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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재투표에 대리투표 논란까지, 헌법재판소에 가면 승산이 있지 않을까?” 한나라당의 ‘날치기’로 언론관계법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직후 민주당의 한 관계자가 물었다. 그의 희망을 꺾는 듯해 미안하긴 했지만, 고개를 끄덕여줄 수 없었다. 언론법 개정안 처리의 모든 과정을 지켜본 그 순간만큼은 지금이 ‘법치’의 시대인지 ‘인치’의 시대인지 분명히 판단하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한 번 돌아보자. 대선후보 시절 언론법 정비를 공약했던 이명박 대통령은 취임 직후인 지난해 4월 7일 ‘신문의 날’ 축사에서 “올해 안에 신문법·언론중재법을 재정비하도록 돕겠다”고 공언했고 이후 여당은 차근차근 논란의 수순을 밟아가며 같은 해 12월 전격적으로 법안을 국회에 제출됐다.

▲ 지난 22일 오후 국회 본회의장 앞 중앙홀을 점거 중인 민주당 당직자들과 한나라당 당직자들이 몸싸움을 벌이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이후 8개월 동안의 처리 과정은 법적·정치적 논란의 연속이었다. 지난 2월 고흥길 문화체육관광방송통신위(문방위) 위원장은 법안을 직권상정하면서 ‘미디어법’이란 정확치 않은 명칭을 사용해 직권상정 요건을 갖추지 못했다는 논란을 불렀고, 언론법 관련 논의를 위해 구성한 문방위 산하 미디어발전국민위원회는 국회법이 정한 공개 원칙을 놓고도 시비를 붙었다.

정점은 지난 22일 본회의 방송법 재투표 논란이다. 국회의장의 사회권을 넘겨받은 부의장이 표결 종료를 선포해놓고 의결정족수에 미치지 못함을 발견하고 재투표에 나선 것이다. 여야는 현재 ‘일사부재의 원칙’ 위반 여부 등을 따지며 헌재로까지 논란을 이동시켰다.

참여정부 시절 한 보수 법조인의 말을 빌리자면 언론의 자유는 헌법의 심장이다. 국가권력이 어떻게 기능하고 있는지 언론은 취재를 해서 국민에게 알리고, 이를 통해 국정을 비판·감시해야 한다.

하지만 현 정권의 최고 책임자는 “일부 언론이 안 된다는 전제 아래 (대운하) 보도를 하고 있다”(당선인 신년회견), “(MBC <PD수첩> 광우병 논란은) 정보전염병”(2008년 7월 11일 시정연설) 등 비판언론에 대한 극도의 거부 반응을 보여 왔다. 거부 반응은 비판언론에 대한 납득할 수 없는 고소·고발로 이어졌다.

그리고 결국 국민 60~70%의 꾸준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여론독과점’ 논란을 부르고 있는, 그에 우호적인 신문의 방송 진출 길을 터줬다. 법을 만드는 국회가 법안 처리 문제를 놓고 법적·정치적 다툼을 벌이는 작금의 상황은 여당 모 의원의 말마따나 “청와대의 강력한 의지”라고밖에 볼 수 없는 것이다.

사람이 멋대로 다스리는 시대를 끝내고 그 자리에 법을 넣은 게 법치라고 했다. 그러나 헌법이 정한 언론의 자유와 표현의 자유가 권력자의 언론법 개정 의지만으로 그를 둘러싼 수많은 법적 논란 속 흔들리고 있다는 게 상당수 언론 종사자들과, 언론 학자들과, 국민들의 생각이다.

지금 우리는 법치의 시대를 살고 있는가. 인치의 시대를 살고 있는가. 스스로의 질문에 대한 스스로의 답변이 오답이길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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