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이희용의 주간미디어리뷰]

▲ 이희용 한국기자협회 부회장ㆍ언론연구소장
노무현 전 대통령이 짤막한 유서를 남기고 스스로 목숨을 끊어 충격을 안겨주고 있습니다. 여야는 국민의 여론을 의식해 일단 정쟁을 중단하고 고인을 추모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지만 직전 대통령의 자살이라는 전대미문의 사건이 어떤 파장을 자아낼지 촉각을 곤두세우며 대응전략에 부심하고 있습니다.

야권에서는 추모 열기를 반정부 열기로 이어가며 정국의 주도권을 움켜쥘 기회를 노리고 있고 여권에서는 야권의 의도를 조기에 차단하며 충격파를 최소화한다는 전략을 세워놓고 있는 듯합니다.

국회는 6월 1일로 잡아놓았던 임시국회 개원을 1주일가량 연기할 예정이라고 합니다. 단순히 순연되는 것뿐 아니라 노 전 대통령의 서거에 따른 여권 책임론이 제기됨에 의석수 분포와는 상관없이 당분간 여권이 수세에 몰리는 듯한  국면을 맞을 것이라는 관측이 우세합니다.

그렇게 되면 아마도 그동안 뜨거운 쟁점이 돼온 미디어 관련법의 향배도 불투명해지겠지요. 5월 21일 비주류계의 거센 도전을 물리치고 당선된 안상수 한나라당 원내대표는 미디어법 6월 통과에 강한 의지를 보였으나 당분간 몸을 낮출 수밖에 없을 겁니다. '표결 처리'하기로 합의하기는 했지만 '여론 수렴을 거친다'는 대목을 내세워 반발하고 있는 야당을 무시하고 강행 처리를 시도하기에는 부담스럽겠지요.

4ㆍ29 보선에서 승기를 잡았다고 판단하고 있는 민주당의 정세균 대표는 일방적인 표결 처리에 반대한다는 목소리를 높이고 있고, 5월 15일 당선된 이강래 원내대표도 미디어법의 철회와 대폭 수정을 요구해왔습니다. 여기에 언론노조와 노사모 등은 노 전 대통령의 서거가 조중동의 타살이나 다름없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기 때문에 사실상 조중동의 방송 진출 확대로 여겨지고 있는 미디어법 개정을 호락호락하게 두고 볼 리가 없을 겁니다.

증권가에서도 이러한 관측에 무게를 싣고 있는 사람들이 많았기 때문인지 25일 개장과 함께 미디어법 개정의 수혜주로 여겨지는 디지틀조선일보, 중앙일보 계열의 ISPLUS, SBS, SBS홀딩스, 태영건설, iMBC, YTN 등의 주가가 일제히 떨어졌다고 합니다.

미디어법 통과 여부는 통상 임시국회가 열리지 않는 8월에 다시 임시국회를 열어 논의하거나 가을 정기국회 때까지 미뤄질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습니다. 정기국회로 미뤄지면 국정감사와 예결위 등을 협의해 진행해야 하기 때문에 11월이나 12월까지 늦춰질 수도 있지요.

그러나 이러한 국면이 언제까지나 민주당에 유리하게 전개될지는 알 수 없습니다. 냄비 끓는 듯 하는 우리 국민이나 언론의 특성상 언제 바뀔지 모른다는 것이지요. 오히려 민주당이 노 전 대통령의 서거를 정략적으로 이용한다는 비난에 직면할 수도 있지요.

또 이 대통령 조문 반대 등을 둘러싸고 노무현 전 대통령 지지자들이 과잉 행동을 일삼게 되면 정원식 총리가 한국외국어대에 특강하러 갔다가 학생들에게 밀가루를 뒤집어쓰고 봉변을 당한 일처럼 여론의 역풍을 맞아 공수의 처지가 뒤바뀔 수도 있습니다.

물론 조문 정국을 지나면서 여야가 극한 대결을 삼가고 한 발짝씩 물러나 타협을 이루는 계기가 마련될 가능성을 전혀 배제할 수는 없습니다. 한나라당이 핵심 조항을 양보하고 미디어발전국민위원회에서 나온 의견을 적절히 조정해 타협안을 마련한다면 야당이 반대만 하기에는 어렵겠지요.

그러나 여당이 미디어법 처리를 미루면 미뤘지 핵심 조항을 양보하기는 힘들 겁니다. 야당도 전면 반대를 주장하고 있는 언론시민단체 등으로부터 여당과 야합했다는 비난까지 들어가며 여당과 미디어법 개정에 합의해줄 마음도 별로 없어 보이네요. 미디어법 개정 문제를 어느 쪽에 유리한 언론구도가 만들어지느냐로 보고 있기 때문이겠지요.

▲ 노무현 전 대통령 분향소 ⓒ공식 홈페이지 '사람사는 세상'
미디어위 여론조사 둘러싼 여야의 계산

미디어발전국민위원회는 예상했던 대로 파행과 대립을 거듭하며 파국으로 치닫고 있습니다. 노 전 대통령 서거로 분위기가 다소 바뀌고 있지만 그동안 주장해온 내용을 바꿀 가능성은 희박해 보입니다.

5월 들어 시작된 지역 순회 공청회가 5월 27일 대전 하나만 남겨 두고 있고 6월 15일로 예정된 활동시한이 20일밖에 남지 않았지만 여론 수렴이나 의견 접근은커녕 양측의 깊은 골만 확인했습니다.

5월 6일 부산과 20일 광주 공청회에서는 청중들의 질의를 제대로 받지도 않고 서둘러 끝냈다거나 편향된 공술인 구성에 항의하는 청중들을 무시했다는 주장이 제기되기도 했지요. 5월 15일 전체회의에서는 야당 측 위원들의 여론조사 실시 요구에 대해 여당 측 위원들이 반대 의사를 표시해 격론이 일었습니다.

여당 측 위원들의 논리는 여론조사를 통해 법을 만드는 것이 옳지 않고 복잡한 미디어 관련법을 국민 모두가 명확히 인지하고 있지 않아 실효성이 없다는 것입니다. 사실 모든 국정 현안을 여론조사로 결정하자고 할 수는 없는 일이지요. 또 규제 완화 정도에 따라 복잡 미묘하게 얽혀 있는 문제를 일도양단하듯이 찬반양론으로 나눠 파악하기도 어려운 형편입니다.

이러한 논리와 명분에 앞서 위원들의 태도에는 그동안 관련 여론조사에서 부정적 의견이 많았기 때문에 괜히 긁어 부스럼 만들 필요가 없다는 한나라당의 의중이 반영됐을 가능성이 높아 보이지요.

이에 반해 야당 측 의원들은 미디어위가 국민 여론 수렴을 위한 기구이므로 최종 보고서를 작성할 때 객관적인 데이터가 필요하고 이를 뒷받침할 가장 놓은 방법이 여론조사라는 겁니다. 일반 국민 대상의 여론조사가 실효성이 없다는 주장에 대해서도 설문항목을 세부적으로 만들면 된다고 반박했지요.

한나라당 주장대로 미디어 관련법을 국민이 명확하게 인지하고 있지 않은 것이 문제가 된다면 그 자체가 오히려 미디어법을 국민에게 널리 알려 의견을 구하는 절차가 필요하다는 반증일 수도 있지요.

야당 측 위원들은 이 카드를 바둑에서 흔히 사용하는 '꽃놀이패'로 활용하려는 듯합니다. 지금까지의 추세를 보면 반대 의견이 많이 나올 것이 확실하기 때문에 여론조사가 실시되면 이를 내세워 한나라당의 일방 처리를 막고, 여당 측이 이를 거부하면 여론 수렴을 거친다는 전제가 깨졌다는 논리를 내세워 제동을 걸겠다는 것이지요.

여당 측 위원들은 여론조사 대신 보고서 작성 시 참고자료로 사용할 일반 국민의 언론 이용실태를 조사하자고 역제안 했습니다. 윤석민 서울대 교수의 분석처럼 조중동의 여론지배력이 생각보다 높지 않고 지상파방송의 독과점 현상이 심하기 때문에 신문의 지상파 진출을 허용하는 논리로 충분히 활용될 수 있다는 계산이겠지요. 이는 야당 측 위원들의 거부로 합의에 이르지 못했다는 게 여당 측 의원들의 주장인데, 야당 측 의원들은 이는 명백한 사실 왜곡이며 실태조사를 원칙적으로 거부한 적은 없다고 반박했습니다.

여당 측의 주장과 야당의 반박이 모두 근거가 있는 것이라면 둘 다 실시하면 아무 문제가 없을 듯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여당 측이 여론조사를 수용할 가능성이 희박한 데다 서로 상대방에게 책임을 떠미룰 만한 꼬투리를 잡으려는 듯한 인상이어서 미디어위는 최종 보고서 작성에도 이르지 못한 채 수명을 다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를 자아냅니다.

미디어렙법 법안 발의로 방통위-문화부 냉랭

이 역시 노 전 대통령 서거로 상황이 불투명해졌지만 5월 15일 한선교 한나라당 의원 등이 민영 미디어렙 신설을 골자로 한 방송법 개정안을 발의한 것도 논란을 자아내고 있습니다.

개정안은 한국방송광고공사(KOBACO)를 해체한 뒤 한국방송광고대행공사를 신설해 KBS와 EBS 등 순수 공영방송의 광고판매를 대행하게 하고 MBC와 SBS의 광고판매 대행은 민영 미디어렙에 맡긴다는 것입니다. 또한 민영 미디어렙의 1인 최대지분을 51%까지 허용하는 한편 KOBACO의 자산을 방송발전기금으로 전환해 종교방송과 지역방송 등 취약매체의 지원에 쓰도록 했지요.

현행 KOBACO 독점체제는 헌법재판소의 헌법불합치 결정에 따라 연말 안에 손질해야 합니다. 그러나 당초 방송통신위원회가 내놓은 1공영 다민영 방침을 수용한 것은 물론 민영 미디어렙을 사실상 지상파방송사의 자회사 격으로 만들도록 한 것이어서 곳곳에서 반론이 제기되고 있습니다.

종교방송 등에서는 헌재가 인정한 공익적 장것과 다름없을 뿐 아니라 취약매체와의 연계판매 가능성을 완전히 무시한 법안을 내놓았다면서 거세게 반발하고 있습니다.

반면 MBC와 SBS 등에서는 내심 환영하고 있으면서도 논의가 어떤 방식으로 진행될지 예의 주시하며 신중한 반응을 보이고 있습니다. 다만 MBC 일각에서는 이 문제가 MBC 민영화의 지렛대로 사용되지 않을까 우려하는 분위기도 있지요. 현업 PD와 기자들도 프로그램에 대한 광고주의 영향력이 높아지지 않을까 걱정하기도 하지만 워낙 지상파방송 광고 경기가 좋지 않아 이러한 목소리는 잦아들고 있습니다.

신문들은 예전과는 달리 비교적 조용한 태도를 보이고 있지요. KOBACO 해체를 통해 지상파방송 광고가 늘어나면 신문들이 타격을 입을 것이 뻔 한데 의외로 여겨지기도 합니다. 조중동이야 방송에 진출하면 될 것이라고 생각하는지 몰라도 다른 신문들까지 왜 그러는지는 모르겠더군요.

KOBACO를 관장하고 있는 문화체육관광부는 떨떠름한 표정을 짓고 있습니다. 한선교 의원 등이 문화부의 의견은 제쳐놓고 방통위 및 청와대와만 조율한 듯 한 징후가 보이기 때문이지요. 문화부는 예전에 제한경쟁을 통한 단계적 자율화, 즉 1단계로는 민영 미디어렙을 하나만 허용해 SBS 광고 대행을 맡기고 KOBACO가 MBC까지 관할하게 하는 방안을 내놓았습니다.

문화부에서는 어쩌면 1공영 1민영이냐, 1공영 다민영이냐, 혹은 방송사 참여지분 한도를 어디까지 할 것이냐 보다는 광고 주무부서가 문화부인데 유인촌 장관보다 최시중 방통위원장 파워가 높아 소관 역무를 빼앗기는 것 아니냐는 불안감이 앞서는 듯합니다.

문화부의 한 관계자는 "단순한 부처 이기주의를 넘어 광고라는 것은 신문, 잡지, 방송, 인터넷, 옥외광고, 영화 등 모든 미디어에 걸쳐 있기 때문에 이를 종합적으로 규제하고 조율하기 위해서는 문화부가 광고를 관장해야 한다"고 말하더군요. 콘텐츠 진흥 업무를 두고 방통위와 다툴 때 말하던 논리와 비슷하지요.

반면 방통위의 한 관계자는 "방통위가 방송과 통신의 규제와 정책을 맡은 기관인 만큼 방송 정책과 규제의 핵심인 방송광고를 우리가 관장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하더군요,

방통위 출범 때 부처별 소관 역무를 제대로 마무리 짓지 못하다 보니 이런 일은 언제든지 재발할 수 있습니다. 이러다보니 부처 간 갈등의 틈새를 활용하려는 사람도 눈에 띄고 대통령의 신임도 등 파워에 기대려는 사람도 나타나 합리적인 논의와 정책 집행이 이뤄지기 힘들지요.

※ 이 기사는 한국언론재단에서 제공했습니다. [이희용 기자  블로그 바로가기]

저작권자 © PD저널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모바일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