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의’ 앞세우며 ‘표결’ 명분쌓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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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흥길 “내용 합의 OK, 시한 합의 NO”…신·방 겸영 허용 원칙 포기도 없어

한나라당이 언론관계법 개정안을 “6월 임시국회 동안 합의처리 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6월 임시국회 기간 동안 합의에 이르지 못할 경우 국회법 절차에 따라 표결처리 하겠다는 뜻도 함께 밝혀, 사실상 표결처리를 위한 수순 밟기가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고흥길 국회 문화체육관광방송통신위원회(이하 문방위) 위원장은 1일 오전 여당이 단독 소집한 전체회의를 막기 위해 회의장 출입구를 봉쇄, 농성 중인 문방위 소속 민주당 의원들과 만나 “이렇게 막는 것은 강행처리를 하라는 것과 마찬가지”라며 “6월 국회 동안 합의처리를 위한 논의를 진행하자”고 제안했다.

고 위원장의 이 같은 태도는 6월 국회 개회 직후부터 직권상정을 통한 언론관계법 개정안 처리 가능성을 언급했던 것과 비교할 때 일견 한 발 물러선 자세라고 해석될 수 있다. 하지만 기한을 6월 국회 회기 동안으로 한정하고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사실상 표결처리 강행에 대한 부담을 덜기 위한 사전 작업으로도 해석할 수 있다.

▲ 국회 문화체육관광방송통신위원회 고흥길 위원장이 6월 29일 소집한 전체회의 해산을 선언하며 위원장실을 빠져나오다가 농성 중인 전병헌 민주당 간사와 얘기를 하고 있다.

실제로 고 위원장은 “자유선진당과 창조한국당이 제출한 법안은 물론 1억 원을 들여 미디어발전국민위원회가 마련한 보고서에 대해서도 토론을 해야 한다”고 강조하면서도 “내용에 대한 합의는 가능하지만 시한에 대한 합의는 불가능하다”고 잘라 말했다.

또 “시한의 합의가 불가능하다면 6월 임시국회 기간 동안 내용에 대한 합의를 도출하지 못할 경우 어떻게 되는 것이냐”는 질문에 고 위원장은 “합의에 이르지 못할 경우 국회법 절차에 따라 표결을 할 수밖에 없다”고 답했다.

이어 “민주당이 9월 이후를 말하는 것 같은데 이번 회기 내 처리해야 한다는 방침엔 변화가 없다”고 거듭 강조했다.

김형오 국회의장도 이날 오전 국회 의장실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미디어법은 3월 2일 합의정신을 존중해 처리하되, 여야가 해당 상임위에서 충분한 논의를 거치도록 하겠다”며 6월 표결처리 입장에 변화가 없음을 밝혔다.

문방위 한나라당 간사인 나경원 의원은 “민주당이 회의장에 들어오면 우리도 합의처리를 할 수 있다. 우리 안(언론관계법 개정안 원안)을 고칠 의사도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창조한국당이 이날 발표한 방송법 개정안은 유력일간지와 상위 20대 재벌기업의 방송소유를 금지하고 있고, 민주당·창조한국당 측 미디어위 보고서 역시 신문·대기업의 방송 진출 유예를 주장하고 있다.

일련의 내용들도 수용할 수 있는 ‘내용 합의’인지를 묻는 질문에 나 의원은 “자유선진당과 창조한국당 측이 의견을 내놓고 있는 만큼 정리를 해봐야 알 수 있다”며 즉답을 피했다.

이에 앞서 고흥길 문방위원장은 지난달 29일 기자간담회에서 사견임을 전제로 “미디어산업 발전과 여론독과점 해소를 위해선 신문·대기업의 방송 겸영을 허용한다는 원칙 자체가 흔들리긴 어렵다고 본다”고 발언한 바 있다.

“‘합의’라는 단어가 나온 것은 환영하지만…”

언론관계법 개정 논란의 핵심인 신문·대기업의 방송 겸영 허용을 원칙이라고 밝힌 바 있으면서도 시한은 안 되지만 내용에 대한 합의는 가능하다는 한나라당의 태도에 민주당도 ‘의도’를 의심하는 눈치다.

문방위 민주당 간사인 전병헌 의원은 “고 위원장이 ‘합의’ 처리 의지를 밝힌 것은 기존의 입장과 비교할 때 반보 정도의 진전을 이룬 것이라고 평가한다”면서도 “시한을 정하고 합의처리를 하자는 것은 이중적·모순적 태도라는 의심을 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어 “이 같은 제안의 진정성을 확보하기 위해선 김형오 국회의장이 언론관계법 개정안을 직권상정하지 않겠다고 입장을 먼저 밝혀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편 민주당 문방위원들은 이날 회의장 봉쇄 직후 기자회견을 열고 지난달 30일 최시중 방송통신위원장이 하반기 전략회의 모두발언을 통해 “‘언론악법 반대’라는 구호가 적힌 팻말을 들고 (문방위) 회의장 앞에 앉아있는 민주당 의원들을 보며 참기 힘든 답답함을 느꼈다”고 비판하면서 언론관계법의 회기 내 처리를 요구한 데 대해 “날치기 통과를 못해 답답하다는 얘기냐”고 반박했다.

이들은 “방통위법에 따라 엄정한 정치적 중립을 준수해야 할 위원장이 야당을 향해 여당 원내대표 같은 정치적 언사를 남발하는 것은 스스로 방통위원장 자격이 없음을 고백한 것과 같다”며 “막말에 대해 국민과 야당에 즉각 사죄하고 사퇴하라”고 요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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