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법 모르는 기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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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법 모르는 기자들?
여당 미디어위 보고서 부정확 보도 논란
  • 김세옥 기자
  • 승인 2009.06.25 18:3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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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발전국민위원회(이하 미디어위) 보고서 관련 기사들이 이상하지 않나요?”

한나라당·자유선진당 측 위원들이 정부 여당의 언론관계법 개정안에 대한 입장을 정리하고 최종보고서를 확정한 지난 24일 오후 타사의 기자 2명과 한 지상파 방송의 PD가 기자에게 걸어온 전화 내용이다.

이날 여당과 선진당 측 위원들이 보고서를 통해 권고한 내용의 핵심은 신문·대기업의 방송 진출을 허용한다는 것으로, 정부 여당의 기존안과 거의 차이가 없다.

신문의 지상파 방송 경영을 2013년 이후로 유예했을 뿐, 보도·시사교양·드라마·연예오락·스포츠 등을 모두 편성할 수 있어 사실상 제2의 지상파 방송으로 불리는 종합편성채널(PP)이나 YTN·MBN과 같은 보도전문PP에 대한 신문·대기업의 지분 소유나 경영 모두를 즉각 가능토록 하고 있다. 이는 신·방 겸영 금지의 취지, 즉 여론 독과점 폐해 방지를 사실상 무력화하는 것이다.

더구나 방송법 개정안에 대한 4개 권고안 중 가시청 인구 일정규모 이하인 지상파 방송, 다시 말해 지역 지상파 방송에 대해선 대기업 진입을 허용하는 안이 채택될 경우 대기업의 지상파 방송, 종편·보도PP 겸영의 길이 즉각 열리게 된다. 사실상 지상파 방송과 종합편성·보도전문 채널에 대한 신문·대기업의 주식 소유와 겸영을 완전히 허용하고 있는 것이다.

▲ 세계일보 6월 25일 5면

그러나 이날 오후 관련 보도의 상당수는 ‘미디어위, 신·방 겸영 유예’ 혹은 ‘미디어위, 신·방 겸영 2013년 허용’ 등의 제목으로 쏟아져 나왔다.

3명의 기자·PD들이 전화를 걸어온 것도 이 때문이다. 이날 배포된 보고서 요약본은 물론 여당 측 위원들에게 거듭 확인을 해봐도 신문·대기업의 방송 진출 허용이 보고서의 핵심인데, 상당수 보도가 ‘유예’라고 나오니 혹시 자신이 미처 확인하지 못한 내용이 있는 게 아닌지 기사 송고 전 최종 확인을 하려 한 것이다.

제2의 지상파 ‘종편’ 허용하며 신·방 겸영 금지?

그들이 파악한 내용과 다르지 않다는 대답을 하고 전화를 끊은 후 TV를 켰다. 아니나 다를까. 전화를 걸었던 기자·PD들의 혼란을 이해할 수 있었다. MBC  <뉴스데스크>를 제외하곤 신·방 겸영이 2012년까지 금지된다는 내용의 보도들이 전파를 타고 있었던 것이다.

“110일 간의 활동을 마감하는 미디어위 전체회의는 한나라당과 선진당 측 위원만 참여한 가운데 최종 보고서를 채택했습니다. 최대 쟁점인 신·방 겸영 허용은 지상파 방송의 디지털 전환 시점인 2012년 이후로 미루도록 했습니다.” SBS <8뉴스>

“미디어위는 방송이 디지털로 전환되는 2012년까지 신문의 방송 겸영 허용을 유보하고, 방송의 소유 지분 규제를 완화하는 4가지 방안을 핵심으로 하는 최종 보고서를 채택했습니다. 그러나 야당 추천위원 9명의 참석 없이 채택한 반쪽짜리 보고서입니다.” KBS1TV <뉴스9>

25일 조간신문들의 보도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동아일보>, <서울신문>, <세계일보>, <한국일보> 등은 일제히 ‘신·방 겸영 2013년까지 유보’라는 제목 아래 여당·선진당 측이 지상파 방송의 디지털 전환 시점 이전인 2012년 말까지 신·방 겸영을 유보키로 했다고 보도했다.

방송진출 의지를 드러내고 있는 <조선일보>, <중앙일보>는 한술 더 떠 “현재 금지된 신문·대기업의 지상파 TV 소유는 법 개정 직후부터 허용하되, 신문·대기업이 지분을 인수한 방송사의 경영에 참여하는 것은 2013년부터나 가능토록 한다는 안을 제시했다”고 보도했다. 방송법 개정안 권고안 중 대기업의 지역 지상파 방송 겸영을 가능토록 한 부분을 무시해 버린 보도인 것이다.

일련의 보도를 접한 한 신문사 기자는 “‘종편·보도PP에 대한 신문의 겸영을 허용하고 있는 상황에서 지상파 방송에 대한 경영만이 2013년 이후로 유예됐다 하여 신·방 겸영 허용이 유예됐다는 대다수 신문·방송의 여당 측 보고서 관련 보도는 부정확하다는 비판을 받을 수밖에 없다”며 “의도했든 아니든 한나라당과 방송 진출을 준비하는 신문들을 즐겁게 하는 결과”라고 씁쓸함을 표시했다.

또 다른 기자는 “여당·선진당 측 보고서 관련 기사 대부분이 각 사의 미디어 담당 기자들이 아닌 국회출입 기자들로부터 생산됐고, 보고서에 대한 신문·대기업의 방송 겸영에 대한 여당 측 위원들의 설명이 두루뭉수리 했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사실을 보도하지만 진실의 전파를 막는 언론들

실제로 25일 오전 여당·선진당 측 위원들이 고흥길 문방위원장에게 최종 보고서를 제출한 후 진행한 기자간담회에서 한 기자가 “상당수 기사가 ‘2012년까지 신·방 겸영 유예’로 나오는데, 신문의 지상파 방송 경영만을 유예했을 뿐 종편·보도PP에 대한 부분은 여당의 안과 전혀 다르지 않지 않나”라고 지적하자, 여당 측 간사인 황근 위원(선문대 교수)은 “종편PP 자체가 법률 개념으로 존재하는 게 바람직한가라는 의문도 많았다”며 이렇게 말했다.

“지상파 방송과 종편PP는 좀 나눠서 생각을 했다. 법이 개정되면 정부가 종편PP를 추진할 것으로 예상되는데 성공 가능성을 확실히 예측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막연한 일반적 예측으론 얼마 전 허가를 받은 OBS 정도의 자본금은 필요한데, 지분제한을 하면 쉽지 않아진다. 지분제한을 통해 자본 경색에 빠지게 되면 종편PP를 허용하는 것 자체로 정책적 난항에 빠질 수 있다.”

또 “미디어위 논의 과정에서 제2의 지상파로 불리는 종편PP 허용에 대한 우려가 많이 나왔는데 왜 이런 부분은 보고서에 반영되지 않은 것이냐”는 질문에도 여당 측은 “종편PP에 대한 정책적 효과를 정부가 많이 기대하는 것 같다. 규제 완화라는 정책적 취지엔 공감하지만 중장기적으로 매체 증가에 따라 종편-보도PP의 머스트캐리(의무재전송) 규정의 점진적 폐지가 필요하다고 권고했다”고 답했다.

신문과 대기업의 종편·보도PP 진출 허용을 통한 언론장악 우려를 해소하기 위한 방안으로  머스트캐리 규정의 점진적 폐지를 언급한 것으로 해석되지만, 머스트캐리라는 특혜를 배제할 때 대기업 등이 난색을 표시할 수밖에 없다는 게 대체적인 지적이다.

이에 대해 김서중 성공회대 교수(신문방송학)는 “종편PP의 성공 가능성 여부가 불분명한 상황이라면, 민주주의의 위험을 초래할 수도 있다고 많은 언론학자들과 현업 언론인, 국민들이 반대하는 정책을 왜 추진하려는지 설명해야 한다. 또 여론독과점, 민주주의의 훼손을 우려하면서도 시장을 키우기 위해 종편PP 등을 허용해야 한다는 논리도 있지 않았나”라고 지적하면서 “이렇게 질문하면 저렇게 답하고, 저렇게 질문하면 이렇게 답하는 문제들을 짚어내지 못하거나, 혹은 짚어내려 하지 않는 언론들의 반성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또 “상당수 언론들이 여당·선진당 측의 보고서를 놓고 미디어위 공식 보고서가 나왔다는 식의 보도를 하는데, 민주당 측 위원들이 공식적으로 사퇴를 하지도 않았고 보고서도 낸다고 하는 상황에서 해당 보고서를 미디어위 차원의 공식 보고서라고 칭하는 건 무식한 게 아니면 의도적인 것”이라며 “사실을 보도하면서도 진실의 전파를 막는 언론들의 모습을 보는 것 같아 씁쓸하다”고 덧붙였다.

한편, 지상파 방송의 한 관계자는 “신문·대기업의 지상파 진출이 2013년 이후에나 가능해졌다고 보도한 특정 신문은 차치하더라도, 신·방 겸영이 2013년 이후로 미뤄졌다는 보도들은 결국 언론법 개정의 직접 이해당사자인 상당수 언론인들조차 내용을 잘 모르고 있음을 방증하는 게 아닌가라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며 “스스로의 무지로 자신은 물론 언론의 공공성에 칼을 꽂는 우를 범하지 않길 바란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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