웰컴! 정책 버라이어티 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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웰컴! 정책 버라이어티 쇼
[방송 따져보기] 홍성일 문화연대 미디어문화센터 운영위원
  • 홍성일 문화연대 미디어문화센터 운영위원
  • 승인 2009.05.20 11:0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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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대통령의 해외 순방에 동행한 황석영씨가 세간의 화제다. 이명박 정부를 ‘중도실용 정부’라고 규정하여 진보진영으로부터 ‘변절’이란 비판을 받았다. 많은 이들이 당혹감과 실망감을 감추지 못했고 나 또한 마찬가지다. 이후 신문 인터뷰 등을 통해 황석영 씨는 적극적으로 자신을 변호했는데 여전히 성에 안차기는 매한가지다. 그러나 그의 발언 중에 수긍할만한 대목도 있었다. “선거를 했고 투표했고, 자기들 표현으로 압도적 과반이라고 국민 선택 받은 것이다. 현실적 조건으로 받아들인 것이다.”(한겨레신문 인터뷰 중)

현실에 발을 딛고 사유/행동해야 한다는 그의 말은 일리 있다. 물론 적절하고 합리적인 과정을 거친 현실적 조건이 최선이지만 그렇지 못한 현실적 조건이 더 많다. 과정을 문제 삼는 것과 더불어 현실적 조건에서 새로운 대안을 찾아야 한다. 일단은 현실적 조건을 받아들이고 그 안에서 대안을 모색하는 일도 필요하다. 황석영 씨의 돌출적 사유/행동도 좋게 보자면 그러한 이유 때문이었으리라 짐작했다. 다만 적절치 못하고 비합리적이었던 과정을 쉽사리 망각했기 때문에 그의 사유/행동은 실망스러웠다. 현실적 조건을 바꿀 수 있는 그의 사유/행동이 비현실적이기에 실망감은 배가되었다.

▲ KBS〈5000만의 아이디어로〉ⓒKBS
최근 KBS는 논란이 되었던 정책 버라이어티 쇼 〈5000만의 아이디어로〉를 정규 편성하였다. 과정의 비합리성과 부적절성은 여전히 논란 중이지만 어찌 되었건 〈5000만의 아이디어로〉는 현실화되었고 물질화되었기에 대안은 이로부터 나와야 할 것이다. 살펴보니, 근 한 달간 방송되고 있으며 실제로 반영 가능한 아이디어가 나오는 중이다. 지난주에는 “부모님께 드리는 용돈, 소득공제 합시다”, “호신술 배우러 여성도 4주간 군대 갑시다”, “좌석버스에 손잡이를 설치합시다”가 ‘긴급 제안’되어 이중 “좌석버스에 손잡이를 설치합시다”가 100인의 국민평가단에 의해 그 주의 정책 아이디어로 채택되었다.

논란을 의식하여 KBS는 100인 국민평가단 선발과정과 정책 아이디어 필터링에 공정을 기했음을 프로그램 곳곳에서 밝히고 있다. 아직까지는 일방적인 정책 홍보의 무대가 될 것이란 우려로부터는 자유스러운 모양새다. 국민이 직접 제안하고 전문가가 이를 검증하며 정책 실무자가 대화의 장에 나와 응답하는 프로그램의 구성은 긍정적이고 바람직해 보였다. 정책 집행의 과정을 시청자들이 구체적으로 확인할 수 있다는 측면에서 일단은 〈5000만의 아이디어로〉를 환영한다.

하지만 100인의 국민평가단에게 지급되는 인건비, 10명 남짓의 전문가에게 지급되는 자문료, 스튜디오 및 야외 촬영에 투입한 제작비의 결과가 고작 “좌석버스에 손잡이를 설치합시다”란 것은 실망스럽다. 첫 주의 “공무 항공 마일리지 사회에 기부합시다”나 둘째 주의 “어린이 보호구역에 과속 방지 경고등을 설치합시다”도 마찬가지다.

▲ 홍성일 문화연대 미디어문화센터 운영위원
실상 이 내용들은 정책 실무자가 조금만 더 고민하면 생각할 수 있는 아이디어다. 각 정책 실무자가 자신들의 홈페이지와 대외 창구를 통해 국민들과 교감했더라면 굳이 KBS를 거치지 않더라도 얻을 수 있었을 아이디어다. 기왕 지사 〈5000만의 아이디어로〉가 현실적 조건이라면, 그리고 정책 결정 가능성을 실제로 검증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라면, 보다 도발적이고 논쟁적일 필요가 있다. 가령 “일몰 후 야간 집회를 허용합시다” 라든지 “동성 결혼을 허용합시다”를 이야기하는 것은 어떨까? 최소한 이 정도로 첨예하고 절실한 논의가 이루어져야 돈 값을 하는 프로그램이 될 것이며, 이 정도가 되어야지만 KBS란 이름이 부끄럽지 않을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5000만의 아이디어로〉는 KBS의 대표적인 비용 대비 저효율 프로그램이 될 가능성이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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