개 언론관계법 처리와 관련해 이달 초 국회 문화체육관광방송통신위원회(이하 문방위) 산하에 ‘사회적 논의기구’를 여야 동수로 설치, 100일간 논의한 뒤 6월 임시국회에서 ‘표결처리’하기로 2일 합의했다.

일단 여당의 표정은 밝다. 그간 당력을 집중해온 언론관계법과 관련해 ‘처리시기’ 명시와 ‘표결처리’라는 방식을 관철한 만큼 ‘판정승’이란 기류가 우세한 것이다. 여당 내에선 “이미 법안은 처리된 것과 마찬가지”라는 전망까지 나온다.

반면 민주당은 아쉬운 기색이 역력하다. 거대 여당의 ‘위력’ 앞에서 속수무책 끌려다녔기 때문이다. 당장 국회의장의 언론관계법 직권상정을 막아내고 100일의 시간을 번 것을 성과라고도 할 수 있지만, 당초 4개월이었던 논의기간을 100일로 줄였고 ‘국회법 절차에 따라 처리’키로 했던 잠정 합의안에서 ‘표결처리’키로 양보했다. 6월 임시국회에서 여당이 표결처리를 시도할 때 마땅한 대응수단을 마련하지 못하면 또 다시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다.

▲ 경향신문 3월3일 1면

여당에 칼자루 쥐어주고 100일 뒤로 3차 입법전쟁 연기

상황이 이렇다보니 언론관계법 문제와 관련해 민주당과 연대해 온 언론노조와 시민사회는 불만을 터트리고 있다.

<경향신문> 6면 보도 <“100일후 악법 그대로 처리 의도”>에 따르면 언론노조는 합의안이 전해지자 “처리 시한을 못박아 단순히 한나라당의 미디어법안을 원안대로 연기해 놓았을 뿐 사회적 논의기구 구성방안도 전혀 명시한 게 없다”고 거부감을 드러냈다.

최상재 언론노조 위원장은 “정부와 여당이 원안을 고수한 뒤 시간을 끌다가 100일이 지나면 그대로 처리하려는 의도를 드러냈다. 언론노조는 시민·네티즌과 함께 총력투쟁을 펼처 법안을 폐기시키고 정권퇴진 투쟁을 벌여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정연우 민주언론시민연합 공동대표도 “100일이라는 짧은 시간에 새로운 미디어 제도를 만드는 일을 충분히 논의할 수 없는 데다 다툼이 이어지면 논의가 중단되는 등 문제가 많아 극히 적절치 못한 방안”이라고 지적하면서 “민주당이 한나라당 전략에 말려들어 그간 언론노조와 시민사회의 법안 반대·저지 노력을 물거품으로 만들었다”고 비판했다.

학계에선 ‘합의기구’가 아닌 ‘논의기구’를 구성하기로 한 데 대해 우려를 나타냈다. 강상현 미디어공공성포럼 운영위원장(연세대 교수)은 “여야 합의안은 많은 우려를 안고 있다. 1998~99년에 구성된 방송개혁위원회의 모델을 적용해 많은 쟁점을 분과별로 연구한 뒤 전체토론을 거처 합의안을 도출해야 한다. 또 그간 미디어법안 논의과정에서 소총수 역할을 한 분들은 사회적 논의기구에서 배제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 경향신문 3월3일 6면

 사회적 기구 구성했지만…與 논의의지 있나

사회적 논의기구는 이달 초 여야 동수의 추천을 받은 언론학자 등이 참여한 가운데 국회 문방위 산하 의결권 없는 자문기구 성격으로 구성된다.

결국 6월 임시국회에서 과반 이상인 171석의 의석을 가진 한나라당이 얼마나 열린 자세로 여론을 수렴, 독소조항을 수정하느냐에 따라 어떤 식으로 법안이 처리될 것인가가 결정되는 것이다.

그러나 경향 6면 <‘미디어법 독소조항’ 與에 달렸다>에 따르면 한나라당은 지난해 12월 제출한 언론관련 법안에서 ‘재벌의 지상파 방송 참여 제한’ 외에는 손볼 조항이 없다는 입장이다.

박희태 대표는 지난 2일 기자간담회에서 “대기업이 지상파방송의 지분을 20%까지 보유할 수 있도록 한 조항을 0%로 바꿔 아예 지상파 방송진출을 못하게 할 수 있다”고 밝혔다.

반면 여론독과점이 우려되는 신문의 지상파 및 종합편성·보도전문채널 겸영, 정보통신망법의 사이버모욕죄 신설 등 다른 쟁점에 대해선 ‘양보 불가’의 분위기가 여전하다. 사회적 논의기구 구성 등의 과정이 ‘형식적 포장’에 그치는 게 아니냐는 회의론이 제기되는 배경이다.

국민적 반발이 심한 독소조항에 대한 한나라당의 전향적인 자세 전환이 없는 한 향후 100일은 합의 도출을 위한 논의의 장이 아닌 반목과 대립의 무대가 될 수밖에 없을 것이란 전망이다. 언론노조는 일단 파업을 잠정 중단하되 사회적 논의기구의 활동 여부를 지켜본 뒤 재개 여부를 결정키로 했다.

경향은 35면 사설 <미디어법, 파국 면했지만 향후 과제가 무겁다>에서 “여야가 합의한 ‘사회적 논의기구’ 구성이 공평무사하게 이뤄져야 한다. 언론학자, 시민단체가 기왕에 국민적 합의기구를 제안한 만큼 국회 안에 설치되는 논의기구도 이에 준하는 포용력있는 협의체가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미디어 전반에 큰 변화를 몰고 올 수 있는 사안을 논의하는 데 100일이란 기간은 턱없이 짧다”면서 “행여 조급증에 빠진 여권이 또 다시 수의 힘으로 밀어붙인다면 여론의 역풍을 부를 것”이라고 경고했다.

▲ 동아일보 3월3일 4면

사회적 논의기구 의미 축소시키는 조·중·동

반면 조·중·동은 사회적 논의기구의 역할과 의미를 축소시키려는 모양새다. 우선 <조선일보>는 4면 <‘사회적 논의기구’ 놓고 벌써 시끌>에서 “여야가 2일 미디어 관련 법안 처리에 합의하면서 ‘100일간의 논의’ 주체로 삼기로 한 ‘사회적 논의기구’에 대해서 벌써부터 논란이 일고 있다”고 보도했다.

한 마디로 “국회의 가장 중요한 임무가 국가적·사회적 갈등을 조정하고 해결하는 일인데 별도의 논의기구를 두는 것은 이 같은 국회의 존재의미 자체를 부정하는 게 아니냐”는 것이다.

조선은 김형준 명지대 교수의 말을 인용, “이 기구에 법적 구속력이 있는지 여부가 애매하기 때문에 여야 합의에는 잔 불이 남아있다”고 지적하면서, 실제 한나라당과 민주당은 여야가 동수로 추천하는 사회단체 소속 인사와 학자 등 외부 인사들로 구성할 이 기구의 성격을 놓고 벌써 의견차가 크다고 전했다. 한나라당은 문방위 산하 ‘자문기구’로 삼을 생각이지만 민주당은 정치권과 시민사회 간의 ‘합의기구’ 성격에 방점을 두고 있다는 것이다.

<동아일보> 역시 4면 <與 “구속력없는 자문기구”…野 “의견 최대한 반영”>에서 “방송계에선 사회적 논의기구를 1998년 12월부터 3개월간 여야 방송계 시민단체 등이 방송제도 및 구조 개혁을 포괄적으로 논의했던 방송개혁위원회(방개위) 선례가 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방개위는 방송현안을 총망라해 논의한 뒤 상당부분 합의를 이뤘으나 지상파 등의 이해관계 앞에서 자문기구의 한계를 극복하지 못했다는 평가”라고 전했다.

<중앙일보>도 5면에서 “야당이 사회적 논의기구의 합의안 도출을 상임위 의결의 전제조건으로 삼을 가능성에 대비해 한나라당은 ‘자문기구’라는 자구를 집어넣었다. 논의기구 참여 인사의 자격과 선출 방식은 아직 미정이나, 그간 양당을 압박해 온 좌우 시민단체 논객 등이 모두 참가할 경우 자칫 성과없는 소모전이 재연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 한겨레 3월3일 3면

조·중·동 방송진출이 최대 쟁점

<한겨레>는 3면 <‘사회적 합의’ 진통 예상…‘조중동 방송진출’이 최대쟁점>에서 사회적 논의 기구가 가동되면 무엇보다도 신문사의 지상파 진출 문제가 논란이 될 것으로 내다봤다.

한나라당이 이번 협상과정에서 방송법 개정안 2월 처리를 전제로 대기업의 지상파 진출을 원천적으로 봉쇄하는 안을 제안한 반면, 신문사의 소유지분을 20%까지 허용한 기존 조항은 손댈 수 없음을 분명히 했기 때문이다.

당장 민주당 등도 “조·중·동 등 거대 신문사의 지상파 진출은 결국 여론 다양성을 해칠 수밖에 없다”며 신문·방송 겸영조항 자체의 수정을 강하게 요구하고 있다.

중앙·동아, 대기업 지상파 지분 소유 논란 불 지피기?

반면 신문·방송 겸영 논란의 핵심 당사자인 동시에 특정 대기업과 각각 특수 관계, 사돈 관계인 중앙과 동아는 재벌의 지상파 지분 소유 관련 논란을 재점화하려는 모양새다. 한나라당이 이미 지난 2일 대기업의 지상파 방송 지분 소유 한도를 0%로 수정한 안을 제출한 상황이다.

그러나 중앙은 5면 <‘대기업 지상파 지분’ 갈등 불 보듯…사회적 논의기구, 자문역할로 국한>에서 “이번 협상과정에서 한나라당이 대기업의 지상파 지분을 20%까지 허용키로 한 원안 대신 0%로 낮추는 수정안을 내겠다는 카드를 내비쳤지만 이는 협상의 물꼬를 트기 위한 ‘협상용’이었다”고 보도했다.

황근 선문대 교수(신문방송학)는 “방송산업 활성화를 위해 대기업의 지상파 방송 참여는 필수불가결한 요소”라며 “한 예로 지상파와 케이블 종합유선방송사업자(SO)와의 겸영을 통해 지역방송을 살리려면 대자본이 꼭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황 교수는 “여당이 대기업의 지상파 참여 부분을 포기할 수 있다고 한 건 직권상정 부담을 덜어준다는 특별한 상황을 전제로 한 것”이라며 “추후 논의는 당연히 방송법 개정안 원안을 놓고 이뤄져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 중앙일보 3월3일 5면
동아도 4면 <한나라 ‘표결’ 얻고, 민주 ‘시간’ 벌어>에서 “한나라당은 협상 과정에서 방송법의 경우 대기업에 한해 지상파 방송 지분 20% 허용 조항을 삭제할 수도 있다고 제안했으나 민주당이 이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았기 때문에 한나라당으로서는 이 협상 카드를 여전히 활용할 수 있게 됐다”고 밝혔다.

또 “한나라당은 신문과 방송의 겸영 문제는 세계적인 미디어 환경 변화에 따른 국내 미디어산업 발전을 위해서 필수적이라는 생각을 갖고 있다. 따라서 이 조항도 수정될 가능성은 아주 낮아 보인다”고 보도했다.

반면 조선은 4면 <지상파 지분 등 논란 여전…‘100일짜리 시한폭탄’ 될 수도>에서 “방송법과 IPTV법은 향후 논의과정에서 지상파나 케이블·IPTV의 소유주체와 지분을 놓고 논란이 계속 될 것으로 보인다. 한나라당은 민주당의 ‘재벌에게 방송 줄래’라는 비판을 의식, 자산규모 10조원 이상인 대기업에 지상파 방송사 지분 20% 소유를 허용했던 개정안을 수정, 아예 소유하지 못하게 할 수도 있다는 입장”이라고 전했다.

<한국일보>는 39면 사설 에서 한나라당의 언론관계법 개정 취지에 대해 비판적인 물음을 던졌다. 한국은 “미디어 관련법을 놓고 한나라당이 모순에 빠졌다”면서 “대기업을 배제하면서 신문의 방송 참여는 그대로 두어 미디어 관련법 개정이 일부 보수신문들의 방송 소유를 도와주는 ‘조중동 특혜법’ ‘여론 독점법’이라는 소리만 듣게 됐다”고 지적했다.

또 “신문과 방송의 겸영이 세계라는 주장도 더 이상 설득력을 갖기 어렵다. 그것이 추세라면 대기업의 미디어 진출 역시 추세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갑자기 한 쪽은 안 되고, 한 쪽은 된다는 것은 자가당착이다. 오해를 사기에 충분할 뿐 아니라 신뢰를 떨어트린다. 법과 정책에는 지켜야 할 원칙과 목표가 있어야 한다. 그것을 버리면서까지 한나라당이 미디어 관련법을 고치려는 이유는 정말 뭔가”라고 따져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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