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전 대통령 언론보도 어땠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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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일 ‘검찰수사와 언론보도, 무엇이 문제였나?’ 토론회

“그는 역대의 어느 정권보다 후임정권에 약을 올린 대통령이었다…어쩌면 노씨와 그의 사람들이 지금 당하고 있는 정도는 노씨 등이 너무 까불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조선일보 3월 3일, [김대중 칼럼] 4년 후 MB사람에게 주는 경고 中)

“5년간 대한민국을 이끌었던 집권 세력이라는 그들의 도덕성이나 의식 세계가 딱 길거리 건달 수준이다”(조선일보 4월 16일, 강금원 부통령 모시며 뒷돈 받던 친노 건달들 中)

“만지지 말아야 할 돈을 만지면 그것이 똥이 되는 것이다. 그 똥을 먹고 자신의 얼굴에 처바르고 온몸 전체에 뒤집어쓴 사람들이 지난 시절 이 나라의 대통령이었고 그 부인이었으며 아들이었고 활개 치며 내로라하는 얼굴들이었다니…”(중앙일보 4월 11일, 화류관문 금전관문 中)

“저의 집에서 박연차 회장의 돈을 받았다고 실토하고 사과했다. 재임 시절 도덕성 운운했던 것이 다 연기였다는 커밍아웃이다”(경향신문 4월 9일, [여적] 지도자와 연기자 中)

故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이전 언론이 보인 보도 태도는 ‘충격적’이었다. 조중동은 물론 경향, 한겨레도 사설‧칼럼 등을 통해 노 전 대통령에 대한 인신 공격적 발언을 쏟아냈다. 노 전 대통령 서거 이후 언론 보도에 대해 쏟아진 비판의 단초는 언론 스스로 제공했던 셈이다.

12일 오후 2시 정동 프란체스코 교육회관 4층 소회의실에서 한국언론정보학회 주최로 ‘검찰수사와 언론보도, 무엇이 문제였나’를 주제로 한 토론회가 열렸다.

▲ 12일 오후 2시 서울 정동 프란체스코 교육회관 4층 소회의실에서 ‘검찰 수사

이 자리에서 정미정 성균관대 교수는 노 전 대통령 서거 이전 우리 언론이 보인 보도 태도를 분석했다. 정 교수는 올해 사건이 본격적으로 보도되기 시작한 3월 20일부터 5월 22일까지의 보도를 대상으로 삼았다.

“노 전 대통령 보도, 인터넷 악플 수준의 노골적이고 악의에 차 있었다”

정 교수는 “분석 결과 신문 사설‧칼럼에서 노 전 대통령과 관련한 조롱, 비난, 모욕, 과도한 기호의 사용이 자주 눈에 띄었다”며 “흡사 인터넷 상에서의 악플을 보는 듯한 느낌을 줄 정도로 노골적이고 원색적이며 악의에 차 있었다”고 지적했다. 정 교수는 “이러한 비난은 유죄가 확정된 연쇄살인범에게도 사용하지 않는 표현”이라며 “이러한 표현은 ‘비판’이 아니라 ‘비난’이라고밖에 할 수 없다”고 꼬집었다.

신문의 사설‧칼럼에서 나타난 문제는 이뿐 아니다. 피의자인 노 전 대통령 측의 반론을 무시하고, 확인되지 않은 혐의를 전제로 유죄를 단정하는 기사들이 계속됐다.

정 교수는 “신문들은 ‘시치미’, ‘졸렬한 발상’, ‘버티는 꼴’, ‘군색하고 역겨운 짓’, ‘소박하지만 구차한 삼류드라마’ 등의 표현을 쓰며 검찰의 입장을 확인된 사실로 보도하면서 모든 혐의 사실이 입증된 것을 전제로 원색적 비난을 했다”고 지적했다.

▲ 정미정 성균관대 교수 ⓒPD저널

정 교수는 또 “단순한 비난이 아니라 노 전 대통령의 ‘법적 대응’에 대한 비난도 이뤄졌다”며 “확정되지 않은 피의사실에 대한 이견의 제시는 언론의 입장에서 마땅히 비중을 두어 보도해야 함에도 법적 대응을 원색적 표현을 사용해 비난하는 것은 그의 유죄를 확정함과 동시에 심각한 인권 침해와 명예훼손이 될 수 있다”고 비판했다.

사건과 관계없는 노 전 대통령 재임 기간에 대해 평가절하하는 모습도 보였다. 이에 대해 정 교수는 “이는 과도한 논리의 비약이며 더 나아가 비논리적이고 비이성적인 악의에 기반한 감정적 비난이라고밖에 할 수 없다”고 비판했다.

언론 보도에서 인용된 정보원의 다수가 검찰 측이었다는 분석결과도 나왔다.

정 교수는 “신문의 기명정보원 중 검찰은 전체 기사의 46.9%를 차지하고 있었다”며 “이는 노 전 대통령측의 22.8%에 비하면 두 배가 넘는 수치”라고 말했다.

“정보원 대다수 검찰 활용, 검찰 입장 ‘받아쓰기’ 비판 피하기 어려워”

익명정보원 역시 검찰관계자가 전체의 37.5%를 차지한 반면 친노측근의 비율은 17.2%에 불과했다. 방송3사 역시 사정은 다르지 않았다. 전체 기사 중 검찰을 기명정보원으로 인용하는 비중은 49.9%였고, 노 전 대통령 측을 정보원으로 하는 경우는 25%를 넘지 못했다.

정 교수는 이러한 분석 결과에 대해 노 전 대통령 서거 이후 언론이 혐의 사실이 확정되지 않은 상황에서 검찰 입장만 그대로 전하고, 소위 ‘받아쓰기’ 했다는 세간의 의심을 확인하는 사례라고 지적했다.

정 교수는 “노 전 대통령 보도 과정에서 우리 언론은 공통적으로 비판과 비난 사이에서 ‘비난’의 지점에 위치해 있었다”며 “대상이 밉더라도, 노여움과 실망감이 크더라도 사건을 접근하는 자세는 냉정했어야 옳다. 배신감과 분노, 실망은 시민들의 몫이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그는 “최근 모 방송사에서 서거 관련 보도를 최대한 드라이하게 뽑으라고 해서 논란이 됐는데 이때야말로 최대한 드라이하게 갔어야 옳다”고 꼬집었다.

정 교수는 “노 전 대통령에 대해 의심받는 비리 행위에 대한 비판을 수행하는 것은 언론의 책임이자 의무지만 지금 반성해야 할 것은 정당하게 비판하지 못했던 것”이라고 따끔하게 질책했다.

검찰이 피의 사실을 공표하고, 언론이 이를 보도하는 것에 대한 문제제기도 나왔다.

김창룡 인제대 교수는 발제를 통해 “전직 대통령이란 지위가 갖는 공공성이 있고 국민의 관심도 크기 때문에 어느 정도 범위 내에서 피의 사실을 공개할 필요가 있다”면서도 “문제는 어느 정도로, 언제 공개할 것인지인데 이번 사건에서 검찰은 이례적으로 매일 브리핑했고, 때로는 비공식적으로 흘리면서 너무 자주, 친절하게 피의 사실을 유포했다”고 지적했다.

“검찰의 자의적인 피의사실 공표도 문제”

김 교수는 또 “피의사실 공표죄는 무죄추정의 원칙과 상충된다”며 “이번 사건에서 검찰은 피의 사실 공표도 자의적으로 했고, 언론도 무죄추정의 원칙을 전혀 지키지 않고 비난으로 몰아붙여 사실상 여론재판으로 사람을 벼랑 끝으로 몰고갔다”고 비판했다.

그는 이어 “자기 편의에 따라 피의 사실을 어느 정도 공개할지의 전권은 검찰이 갖고 있어 정보가 부족한 언론은 추측성 보도를 남발하고 정파적 보도가 가미돼 믿거나 말거나식 보도가 많아지게 되는 것”이라며 “검찰의 자의적 피의사실 유포에 대해 어떤 식으로 막을 수 있을지 제도적 보완장치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 김창룡 인제대 교수 ⓒPD저널

한상혁 변호사 역시 검찰의 피의 사실 공표에 대해 문제를 제기했다.

한 변호사는 “이 비극의 출발은 범죄 사실을 입증하고 공소를 유지하는 데 검찰이 크게 자신 없었던 데 있다”며 “노 전 대통령의 범죄 사실을 입증할 만한 객관적 증거가 충분히 확보됐다면 무리하게 피의 사실을 언론에 흘리고 여론을 만들어 나가려는 시도는 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번 사건에서 피의 사실 공표가 결국 수사 방법의 하나로 활용되지 않았나 하는 느낌을 갖게 된다”며 “검찰이 언론에 정보를 흘림으로써 노 전 대통령에 대한 인간적 압박을 가해 자백을 얻어내려는 의도 하에 수사가 진행됐기 때문에 문제가 있었다”고 비판했다.

한 변호사는 또 검찰의 피의 사실 공표 내용을 보도한 언론 보도 태도에 대해서도 “정도가 과했다”며 “명백히 사실로 밝혀지지 않은 의혹보도와 관련해 대법원은 당사자의 의견이 질과 양적 면에서 균등하게 다뤄져야 위법성을 면할 수 있다고 판결한 바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피의 사실을 발표의 한계나 가능성에 대해 구체화된 기준을 만들고, 이 기준이 지켜지는지 여부에 대해 감시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드는 게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반면 피의사실 공표죄 자체가 없어져야 한다는 주장도 나왔다.

현업 언론인 가운데 유일하게 이날 토론회에 참석한 심석태 SBS 기자(현 SBS노조위원장)는 “피의사실 공표를 특별히 죄로 다루고 있는 나라는 우리나라가 거의 유일하다”며 “특히 정치적 사건이 벌어질 때 피의사실 공표죄에 대해 논란이 생기는데 주로 힘 있는 사람들, 정보를 통제할 수 있는 위치에 있는 사람이 그러한 주장을 더 강하게 내놓는다”면서 “피의사실 공표죄는 없어지는 게 맞다”고 주장했다.

수사기관의 자의적 정보 활용 가능성 등을 배제하고 국민의 알 권리에 대한 과도한 제한 등을 생각해 피의사실 공표죄는 폐지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것이 심 기자의 설명이다. 대신 그는 피의사실 공표의 기준 등을 법제화하거나 그로 인한 인권 침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장치를 마련하는 것을 적극 검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노 전 대통령, 이건희 삼성회장 등에게 동일하게 적용될 수 있는 기준 마련 필요”

심 기자는 또 노 전 대통령 보도에 대해 비판이 나오고 있는 것과 관련 “전직 대통령은 공인 중 공인인 ‘초공인’”이라며 “비록 범죄까지 가지 않았다 하더라도 초공인의 정상적이지 않은 금전 거래가 흘러 나오는 상황에서 언론이 과연 그 사건을 보도하지 않을 수 있었을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이어 “양적으로 검찰의 인용 보도가 많았다고 해서 검찰 주장을 무비판적으로 ‘받아쓰기’했다는 지적에 대해서도 동의하기 어렵다”며 “수사는 검찰이 하는 것이기 때문에 당연히 검찰의 인용이 많아질 수밖에 없다”면서 “검찰의 정보를 제대로 확인‧검증하려는 노력이 있었는지에 대한 좀 더 세밀한 분석이 필요할 것 같다”고 지적했다. 

심 기자는 “이번 사건뿐 아니라 이건희 삼성회장 등 재벌이나 현직 대통령에 대한 보도를 할 때도 동일한 기준을 적용할 수 있는 합일점을 찾아낼 수 있도록 학계와 언론현업단체, 언론사 내부에서 지혜를 모았으면 한다”며 “반성이 필요하지 않다는 것이 아니라 반성이 이 사안에만 국한되지 않고 좀 더 일반화, 보편화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이창현 국민대 교수도 “노 전 대통령 보도와 동일한 잣대에서 연쇄살인범의 인권 보호나 이건희 삼성 회장 등 재벌 보도까지 함께 적용할 수 있는 기준을 만들 필요가 있다”며 “검찰의 일방적 언론 장악과 상호 작용을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지 고민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이어 “언론에서 검찰의 발표를 다루는 양질이 달라져야 한다”며 “방송 심의의 양적 공정성 잣대가 지금은 상당히 정치적 잣대로 활용되고 있으나 최소한 양적 공정성의 잣대가 검찰 보도에 준용되는 기본 원칙이 있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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