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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핫이슈] 증거 없고 사실과 달라도 일단 우긴다

일단 우긴다. 증거가 없어도 우기고, ‘사실왜곡’ 때문에 사과까지 했어도 자기주장을 굽히지 않는다.

국가정보원. 대규모 사이버 공격의 배후가 북한이라는 직접적인 증거는 없지만 북한을 배후로 지목했다. “북한의 개입 여부에 대해 아무런 정보가 없고 확인해 줄 수 있는 것도 없다”는 미 정부당국자들의 발언은 고려 대상이 아니다. 증거가 있는 것도 아니고, 미 정부기관보다 정보력이 앞서는 것도 아니다. 그런데 계속 우긴다. 이쯤 되면 우기는 현상보다 왜 우기는가를 주목해야 한다. ‘사이버테러방지법’이 보인다.

▲ 동아일보 7월11일자 3면.
국정원은 우기고, 한나라당은 ‘흘리고’ 조중동은 확산시키고

조중동. 직접적인 증거가 없는 국정원의 주장을 ‘대서특필’한다. 조선일보의 지난 11일자 1면 기사 <북한 해커조직 IP(인터넷 접속위치) 확인됐다>는 대표적이다.

조선은 “국가정보원은 한·미 주요기관에 대한 사이버 테러 공격 경로를 추적하는 과정에서 북한인이 확실한 해커 윤모의 IP를 확인, 이를 근거로 이번 테러가 북한 측에 의해 저질러졌다는 심증을 굳힌 것으로 10일 알려졌다”고 보도했다.

▲ 조선일보 7월11일자 4면.
기사는 정확히 봐야 한다. 조선의 이 기사는 ‘사실’을 확인한 게 아니라 ‘심증’을 굳혔다는 국정원의 판단을 근거로 했다. 언제부터 국정원이 정보가 아니라 심증을 근거로 이런 중대한 사안을 판단해 왔던 걸까. 국가정보원이 아니라 국가심증원으로 기관명을 바꿔야 할 것 같다.

국정원의 ‘뻘 짓’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국정원은 “북한이 지난달 말 한국기계연구원 광주전산망을 사전 공격했다는 보고도 있었다”면서 북한 배후론을 증명하는 하나의 근거로 제시했다. 하지만 한국기계연구원으로부터 곧바로 반박을 당했다. 11일 MBC 〈뉴스데스크〉의 보도 내용이다.

“북한의 첫 디도스 공격을 받았다고 거론된 한국기계연구원 측이 ‘광주엔 분원이 없는데 광주전산망이 공격당했다는 게 무슨 말인지 모르겠고, 분원이건 본원이건 디도스 공격은 없었다’며 국정원 발표에 의문을 제기했다.”

국정원도 국정원이지만 이런 허점이 뻔히 보이는 데도, 북한 배후론을 단정적으로 그것도 대대적으로 보도한 조중동의 ‘4차원 세계’가 잘 이해가 가지 않는다. 조중동 ‘그들만의 세상’은 정말이지 이해하기 어렵다.

▲ 한겨레 7월11일자 4면.
최시중 “언론법 통계 수치 잘못됐다. 그래도 미디어법은 간다”

최시중 방송통신위원장의 우기기도 국정원과 조중동을 능가한다. 국책연구원인 정보통신정책연구원(KISDI)의 정책보고서 내용 가운데 일자리 창출 통계부분이 ‘잘못’됐다는 점을 시인하고도 미디어법 관철을 강행하겠다고 밝혔기 때문이다.

국책기관인 KISDI의 보고서는 그동안 정부·여당의 ‘언론관계법 개정=일자리 창출’ 주장의 근거로 사용돼 왔다. MB정권 또한 이 자료를 근거로 ‘미디어산업 일자리 2만개 창출’이라는 논리를 각종 언론매체에 대대적으로 광고해 오지 않았던가. 그런데 바로 그 논리의 핵심 내용이 ‘잘못된 것’으로 밝혀졌다. 이쯤 되면 무언가 방향전환을 모색해야 할 시점. 그런데 최시중 방통위원장은 ‘딴 소리’를 한다.

“미디어 산업 개편은 KISDI 보고서에 근거한 게 아니라 일반적 산업 논리에서 유추한 것이다. 새로움을 추구하다 보면 경쟁 속에서 일자리, 먹을거리가 나오게 마련이다.” 

▲ 한국일보 7월9일자 2면.
기사 못지 않게 발언도 정확히 볼 필요가 있다. 객관적 통계자료를 바탕으로 한 것이 아니라 일반적 산업 논리에서 그냥 유추한 것이란다. 그리고 새로움을 추구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일자리와 먹을거리는 나오기 마련이란다. 한 사회의 언론환경과 구조 자체를 뒤흔들 수 있는 엄청난 사안을, 고작 이런 정도의 근거를 가지고 추진을 한다고 한다. 역시 기관명을 좀 바꿔야 할 것 같다. 방송통신위원회가 아니라 근거없는희망위원회로.

KISDI ‘통계조작’ 언급도 없는 조중동과 KBS·SBS

허긴, 최시중 위원장 탓할 것도 없다. KISDI 정책보고서 통계조작 논란이 제기된 이후 조중동과 KBS SBS 등은 이 사안 자체를 거의 다루지 않았기 때문이다. 국책기관 연구용역 보고서의 핵심 내용이 ‘잘못된 것’으로 밝혀지고 사과까지 해도 이들 언론은 모르쇠로 일관한다. SBS의 경우 계속 침묵하다 막판에 여야의 공방 속에 이 부분을 슬쩍 끼워 넣는 지혜(?)를 발휘했다.

▲ 조선일보 7월10일자 6면.
하지만 역시 조중동이다. 노골적으로 그리고 대놓고 보도를 하지 않는다. 특히 조중동은 지난 9일 관훈클럽 초청 토론회에서 최시중 위원장의 발언 내용 가운데 KISDI ‘통계조작’ 부분은 쏙 뺀 채 ‘MBC 공격’ 부분만 부각했다. 이러니 국책기관이 잘못을 하고도 긴장하지 않는 것이고, 주무 부처 책임자의 ‘마이웨이’ 발언이 나오는 것이다.

보다 못한(?) 김학순 경향신문 선임기자가 지난 11일자 칼럼에서 이렇게 질타하고 나섰다.

“국책기관 정보통신정책연구원의 ‘방송규제완화의 경제적 효과분석’ 정책보고서가 일자리 창출 통계 조작이라는 사실을 부처 책임자가 시인하고도 미디어법 관철을 강행하겠다고 밝혀 놀랍기 그지없다. 정책용역보고서들을 검증할 연구용역이라도 발주하면 못된 버릇이 고쳐질까.”

국책기관의 못된 버릇 이전에 일부 언론의 못된 버릇부터 고쳐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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