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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실종자 문제 다룬 MBC 다큐스페셜 최승호 PD
광주MBC 특별기획 「밀항탈출」 연출한 오창규 PD
KBS 「일요스페셜」 ‘731부대…’ 만든 SIS 이원혁 PD
문체공위 최고로 평가받은 국민회의 최재승 의
  • 승인 1997.05.2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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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tsmark0|광주에 대한 빚’을 프로그램으로 갚는다5·18실종자 문제 다룬 mbc 다큐스페셜 최승호 pd
|contsmark1|5·18이 법정기념일로 제정되고, ‘5·18 기념식’이 처음으로 tv를 통해 전국에 생중계되었지만 오히려 5·18 관련 프로그램은 예년에 비해 앙상했던 상황에서, 뒤늦게(?) ‘그날의 광주’를 이야기하려는 사람이 있다. 오늘(29일) 방영될 「mbc 다큐스페셜」-5·18, 사라진 작전 보고서’를 연출한 최승호 pd가 바로 그 사람이다.“노조 홍보국장으로 있다가 지난 4월 30일 현업에 복귀해 5·18 프로그램을 기획하기가 어려운 시점이었지만 당시 5·18을 다룬 프로그램이 없었고, 누군가 해야할텐데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최 pd가 ‘광주’를 프로그램으로 다루게 된 이유는 일면 평범하다. 하지만 그에겐 1년의 공백이 있었다는 것과, ‘광주’라는 무거운(?) 주제, 짧은 제작기간을 감안한다면 결코 만만치 않았을 텐데… 그는 대뜸 자신이 80학번이라는 이야기를 했다.“대구에서 대학을 다녔는데 80년 5월 16일까지 데모를 했었어요. 만약 휴교령이 떨어지면 학교 정문에서 모이자는 약속도 했었는데 막상 학교 정문에 탱크가 서 있는 상황이 되자 두려움 때문에 침묵한 거죠. 광주민중항쟁은 침묵하지 않은 자들의 대항이었고, 그들이 흘린 피가 양심의 짐으로 남아있는 겁니다.”최승호 pd는 「다큐스페셜」에서 현재에도 가장 큰 의혹과 진상규명의 대상으로 남아 있는 암매장과 실종자 부분을 집중적으로 다루었다고 전한다. “5·18 광주민중항쟁이 얼마나 많은 희생을 치뤘는지, 그 상처가 얼마나 큰지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5·18이 우리나라 민주주의를 부활시킨 원동력이었다는 것을 말하고 싶었어요.”그는 엄혹했던 5공 시절에도 ‘광주에 대한 빚’을 기억하고 있었는데 오히려 지금에 와서 광주민중항쟁이 ‘광주만의 문제’로 지역화되는 데 대한 안타까움과 우려를 표했다. 또 pd들이 예전에는 ‘5·18’을 꼭 다뤄보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했었는데 지금은 상대적으로 많이 알려져 지겹다고 생각하는 것 같단다. “pd는 프로그램을 통해서 사회현상을 반영하는 것뿐만 아니라 사회를 조망하고 책임 있는 전망을 제시해야 하지 않을까요? 5·18 문제도 분명 재조명되고, 올바로 자리매김해야 할 부분이 있다고 봅니다.”며칠을 날밤 새웠다며 충혈된 눈, 까칠한 얼굴로 인터뷰에 응하던 최승호 pd는 “이 말은 좀 크게 써주었으면 좋겠는데….” 하며 제작환경에 대한 문제를 꺼냈다.“다른 프로그램도 비슷하겠지만 「다큐스페셜」의 경우 6명의 pd가 6주 단위로 프로그램을 제작하는데 이런 상태로는 프로그램의 질적 발전을 기대할 수 없습니다. 다큐멘터리는 소위 장사가 잘 안되는 장르지만 방송사 차원에서 인적·물적 투자가 이루어져야 합니다.”<이서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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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tsmark4|외딴 섬지기의 ‘절망’극복법광주mbc 특별기획 「밀항탈출」 연출한 오창규 pd
|contsmark5|‘잠’에 관한 한 손색없는 리버럴리스트-졸리면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는 사람-인 오창규 pd도 잠에 대해서 초인적인 모습을 보여주는 때가 있다.‘감독’이 된 책임감 때문이었을까. 지난 4월 중순, 광주mbc 특별기획 다큐드라마 「밀항탈출」(5월 16일 저녁 7:05∼8:25 방송) 촬영에 들어갔을 때도 그랬다. 6일 동안의 드라마 촬영은 거의 매일 새벽 두세 시까지 계속되는 강행군이었는데도 그는 좀처럼 잠에 관대하지 않았다. 짐작컨대 그 이유는 언젠가 그가 했던 다음의 말에 있을 성싶었다. “늘 열악한 제작 여건을 탓하고 표현의 자유가 관제되는 환경을 불평하면서 프로그램을 만들어 왔다고 치자. 그런데 만약 모든 조건을 다 충족시켜 줄 테니 네가 만들고 싶은 것을 원없이 한번 만들어 봐라 했을 때 과연 나는 무엇을 어떻게 만들어 낼 것인가 고민했다.”드라마 연출은 두번째이지만 그는 경험 많은 드라마 연출가 못잖은 ‘연기력’과 ‘구라’를 갖고 있다. 「밀항탈출」에서 극중 주인공 윤한봉이 형사들의 눈을 피해 여동생의 자취방을 찾는 씬을 촬영할 때였다. 술에 취한 동네 아저씨 한 명이 나타나 “뭣을 찍는다냐? 5·18? 뭔놈의 5·18을 찍어? 똑바로 해!” 하면서 휘젓고 다니는 상황이 발생했다. 웬만큼 달래도 순순히 물러나지 않을 기세였다. 오창규 pd 왈, “맘에 안 들먼 말 하씨요이. 자, 스탠바이… 우리 총감독님 마음에 들게 멋지게 한번 보여주드라고잉.” 피곤에 지친 스태프들 그리고 그 아저씨도 웃고 말았다.오창규 pd는 관심분야가 넓은 사람으로 보인다. 동료나 후배가 제작하는 방송 프로그램을 보면 꼭 ‘찍는 소리’ 한 마디를 빼놓지 않고, 「얼씨구학당」이라는 국악 대중화 프로그램을 3년째 연출하면서는 ‘국악인’을 자처하고, 대중이 많이 모이는 공연이나 행사에 곧잘 mc로 ‘몸을 팔면서’ 족탈불급(足脫不及)의 애드립을 아끼지 않으며, 소주 석 잔이면 “나 죽겄네” 하면서도 흥이 있는 술자리는 작파할 생각을 않고….그런 오 pd도 때로는 외딴 섬지기처럼 외로워 보인다. 책상에 앉아 뭔가 생각에 잠겨있을 때, 킁킁 소리를 내며 편집기 앞에서 궁싯거릴 때 그의 뒷모습엔 고적한 분위기가 드리워져 있다.그런데도, 그는 남을 웃김으로써 자신이 즐거워지는 사람인 듯하다. 하여 그는 ‘제작여건이 어쩌고 저쩌고 하는’ 후배들 앞에서 절망이나 환멸이라는 말 대신 “으짜겄냐”하며 담배 한대참을 권한다. “그런 거 있지, 뭐 그런 거 있잖아 이-”하면서 상대방의 어깨를 막 치는(사실 그다지 웃기지도 않는데 하릴없이 웃게 만드는) 그의 큰 제스처는 ‘귄’이 쫙쫙 흐르는 남도사람의 것이고, 늘 앞서는 착안으로 보여주는 그의 기량과 넉살은 단수로 표현하기엔 허전한 감이 있다.윤행석 <광주mbc 제작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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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tsmark9|"독립제작사의 이점을 잘 활용해 주길”kbs 「일요스페셜」 ‘731부대…’ 만든 sis 이원혁 pd
|contsmark10|인간 생체실험이라는 잔혹한 만행으로 알려진 731부대와 ‘마루타’를 모르는 사람들은 거의 없다. 이를 소재로 한 다수의 소설과 영화까지 만들어졌고 영국, 미국, 심지어 일본마저도 방송으로 이를 다루었다. 이미 여러형태로 다뤄진 것이어서 새로운 사실이 있어야 했다. 삼일절도 아니고 광복절도 아닌데 ‘왠 731?’ 하고 프로그램을 본 시청자들은 ‘731부대가 살아있다’는 사실에 경악했다. 일본의 731부대가 저지른 만행을 통해 얻어진 기술, 세균 표본 등을 미국이 다 가지고 가고 덕분에 731 부대원은 단 한명도 일본 전범 재판에 회부되지 않았으며 오히려 일본 의료계에서 주도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는 뒷거래의 현장을 확인하게 된 것이다. kbs 「일요스페셜」 ‘731 부대는 살아있다’를 연출한 이원혁 pd를 만났다. 그는 84년 kbs에 입사해 「그린패트롤」, 「6시 내고향」 등과 「일요스페셜」의 ‘빅토르 최’ 등을 연출했다. 지금은 독립프로덕션 (주)서울국제위성뉴스(sis)에서 제작주간을 맡고 있다. 그러니까 ‘731부대…’는 외주제작물이다. “독립제작사였기 때문에 가능했을 겁니다. 실력문제가 아니라 기존의 공중파 방송사로서는 이렇게 프로그램을 만들 수 있는 제작시스템이 안돼요. 한 pd를 그렇게 오래 한 프로그램에 전념케 하기 힘들거든요. 미국에서 공개된 기밀문서에 근거한 작업이라 컴퓨터 그래픽 등을 이용해 그림을 만드는 작업도 만만치 않았습니다. 그림 구성과 관련해서는 pd들이 아이디어나 의지가 있어도 기존 방송사들의 경우 장비나 인력이 따라 주질 못해요. 독립제작사들은 효율적인 작업체제를 갖춰야 합니다. 기존 방송사의 체제를 도입하면 안되죠. 행정적 절차가 복잡하고, 의사결정도 늦고 효율성이 떨어져요.”이원혁 pd는 독립제작사의 이점을 방송사들이 잘 활용한다면 상당히 유용하리라는 생각을 갖고 있다. 프로덕션에서 일하면서 가장 어렵다고 생각하는 것은 pd들의 질적 수준을 제고하는 문제다. 외주작업을 하는데 작업을 맡는 프로덕션과 주는 방송사 사이에는 제작비 문제나 pd의 능력 등과 관련해 입장 차이가 있고 이는 일차적으로 프로그램의 질을 높이는 것에서 해결방법을 찾을 수 있다. 하지만, 매체가 많이 늘어난 만큼 케이블 tv, 프로덕션 등에 포진해 있는 pd들도 많아졌지만 그들이 瓦李 단련될 수 있는 기회는 공중파에 비해 훨씬 적다. 전문적이고 노하우가 많이 있는 선배 pd들이 부족하다는 게 가장 큰 맹점이다.“pd연합회도 기존 공중파 방송사에 소속된 pd들 말고 이렇게 프로덕션에서 출발해서 활동하고 있는 pd들을 포용해서 변화하는 방송환경을 끌어안아야 한다는 제안을 하고 싶네요.”그는 헤어지면서 진심으로 제안했다. <강현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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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tsmark13|“pd는 외국문화 걸러내는 문화 선도자”문체공위 최고로 평가받은 국민회의 최재승 의원
|contsmark14|그는 최근 중앙일보가 실시한 15대 국회의원 평가에서 문화체육공보위원회 위원 중 최고라는 평가를 받았다. 지난해 국정감사를 마치고 조선일보가 실시한 평가에서도 같은 등수를 받은 적이 있다.그는 상임위 회의에 한번도 결석한 적이 없는 성실함에 날카로운 대정부 질의로 주목받았었다. 대체적으로 풍부하고 치밀한 자료조사와 현장조사에 근거한 질의가 그의 가장 큰 장점이라고 평가되지만 그 고단한 신경전 가운데 목소리 높이는 일 없이 ‘수감 대상을 몰아세우는’ 것이 더 큰 장점으로 여겨진다.최재승 의원(국민회의, 전북 익산 갑)은 14대 국회의원으로 의정활동을 시작했고 문체공위 활동은 15대부터 시작했다. 14대 때 건설교통위에서 일할 때 ‘성수대교 붕괴 예언’으로 유명해졌다. 성수대교가 붕괴되기 바로 9일 전에 경고했던 것이다. 예의 그 발로 뛰는 조사 덕분이다.“현장에 자주 나갑니다. 예를 들어 서초동 예술의 전당을 지나는 길에 훌쩍 내려서 들러보는 식이지요. 국회의원이 그렇게 갑작스레 들르는 걸 별로 좋아하는 것 같진 않더군요. 설문작업을 수시로 하는데 14대 건교위 있을 때는 톨게이트 같은 공공장소에서 하루 종일 설문지를 돌리고 수거하는 작업을 하기도 했었습니다. 공부도 많이 해야되구요. 공부하지 않는 국회의원들은 이제 설 자리가 없어졌어요. 자료가 확실하지 않으면 발언하지 않는다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습니다.”그의 정치활동 방식을 엿볼 수 있는 또 하나의 원칙.“국회의원 되고 나서 두 가지를 결심했습니다. 결혼 주례 안 서고, 취직 알선 안 한다구요. 결혼 주례는 많이 들어왔지만 정말 한번도 서본 적이 없습니다. 취직 알선 문제는 지키기 쉽지 않았어요. 젊은 나이에 혼자 아이 둘 데리고 생계를 꾸려가야 하는 고향분이 있었는데 친한 개인사업체에 소개시켜줬습니다.”솔직하기도 하다. 국감 때 냉철하게 질의하는 것을 지켜봐 왔던 기자로서는 그런 소탈함과 솔직함이 의외였다. “외국문화가 도입돼 여러 가지 경로로 사회에 뿌리를 내리고 있는데 이를 걸러내는 역할을 문화선도자라고 불리는 pd들이 해줘야 될 겁니다. 그런 면에서 프로그램 모방 얘기가 자꾸 거론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아요. 물론 방송법 개정이라는 중요한 문제가 아직 남아 있죠. 법·제도적 차원에서 방송·언론의 공정성, 공익성을 담보할 수 있는 큰 장치들을 마련하는데 우리같은 정치인들과 방송·언론인들이 다 같이 노력해야 하는데 프로그램의 질적 수준을 제고하는 것은 주요하게 pd들이 책임져야 하지 않겠습니까.”pd들에게 전해달라는 요청이다. <강현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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