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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석훈의 세상읽기]

▲ 우석훈 연세대 문화인류학과 강사 (88만원 세대 저자)
얼마 전부터 한국예술종합학교에 대한 질문이 예술계의 맨 앞에 서 있는 질문이 되었다. 사건의 발단은 다소 복잡한 듯하지만, 내가 보기에 이 사건의 본질은 딱 두 가지이다. 하나는 예술도 정치라고 보는 눈 하나, 그리고 어차피 한예종 교수들이나 학생들이나 본질적으로는 중립을 지키려고 하는 사람들이라서, 무슨 일이 벌어지더라도 움직이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 것이 또 하나이다. 두 가지 시각 다 일견 맞기는 하지만, 한 가지 잘못 생각한 것이 있는 것 같다. 예술가들은 겉보기에는 조용한 듯하고, 세상사에 대해서 한 발 떨어져 있는 듯하기는 하지만, 사실 그들은 시대의 아방가르드로서, 세상이 돌아가는 일보다 먼저 움직이는 사람들이라는 점이다.

예술은 세상을 표상한다. 그러나 이 말이 세상과 상관없이 돌아간다는 말은 아니다. 물론 예술 활동에는 돈이 필요하기는 하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일반적인 ‘경제인’과 같이 돈의 논리로 움직이지는 않는다. 시대가 어려우면 가장 먼저 아파하고, 시대가 힘들면 가장 먼저 힘들어하는 것, 그리고 일반인들이 감성보다 한 발 먼저 움직이는 것, 그것이 바로 예술인이다. 한예종 사태에서 이 사태를 기획하고자 했던 뉴라이트 계열의 ‘땅따먹기’ 예술인들이 간과한 것이 바로 이 예술의 아방가르드 속성이 아닌가하는 생각이 든다.

물론 노동자들도 자신의 임금을 위해서 최선을 다하고, 보통 사람들도 해직된다고 하면, 자신의 자리를 지키기 위해서 싸우고, 이 싸움에 최선을 다한다. 그러나 예술인들이 지키고자 하는 예술혼은 이런 임금이나 자리와는 조금은 성격을 달리하는 것 같다. 일반적으로 우리가 예술가라고 할 수 있는 사람은 기계적으로 자신의 임금과 고용을 위해서 최선을 다하는 것이 아니라, 창작을 비롯한 예술 활동을 할 수 있는 여건 그리고 검열되지 않은 상태로 자신의 예술을 온전히 표현할 수 있는 데에 최선을 다하는 것 같다. 그리고 그런 이유로 우리는 그들을 예술가라고 부르고, 시대의 아방가르드라고 얘기하는 것 같다.

한예종 사태는 일단 이론학과 폐지는 잠깐 선 것 같고, 다음 총장에게 전권을 주는 방향으로, 일단 급한 흐름은 잠시 서고 소강상태인 것 같아 보인다. 물론 사태가 정지한 것은 아니지만, 다른 공기업 인수하는 것처럼 예술 분야도 그냥 접수하면 된다고 생각했던 사람들이 일단 주춤한 것이 현 상황으로 보인다.

▲ 6월 5일 한겨레 15면
이 시점에서 개인적인 소회를 잠깐 말해볼까 한다. 나는 한국의 감사원이라는 기관에 대해서 좋은 감정을 가지고 있었고, 지나치게 정치적인 검찰이나 상부의 눈치 보기가 일쑤인 판사들에 비해서 우직한 감사관들에 대한 믿음을 가지고 있었다. 평생을 부패와 싸워온 나이 먹었지만 노련한 감사관, 그리고 한국의 맨 앞에서 정도를 걷겠다고 생각한 젊고 유능한 감사관들을 알고 있었다. 그런 그들이 이번 한예종 사태에서 일부 단체가 적어준 얘기들을 감사 결과로 그냥 제출했던 것은 놀라운 사태였고, 실망스러운 일이었다. 나에게는 개인적인 이유로 가지고 있었던, 적어도 믿을만한 감사관들이 있는 한, 저들이 정의를 지킬 것이라고 생각했던 지난 10여년 간의 감사원에 대한 믿음을 거두어들이는 계기가 되었다. 감사원을 믿을 수 있는가? 한예종 사태 이후로 나는 차마 그렇게 말하지 못할 것 같다.

그 대신에 나는 젊은 예술가들 혹은 젊은 창작자들을 믿을 수 있다는 다른 느낌을 하나 가지게 되었다. 자신을 ‘엘리트’라고 부르고, 툭하면 ‘천재’라고 부르며, 그러나 결국은 ‘문화예술계의 너드’라고 생각했던 한예종의 젊은 예술가들이 이 사태에서 보여준 “그것은 예술이 아니다”라는 말에, 솔직히 감동 받았던 것이 사실이다. 아마 우리나라, 저들 덕에 망하지 않는 날이 올지도 모른다.

자, 이 질문을 우리들의 PD들에게도 한 번 해보자. 종합 예술이라고 할 정도로 한국의 PD들은 복합적인 그림들을 TV라는 매체를 통해서 만들어낸다. 이제 당신들에게 묻고 싶다. 당신들은 평소 당신들의 활동을 예술이라고 생각하고 살아가는가? 그리고 한예종의 젊은 예술가들이 보여준 만큼의 아방가르드의 속성이 자신이 숨을 쉬고 살아가는 이유라고 생각하는가? 만약 그렇다면, 지금 이명박 정부가 만들어낸 이 케이어스가 당신들의 예술혼에 참을 수 없는 창작의 충동을 만들어낼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밥만 먹고 살아가는 돼지들처럼 “목구멍이 포도청이다”라고 말할 것 같다. 스스로 질문해보라. 돼지인가, 예술가인가? 완력만을 숭상하는 돼지들의 공화국에서 예술가들이 할 일이 있다. 나는 PD들도 예술가라고 믿고 있지만, 당신들은 자신들이 아직 돼지인지 아닌지, 이 사회에 보여주지 못한 것 같다. 돼지가 아니라면, 증명해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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