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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 따져보기] 조지영 TV평론가

누구나 ‘문제는 이야기’라고 말한다. 항상 ‘좋은 이야기가 없다’라고 발을 동동 구른다. 그래서 좋은 원작에 목마른 법이다. 좋은 원작을 누군가 이미 가져다 썼다고 해도 상관없다. 오히려 성공이 검증된다면, 원작 재활용의 의지는 더욱 강해질 수도 있다. 리메이크의 유혹은 그만큼 힘이 세다. 성공의 달콤한 열매가 늘, 눈앞에 어른거리기 때문이다. ‘형보다 나은 아우 없다’는 옛말도 이 유혹 앞에서는 소용이 없다. 그래서 〈2009 외인구단〉도 만들어졌고, 뒤이어 〈친구, 우리들의 전설〉도 방영되고 있다.

그런데 〈2009 외인구단〉의 성적표는 실로 참담하다. 마치, 투타 양면에서 극심하게 부진하다가 7회 콜드패(조기 종영) 당한 수준이다. 드라마의 만듦새를 따지기에 앞서, 면밀하게 따져봐야 할 것은, 〈2009 외인구단〉이 제작 초기에 가졌던 ‘성공에의 확신’의 근거가 무엇인지 하는 부분일 것이다. 짐작컨대, 한국 만화 시장의 판도를 바꿔 놓았던 이현세의 〈공포의 외인구단〉과 1986년 흥행작 〈이장호의 외인구단〉의 성공 역사, 그리고 해마다 만원 관중을 동원하는 프로야구의 열기, 올림픽 전승 우승 등으로 한껏 올라간 야구의 인기가 리메이크의 결정에 큰 영향을 끼친 것은 아닐까 싶기도 하다.

▲ <2009 외인구단>

물론, 그렇게 간단한 이유만으로 리메이크를 결정했을 리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어떤 작품이 단순한 흥행만이 아니라 ‘장안에 안 본 사람이 없는’ 정도의 신드롬으로 이어졌다면 반드시 살펴봐야 할 것은 그 작품과 닿아있는 사회적 맥락이다. 특정 작품이 건드린 사회의 환부나 금기, 혹은 콤플렉스가 당대에 어떻게 작동하고 있었던 가를 살펴야 한다.

1983년, 이현세의 만화 원작은, 야구, 그것도 ‘프로 야구’ 정규 리그가 출범한지 얼마 지나지 않은 시점에서 시작되었다. 거기에 이현세 특유의 마초정서, 즉 ‘강한 남자’에 대한 판타지가 어우러져, 80년대 초반의 어두운 사회 분위기와 기묘한 스파크를 일으켰다. 의지만으로 불가능을 헤쳐 나갔던, ‘초인’과 다름없는 ‘까치’에 사람들은 열광했다.

1986년 〈이장호의 외인구단〉은 당시만 해도 흔하지 않게, 만화 원작을 영화로 만드는 모험을 택했다. (이후 〈신의 아들〉이나 〈지옥의 링〉등의 만화원작 영화가 쏟아져 나오기도 했다) 원작보다 못하다는 기대 이하의 평가도 있었지만, 흥행은 순항했다. 원작에 열광한 사람들의 호기심이 그만큼 강했기 때문이다. 리메이크의 시기가 매우 적절했다는 뜻이다.

〈2009 외인구단〉을 방영한 현재의 상황은 어떤가? 국내 프로야구뿐만 아니라 추신수와 박찬호, 이승엽의 활약상을 안방에서도 지켜볼 수 있는 현재, 타구의 궤적을 그대로 따라가거나, 구질까지 판단해주는 카메라와 선수들의 허슬 플레이에 익숙해져 있는 지금, ‘정통 야구드라마’를 표방하는 것은 다분히 무모한 선택이었다. 무엇보다 1983년의 원작이 2009년에도 여전히 호소력이 있을 것인지를 근원적으로 고민했어야 하지 않았을까 싶다.

원작의 팬들도, 원작을 모르는 사람들에게도 필요한 것은 ‘재해석’이다. 이제 막 시작한 〈친구, 우리들의 전설〉이 순항하려면, 영화 전후의 이야기, 영화의 러닝타임에 희생된 이야기에 집중해야 한다(다행히 3회부터 그런 방향인 듯하지만) 사실, ‘지금 왜, 다시 ‘친구’인가?’ 하는 근본적 질문은 일단 넘어가더라도, 영화와 똑같은 콘티를 놓고 찍은 듯한 1회, ‘니가 가라 하와이’ 같은 대사를 똑같이 읊조리는 장면은 당황스러웠다.

▲ 조지영 TV평론가

김민준이나 현빈 같은 좋은 배우들을 놓고 〈서프라이즈〉처럼 ‘재연’ 연기를 시키는 것은 의아한 일이다. 같은 앵글에서, 같은 대사를 하는 배우들을 보면서 유오성이나 장동건을 떠올리는 것은 자연스럽다. 그래 놓고 ‘원작과 비교하지 말아 달라’는 주문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 같은 창작자가 만든다고 해서, 재해석의 의무가 면제되는 것도 아니다. 영화를 본 사람에게나 보지 않은 사람에게나, ‘새롭게 해석된 원작’을 볼 권리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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