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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방송 다시보기(27)] 이정호 참세상 편집국장

MBC 주말드라마 <내일 잊으리>(연출 박철, 작가 박정란)는 88년 하반기 최고의 시청률을 자랑했다. 같은 고향에서 오누이처럼 자라 결혼을 약속했던 이성현(임채무)이 부와 명예를 위해 호텔 후계자 오세영(이휘향)과 결혼해 버리자 배신당한 서인애(김희애)가 끝내 복수하고 만다는 내용이다. 배신과 복수라는 애정드라마의 전형이다. 이후 2000년대 들어 리메이크된 KBS 일일드라마 <노란 손수건>의 작가도 박정란이 맡았다.

<내일 잊으리>에서 김희애는 복수심에 불타 가구 디자이너로 성공해 옛 애인에게 접근해 광기어린 연기를 선보였다. 인해(김희애)의 복수로 성현(임채무)은 비참한 생황을 하다가 교통사고로 죽는다. 야망을 위해 애인을 버렸던 임채무였지만 동정심도 낳았다. 이 드라마는 신인 김나운의 첫 드라마 출연작이기도 하다. 드라마 종결을 앞둔 89년 1월 많은 시청자들이 인애와 성현이 돌아와 서로 화해하기를 숨 졸이며 봤지만 헤피엔딩은 없었다.

▲ MBC 주말드라마 <내일잊으리>
극중에서 서인애(김희애)는 뛰어난 가구 디자이너로 성공한 가구회사 CEO였지만 사무실 어디에도 안목을 갖춘 가구 하나 없었다. 좁은 현관에 걸린 요란한 장식 거울, 조잡스런 장식장에 잔뜩 늘어놓은 동물 인형, 유치한 소파 등받이와 쿠션, 식탁 의자 커버 등 세트와 소품 전체가 여느 가정드라마에서 사용하던 그대로였다. 그 흔한 설계 테이블 하나 없었다. 서인애(김희애)는 전화기와 메모지, 서류함이 가득 놓인 일반 사무용 책상 위에서 가끔 설계도면을 펼쳐본다. 직업이 명색이 디자이너라서 설계도 보는 장면을 아예 뺄 수도 없어 궁여지책을 내놓은 편법이었다.

서인애(김희애)가 황 회장 집에서 아파트로 독립해 나오던 날 이사짐을 풀며 옷장 속에 가득 걸어 놓았던 옷이 다음 회에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져 버렸다. 호텔 여사장 오세영(이휘향)은 집에 돌아와 옷을 갈아입는 장면마다 옷장 문을 가로막고 서서 부자연스럽게 옷을 걸었다.

오세영(이휘향)은 늘 여성잡지의 화보 촬영을 하다가 방금 나온듯한 치장을 하고 잠자리에 들었다. 오세영의 이런 모습은 드라마 끝까지 일관했다. 샤워를 끝낸 오세영이 화장대 앞에 앉아 잠들기 전 밑화장을 하고 나서 완벽한 화장한 얼굴로 잠자리에 들었다. 이런 어설픈 장면은 시청자의 몰입을 방해하기 일쑤다.

▲ 이정호 참세상 편집국장

20년이 지난 지금도 드라마에서 먹고 입고 자는 것은 늘 어색하다. 그래서 요즘 드라마는 시트콤이 아니면 대체로 이런 장면을 설정조차 안 한다. 자주 남녀의 신체접촉과 무리한 전개나 극단적 대사로 때우려고 한다. 연기력이 되는 배우라도 있으면 먹혀들겠지만 그쪽도 상황은 녹록치 않다. 경제위기라고 소품 줄이는 드라마가 얼마나 버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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