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당신을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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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당신을 사랑합니다”
서울 시청 앞 노제…광장 가득 메운 시민들 마지막 작별인사
  • 백혜영 기자
  • 승인 2009.05.29 14:5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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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당신을 사랑합니다. 노무현, 당신을 영원히 기억하겠습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과 시민들의 마지막 인사가 끝났다. 슬픔을 참지 못한 시민들의 흐느낌이 여기저기서 들려왔다. 서울 시청 앞 광장은 물론 광화문 일대 도로까지 가득 메운 시민들은 29일 오후 노 전 대통령과 아쉬운 작별을 고했다.

▲ 경복궁 안뜰에서 영결식을 마친 뒤 고 노무현 전 대통령 운구 행결이 광화문을 지나 서울광장으로 향했다. 노란색 모자와 노란 풍선을 든 시민들이 이를 따르고 있다. ⓒPD저널
오후 1시 23분, 경복궁을 출발한 노무현 전 대통령의 운구 행렬이 서울 시청 앞 광장에 들어섰고, 시민들과 함께 하는 ‘노제’가 진행됐다. 권양숙 여사, 아들 건호 씨, 딸 정연 씨 등도 노제에 함께 했다.

시인 안도현은 이 자리에서 ‘고마워요, 미안해요, 일어나요’란 제목의 추모시를 낭독했다.

“뛰어내렸어요. 당신은 무거운 권위주의 의자에서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세상으로 뛰어내렸어요. 당신은 끝도 없는 지역주의 고압선 철탑에서 버티다가 눈물이 되어 버티다가 뛰어내렸어요. 당신은 편 가르고 삿대질 하는 냉전주의 창끝에서 깃발로 펄럭이다 찢겨진 그리하여 끝내 허공으로 남은 사람. 고마워요 노무현. 아무런 호칭 없이 노무현이라 불러도 우리가 바보라 불러도 기꺼이 바보가 돼줘서 고마워요.”

추모시에서는 노 전 대통령의 죽음과 현 상황에 대한 비판도 우회적으로 담겼다.

“미친 민주주의 기관차에서 당신은 뛰어내렸어요. 뛰어내려 깨진 붉은 꽃잎이 됐어요. 저 하이에나들이 밤낮으로 물어뜯은 게 한 장의 꽃잎이었다니요. 저 가증스러운 낯짝 앞에서, 저 뻔뻔한 위선 앞에서 억울하다 땅 치지 않을래요. 무자비한 권좌의 폭력 앞에서 소리쳐 울지 않을래요.”

▲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을 추모하는 노제가 서울광장에서 거행됐다. ⓒPD저널
안도현 시인에 이어 추모시를 바친 김진경 시인 역시 “법이 모든 국민에게 공정해야 한다는 당신. 그 작고 아름다운 상식이 왜 이렇게 말해질 수밖에 없나”라고 되물은 뒤 “당신은 늘 바보 노무현이었다. 당신의 존재는 운명처럼 국민이 나라의 주인이란 상식을 말하고 있었다”며 “그래서 힘 있는 소수가 나라를 좌지우지해야 한다고 믿는 사람들은 당신을 늘 두려워했고 당신의 존재를 지우고 싶어 했다. 그런 작고 아름다운 상식은 이 세상에 없다고, 헛된 희망 품지 말라고 밀짚모자 쓰며 환하게 웃는 당신을 지우고자 했다”고 꼬집었다.

김 시인은 또 “우리의 침묵이 당신을 벼랑 끝으로 내몰았다”며 “칼날 앞에서 작고 아름다운 상식을 말할 수 있는 방법은 그리하여 당신에게 죽음뿐이었다”고 자책하기도 했다.

사회를 맡은 도종환 시인도 “우리는 대통령이 스스로 목숨을 끊어야 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며 “그분의 몸이 산산조각 났는데 그것은 우리나라의 민주주의, 균형발전, 평화를 염원하는 마음이 산산조각 난 것인지도 모르겠다”고 탄식했다.

시인들의 추모사가 끝나고, 노 전 대통령이 생전에 통기타를 메고 불렀던 ‘상록수’가 흐르면서 노 전 대통령의 유서가 다시 한 번 낭독됐다. 시청 앞 광장은 다시 한 번 울음바다가 됐고, 아들 건호 씨와 딸 정연 씨도 참던 눈물을 다시 터트렸다.

▲ 노제를 지켜보던 시민들이 노란 풍선을 하늘로 띄워보내고 있다. ⓒPD저널
이어 도종환 시인은 “노무현, 당신을 사랑합니다. 노무현, 당신을 영원히 기억하겠습니다”란 말을 반복했고, 시민들이 그의 말을 이어 합창했다.

그는 마지막으로 “사랑으로 한 마음 돼 사람 사는 세상, 바보들이 잘 사는 세상을 만들어 가자. 불의에 타협하지 않는 대통령. 불의에 타협하지 않아도 성공할 수 있다는 증거를 보여준 우리들의 영원한 대통령 노무현 당신을 사랑합니다”고 외쳤고, 노 전 대통령이 생전 즐겨 불렀던 ‘사랑으로’를 시민들과 함께 열창하면서 노제를 마무리했다.

오후 1시 57분께 노 전 대통령의 운구 행렬은 서울역으로 출발했고, 그 뒤를 유족들과 장의위원, 만장행렬, 그리고 시민들이 뒤따랐다.

▲ 진보신당에서 '이명박 사과, 내각 총사퇴 더 이상 죽이지 마라'는 현수막을 서울광장 옆에 걸어뒀다. ⓒPD저널
이날 노제에 참석, 두 눈이 새빨개질 정도로 울먹이던 시민 함정연(28) 씨는 “처음으로 내 손으로 뽑은 대통령이라 너무 마음이 아프고 슬프다”며 “가까이에서 볼 수는 없지만 같은 자리에서 슬퍼하려고 이 자리에 나오게 됐다”고 말했다.

함 씨는 “노 전 대통령은 가장 민주적이고 국민 편에 서줬던, 인성이 된 분으로 기억할 것 같다”며 “앞으로 이렇게 훌륭한 대통령은 다시 나오지 않을 것 같다”고 덧붙였다.

함 씨는 김대중 전 대통령의 추도사를 막고, 영결식 하루 전날까지 서울 시청 앞 광장을 막았던 현 정부의 태도에 대해서는 “이번 일로 현 정부에 대한 반감을 더 갖게 된 것 같다”며 “너무 화가 난다”고 불만을 표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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