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모 끝난 경찰 “추억은 집에서 나눠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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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제 끝나자마자 ‘진압본색’ 드러내며 광장 봉쇄 시도

추모는 끝났다. 적어도 경찰에게는 그랬다.

노제를 마친 노무현 전 대통령의 운구 행렬이 서울역으로 이동한 뒤 서울광장 주변에서 고인에 대한 추억을 나누던 추모객들은 오후 3시 하나 둘 진입하는 경찰 차량에 술렁이기 시작했다.

“우리는 애끓는 심정으로 고 노무현 대통령을 떠나보냈습니다. 이제 마음을 접고 일어나야 합니다. 일터와 집으로 돌아가 동료·가족들과 고인과 영결식에 대한 추억을 나누십시오. 질서를 지키는 게 고인이 바라는 일입니다. 만약 해산하지 않을 경우 여러분은 도로교통법과 형법을 위반하는 것입니다.”

▲ 시민들이 만든 노무현 전 대통령의 운구차 ⓒPD저널

노 전 대통령을 아직 보내지 못한 추모객들은 흥분하기 시작했다. 일부 시민들이 서울광장을 봉쇄하고 나선 경찰 버스 3대를 향해 물병을 던지며 항의하기 시작했다. 5분여가 지난 뒤 경찰 버스는 물러났지만 이번엔 전경들이 그 자리를 메우기 시작했다. 경찰버스를 보호하기 위함이었다. 흥분한 시민들을 향해 전경들은 방패를 휘두르기 시작했다.

삼삼오오 흩어져 있던 시민들이 서울광장에서 무교동 방향에 위치한 국가인권위 앞으로 모여들기 시작했다. 구호들이 터져 나왔다. ‘민주주의 사수하라’ ‘살인정권 명박퇴진’ ‘시청광장 개방하라’

“추모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대학생 김수진(22)씨는 이렇게 외치며 결국 또 다시 눈시울을 붉히고야 말았다. 김씨는 “우리가 서울광장에 남아있는 이유는 폭력을 행사하기 위함이 아닙니다. 억울하게 떠난 노 전 대통령을 추모하기 위함인데, 우리와 달리 경찰에 있어 추모는 이미 끝난 일인가 봅니다. 서울광장을 점거하고 있는 것은 우리가 아닌 저들입니다.”

▲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추모 행사를 계속 진행하고 있는 시민들과 대치 중인 경찰 ⓒPD저널

오후 4시를 조금 넘긴 시각, 노 전 대통령의 운구행렬을 따라 서울역으로 갔던 추모객들이 서울광장으로 돌아왔다. 경찰은 또 다시 경고하기 시작했다. “일터로 집으로 돌아가서 동료·가족들과 고인에 대한 추억을 나누십시오.”

돌아온 추모객들이 분통을 터트렸다. 추모차량을 이끄는 사회자가 “우린 오늘 오전 노 전 대통령을 죽음으로 몰아간 MB가 (노 전 대통령 앞에) 헌화하는 모습을 그저 지켜볼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제 우리의 목소리를 내봅시다. 각자 앞으로 나와 자유발언을 합시다”라고 제안했고, 발언을 신청한 시민들이 하나 둘 앞으로 나왔다. 이에 경찰이 “선동하지 말라”고 경고했지만 시민들은 야유로 답했을 뿐이다.

경찰의 저지에도 앞으로 나선 한 시민은 “조·중·동을 비롯한 일부 신문과 방송이 광고를 팔아먹기 위해 애꿎은 노무현 전 대통령을 연일 때리며 고인을 시정잡배로 만들었다. 그뿐만이 아니라 노 전 대통령이 서거하자 ‘막판뒤집기’를 위함이라고 매도했다. 막판뒤집기를 자신의 목숨을 걸고 하는 이도 있나. 노 전 대통령을 끝까지 모욕하고 있다”고 격노했다.

▲ 노무현 전 대통령의 노제가 끝난 뒤에도 서울 시청 앞 도로를 가득 메우고 있는 시민들의 모습 ⓒPD저널

역사학을 전공하는 20대 대학생이라고 밝힌 한 여성은 “지금 살수차를 동원해 추모객들을 자극하고 있다. 우리는 소통을 위해 모였다. 또한 지금 불법점거 운운하는 정부와 경찰은 얼마나 합법적인가. 추모객들에게 불법점거의 죄를 씌우려거든 정부의 불법부터 청산해야 한다. 민주국가에선 민주의 목소리가 나와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두 아이와 함께 노 전 대통령의 마지막 길을 배웅하기 위해 나왔다는 한 부부는 “아이들이 있기 때문에 더 위험해지기 전 돌아가야 할 것 같다”면서도 “노 전 대통령의 서거를 슬퍼하는 많은 이들과 함께 고인에 대한 추억을 나누고 싶었는데, 경찰이 저렇게 일방적으로 서울광장을 봉쇄하려 들며 ‘집에서’ 애도하라고 하는 것에 기가 막힐 따름”이라고 말했다.

오후 5시 40분. 프레스센터 앞까지 진출한 경찰은 현재까지도 ‘해산’을 촉구하고 있다. 서울광장 주변에는 일몰 전 경찰이 강제해산에 나설 수 있다는 위기감과 함께 긴장이 고조되고 있다.

▲ ‘MB아웃’ 손팻말을 들고 있는 시민들의 모습 ⓒPD저널
▲ 경찰 앞에 누워 항의하고 있는 한 시민의 모습 ⓒPD저널
▲ 노무현 전 대통령의 사진을 들고 있는 시민의 모습 ⓒPD저널
▲ 서울시청 앞 도로를 가득 메운 시민들의 모습 ⓒPD저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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