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파라치’ 보도부터 검찰 브리핑 생중계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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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파라치’ 보도부터 검찰 브리핑 생중계까지
'노무현 옥죄기'에서 자유롭지 않은 언론 … "통렬한 반성 있어야"
  • 김도영 기자
  • 승인 2009.05.27 0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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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이후 언론은 일제히 전 국민적인 추모 분위기에 동참했다. 불과 며칠 전까지 ‘박연차 게이트’ 수사와 관련해 검찰에서 흘러나온 얘기들로 노 전 대통령과 주변 인물들을 집요하게 추궁했던 언론은 금세 표정을 바꿨다.

노 전 대통령 서거 후 일부 언론은 검찰의 수사절차와 방식의 문제점을 지적하며 ‘정치검찰’의 문제를 부각시켰다. 준비가 덜 된 상태에서 지지부진한 수사로 노무현 전 대통령을 여론의 비판에 노출시켰고, 뇌물수수 혐의 입증과 별 상관없는 돈의 사용처를 규명하면서 ‘망신주기’ 식 수사를 펼쳤다는 지적이다.

그러나 지난 몇 달간 검찰의 ‘노무현 옥죄기’ 파트너는 언론이었다. 실제로 600만 달러 수수설이 흘러나온 시점부터 검찰에 출두한 4월말까지 노무현 전 대통령과 가족들은 언론의 집요한 무차별 포화를 맞았다.

▲ 노무현 전 대통령의 사저가 내려다보이는 봉화산 꼭대기에 자리잡은 사진기자들. 경향신문 4월 23일 주말판 1면.
봉화산 꼭대기에 진을 친 사진 기자들의 카메라 때문에 노 전 대통령 부부는 사저 마당을 산책하는 것도 허락되지 않았고, 지난달 30일 노무현 전 대통령이 검찰에 출두하자 각 방송사는 봉하마을부터 서울 대검찰청까지 헬기를 동원한 추격전을 벌이며 수사와 상관없는 이벤트를 연출하기에 바빴다.

노 전 대통령을 겨냥한 수사가 본격화되면서는 검찰 관계자의 입을 빌린 생중계식 보도가 줄을 이었다. 언론들은 사실 관계도 확인하지 않고 혐의와 관계없는 비본질적인 사안들을 여과 없이 보도했다. 지난달 23일 노 전 대통령이 박연차 전 회장으로부터 억대 명품시계를 받았다는 보도가 나오면서 대검찰청에서는 한 때 ‘빨대(취재원을 가리키는 은어) 논란’이 일기도 했다.

SBS는 지난 13일 <뉴스8>에서 “권양숙 여사가 노무현 전 대통령의 회갑 선물로 받은 1억 원짜리 명품 시계 두개를 논두렁에 버렸다고 노 전 대통령이 검찰에서 진술한 것으로 확인됐다”며 “이 자체가 본질은 아닌듯 하지만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고 단독 보도했다.

<조선일보>는 14일치 10면 기사 ‘노 패밀리 검은돈 과연 640만달러뿐?’에서 “(노)정연씨는 뉴욕 아파트 계약서를 찢었다고 진술했다”며 “검찰은 계약서를 찢은 시점이 이 사건이 불거진 이후라고 추정한다”고 전했다. 이같은 언론보도에 대해 노 전 대통령 측은 일부 사실이 아니라고 반박했지만 변명으로 밖에 비쳐지지 않았다.

▲ 조선일보 5월 14일자 10면.
노 전 대통령이 검찰에 출두한 지 이틀만인 지난 2일 <동아일보>는 1면 톱기사로 “대검찰청 중앙수사부는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해 박연차 태광실업 회장(구속 기소)에서게서 600만 달러의 뇌물을 받은 혐의로 사전 구속영장을 청구해야 한다고 의견을 모은 것으로 1일 알려졌다”고 보도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언론의 근거 없는 보도 때문에 사건의 본질이 엉뚱하게 흘러가는 것 같다”며 “검찰에서 이러한 얘기를 의도적으로 흘리는 것으로 보인다”고 불만을 토로했지만 대부분의 언론 보도는 변하지 않았다.

진중권 중앙대 겸임교수는 26일 <경향신문>에 기고한 글에서 “검찰-빨대-언론은 혐의를 사실로 확정했다”면서 “재판이 열리기도 전에 이미 판결은 법정 밖에서 내려졌다. 증거는 언론이 아니라 법정을 위한 것인데, 왜 언론 플레이로 전직 대통령을 망신 주는 정치적 기동을 해야 했냐”고 비판했다.

검찰 브리핑을 생중계식으로 보도하는 현행 방식에 대한 문제제기도 있다. 최문순 민주당 의원은 25일 평화방송  <열린세상 오늘 이석우입니다>와의 인터뷰에서 “형법 126조에 명시된 ‘피의사실 공표죄’는 검찰이나 경찰이 피의사실을 기소 전에 공표하면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5년 이하의 자격정지에 처하도록 하는 중법”이라며 “이것을 검찰이 직접 행하고, 언론이 무비판적으로 받아썼다는 점에서 서로 간에 통렬한 반성이 있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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