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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윤성도 KBS PD

바야흐로 미디어법 직권상정과 ‘날치기’ 논란을 두고 정치권은 물론 온 나라가 일촉즉발 사생결단의 위기에 놓여있다. 서민경제, 남북문제, 비정규직 문제 등 산적한 현안은 이제 관심에서 한참 멀어져 버렸다.

미디어법이 도대체 무엇이건데 온 나라가 절단이 날 지경으로 이 난리법석을 떠는 걸까? 혹시 미디어법에 국가의 정치, 경제, 문화가 모두 바뀔 만큼 민초들은 모르는 중요한 뭔가가 있는 걸까?

사실은 전혀 그렇지 않다. 김형오 국회의장이 홈페이지에 썼듯이 미디어법의 본질은 ‘공영방송 주도의 방송 시장에 조선, 중앙, 동아 같은 메이저 신문이 진출을 하느냐 마느냐’의 문제다. 다른 건 없다. 여론의 다양성을 위해서라느니, 고용이 창출된다느니 하는 논리는 이미 다 깨져버렸다.

▲ 한나라당의 언론관계법 저지를 위해 지난 21일 오전 6시부로 3차 총파업에 돌입했던 전국언론노동조합 조합원들 ⓒPD저널
미국에서도 타임워너나 월트디즈니, 뉴스코포레이션 같은 거대 미디어 재벌들이 크고 작은 미디어를 닥치는 대로 인수하며 몸집을 불려나가면 나갈수록 방송에서는 국제뉴스의 비중이 낮아지고 시사토론이나 탐사보도 프로그램이 줄어드는 현상이 발생했다. 이유는 간단하다. 이런 프로그램들은 돈은 많이 들고 시청률은 그다지 높지 않은 ‘고비용 저효율’ 프로그램이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일자리가 늘어날 리가 없다. 실제로 1996년 미디어재벌에 날개를 달아준 ‘텔레커뮤니케이션 법’ 이 통과된 이후 미디어 관련 종사자의 수는 오히려 줄어들었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그런데도 조선, 중앙, 동아 세 신문이 미디어법에 사활을 거는 것은 신문 산업의 불투명한 미래 때문이다. 경향이나 한겨레는 말할 것도 없고 메이저 신문들 역시 정체된 신문시장에서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개인적으로 아는 이 메이저 신문 기자들도 사석에서 만나면 그런 이야기를 많이 한다. ‘언젠가 너하고 나하고 같은 회사에서 일할지도 모른다’고 농반 진반의 희망을 펴는 이도 있다. 경쟁은 더욱 심해지고 광고시장은 한계가 있고, 권력을 들었다 놨다 하는 파워는 여전하지만 전체 대중에 미치는 영향력은 예전 같지 않고.. 내가 이들 신문사의 사주라도 사실 고민을 안할 수 없을 것 같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20년도 채 안된 공영방송 시스템을 깨고 그 일부를 신문사들에게 준다? 정말로 위험한 생각이다. 돈도 그렇고 노하우나 시청자들의 취향도 그렇고, 방송이란 그렇게 쉬운 게 아니다. 그렇게 만만한 거였으면 뉴욕타임스나 파이낸셜타임즈가 벌써 방송사들을 한 두개씩 소유하고 있었어야 한다.

또 하나의 이유는 소위 ‘족벌방송’이 가지고 있는 해악성이다. 조중동과 재벌이 연합한 방송이 보수 일색, 친재벌 성향을 띨 것이기 때문에 하는 얘기가 아니다. 과거 독재정권시절 ‘관제 어용 방송’이 그렇게 하는 것을 우리는 많이 봐왔다.

▲ 윤성도 KBS PD
그런데 ‘족벌방송’은 ‘관제어용방송’과는 차원이 전혀 다른 개념이다. ‘관제어용방송’은 아무리 그래도 온갖 군데서 감시와 비판을 받기 때문에 무조건 일방의 이익을 대변하는 것이 원천적으로 불가능하고, 민주주의가 발전하는 만큼 좋은 방향으로 변화할 수 있다. 하지만 ‘족벌방송’은 사주 외에 어느 누구도 이것을 제어할 수도, 바꿀 수도 없다. 이것이 ‘관제어용방송’과 ‘족벌방송’이 근본적으로 다를 수밖에 없는 이유다.

공영방송이 죽어서는 안되는 것처럼 신문 역시 무너져서는 안된다. 어느 누구도 그걸 바라지는 않는다. 하지만 이렇게 온 나라를 난도질하는 식이 돼서는 안된다. 다른데서 해법을 찾아야 한다. 대우도 살리고 기아도 살린 우리 국민인데 그 정도 지혜를 발휘하지 못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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