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탱자를 걸러낼 잣대가 필요할 때
윤학열 <방송작가>

|contsmark0|‘영국의 대문호 셰익스피어 이후에 새로운 창작은 없다’라는 말이 있다. 위대한 작가에 대한 경이로운 격찬이다.하지만 이 말은 종종 방송가에서 모방, 베끼기 작업을 합리화하는 수단으로 이용되는 경우가 있다. 즉 외국의 유명 인기 프로그램을 여과 없이 베끼기 할 때 안팎으로 쏟아지는 비난의 화살을 자위하는 면죄부로 셰익스피어를 내세우는 것이다.과거 방송 전파가 국지적이었을 땐 적어도 표면상으로는 아무 문제가 없었던 일이라 관계자들을 제외하고는 용납 혹은 묵인되어 왔던 것이 사실이다.하지만 요즘처럼 다국적(위성tv) 다채널 시대엔 이런 ‘눈 가리고 아웅’ 식의 모방이 용납되지 않는다. 국제화 세계화 시대에 진일보된 시청자의 비판능력은 이러한 모방 프로그램이 방송되기가 무섭게 pc통신의 모니터를 통해서 혹은 기타 여론매체를 통해서 날카로운 비난의 칼을 뽑아 드는 것이다.그러나 ‘시청률 지상주의’라는 중병에 걸려 있는 대다수 방송인들에겐 이러한 비난의 화살을 감수하고라도 인기 있는 프로그램, 시청률 높은 프로그램을 만들고 싶은 ‘방송병’으로 인하여 모방이라는 현실과 타협하게 되는 것이다.그러나 보다 심각한 것은 이러한 모방프로그램이 가져다주는 문화 종속에 있다.만약 일본에서 인기를 끌었던 한 트랜디드라마를 ‘이미지 차용’이든 ‘패러디’든 어떠한 이름을 붙여서건 모방해서 방송했다고 하자.그 드라마를 통해서 보여진 스타의 모습과 행동은 그대로 여과 없이 감수성이 예민한 10대에게 흡수·투여되고, 그 결과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일본문화에 종속되는 과오를 범하게 되는 셈이다.외국문화에 무방비 상태로 노출되어 있고, 그래서 우리 문화의 위기론까지 들먹거리는 방송의 이면에는 또다른 위기가 도사리고 있는 것이다.어쩌면 이러한 것이 방송의 이중성일지도 모른다.하지만 어떠한 이유에서건 외국 프로그램 베끼기를 방지하는 최소한의 자구적인 노력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표절가수와 작곡가에게 중징계를 내리는 방송관계자들이 외국 프로그램을 모방한 프로그램에 대해선 단지 시청률이 높다는 이유로 함구하는 것은 자기 정체적인 모순 아닐까. 그것은 시청자들을 기만하고 우롱하는 행위이다.만약 불가피하게 외국프로그램을 차용하는 경우가 있더라도, 최소한의 자체적인 기본 검증은 있어야 한다.귤화위지(橘化爲枳)란 말이 있다. 화남의 귤을 화북에 옮겨 심으면 탱자가 된다는 뜻이다. 즉 환경에 따라 사물의 성질이 달라진다는 말이다. 좋게 이용되면 귤이 될 수도 있지만 그렇지 않으면 쓸모 없는 탱자로 변해 골칫거리가 된다는 소리다.바로 지금 우리 방송에 수많은 탱자를 걸러내기 위해 기본적인 잣대가 필요할 때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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