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내린 ‘결못남’, 2% 아쉬운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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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내린 ‘결못남’, 2% 아쉬운 이유
[TV에세이] 결혼과 출산 거부가 책임회피일까
  • 민임동기 기자
  • 승인 2009.08.05 06:5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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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 월화드라마 〈결혼 못하는 남자〉(결못남)가 막을 내렸다. MBC 〈선덕여왕〉 의 여파로 시청률은 저조했지만 〈결못남〉은 나름 괜찮은 드라마였다. 하지만 그래서인지 2% 아쉽다. ‘결못남’ 조재희 소장이 ‘결혼’을 선택하는 쪽으로 결론이 났기 때문이다. 다소 과격한 표현을 허락한다면, 제작진은 주인공 조재희를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결못남’에 대해 가지고 있는 편견에 굴복시킨(?) 셈이다.

〈씨네21〉김은형 기자가 언급한 것처럼 “‘결못남’의 이기성을 말할 때 가장 많이 언급되는 건 결혼, 출산 등의 책임 회피다.” 그리고 이 부분은 〈결못남〉에서 조재희 소장을 둘러싼 인물들에 의해 끊임 없이 재생산 되는 복음이자 이데올로기였다. ‘성인 남녀는 적정 나이가 되면 무조건 결혼을 해야한다’- 한국 사회를 지배하고 있는 이 삶의 문법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사람은 별로 없다.

결혼하고 애 낳고 사는 것만이 ‘정상적’이고 행복한 삶일까

▲ 막내린 KBS <결혼 못하는 남자> ⓒKBS
때문에 〈결못남〉의 결론은 아쉽다. ‘결못남’들이 비혼을 고민하는 데에는 그만한 충분한 이유가 있다. 개인적인 이유도 있고 사회·경제적인 요인이 ‘결못남’을 만드는 측면도 있다. 하지만 이 부분은 제대로 드러나지 않았다. 오히려 ‘결못남’들이 자신의 삶만 생각하는 철없는 이기주의자이거나 세상 사람들과의 소통을 거부한 채 살아가는 비정상적인 사람에 초점이 맞춰진 듯한 느낌마저 들었다. 

‘초식남’이 증가하는 이유가 매스컴의 관심을 받는 요즘 트렌드를 감안하면 〈결못남〉의 시각은 여전히 ‘계몽적’인 듯하다. 연애나 결혼에 무관심하고 자신의 일과 자기계발에 대한 욕구가 강한 ‘초식남’과 ‘결못남’은 전혀 이상한 사람이 아니다. 오히려 서로 다른 삶을 인정하지 않은 채 오로지 결혼하고 애 낳고 사는 삶이 정상적이라며 강요하는 사람들이 비정상적인 게 아닐까. 특히 결혼한 가정이 정상적·모범적 가정으로 인식되는 한국 사회에서 ‘비혼자’가 겪어야 하는 일상적 스트레스는 거의 폭력 수준이다. 멀리 갈 것도 없다. 우리의 명절을 생각해보면 된다.

“책임감에 대해서 통감하기 때문에 가급적이면 책임질 일을 만들지 않고 자기가 진짜 짊어질 수 있는 책임만 지는”(김은형) 삶이 왜 이기적이라고 비난받아야 하는 걸까. 〈결못남〉은 주인공 조재희를 통해 이 부분을 좀더 심도 있게 드러냈어야 했지만 제작진은 다른 선택을 한 것 같다. 그래서 더욱 아쉽다.

원작의 한국적 해석, 불가능했던 걸까

〈결못남〉의 또 다른 아쉬운 점은 원작의 창조적 해석에 관한 부분이다. 물론 이 부분은 제작진이 전적으로 판단할 문제다. 동명의 일본 원작드라마를 리메이크한 〈결못남〉은 대체로 원작에 충실한 편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리메이크가 원작에 충실하지 않고 어설프게 독자노선을 걸을 때 재미와 감동은 반감된다. 그런 점에서 한국판 〈결못남〉은 적어도 ‘어설픈 해석’은 하지 않은 셈이다.

하지만 저출산율이 사회적 문제가 되고, ‘88만원 세대’로 상징되는 청년실업 문제가 극대화 되고 있는 시대적 상황을 〈결못남〉이 조금이나마 반영하지 못한 점은 못내 아쉽다. 드라마에서처럼 자신의 삶의 테두리에서 벗어나는 게 두려운(?) ‘결못남’도 있지만, 사회·경제적 환경 때문에 ‘결못남’ ‘비혼남’을 선택(?)하는 경우도 많다. 요즘 한국 사회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유형 아닌가. 〈결못남〉이 이런 유형의 캐릭터를 만들어 내고 이들 사이의 소통에 좀더 치중했다면? 일본 정서가 강한 원작에서 벗어나 한국적 ‘결못남’을 만들어낼 수 있지 않았을까.

하지만 〈결못남〉에서는 이런 사회적 의미보다는 조재희(지진희)와 장문정(엄정화), 정유진(김소은 분)으로 이어지는 삼각관계가 지나치게 부각됐다. 물론 원작에도 이런 삼각관계가 설정돼 있지만 〈결못남〉은 캐릭터들 사이의 로맨틱에 더 초점을 맞췄다. 〈데일리안〉 이준목 기자는 이 부분을 언급하면서 “(원작에는) 밀고 당기는 연애담 자체에 치중하기보다는 각기 다른 삶의 방식과 가치관을 지니고 있던 독신남녀들이 주변과의 교류를 통해 조금씩 영향을 받으며 성장해가는 ‘소통’에 더 주목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 막내린 KBS <결혼 못하는 남자> ⓒKBS
‘원칙주의자’ 조재희 캐릭터가 갖는 의미

개인적으로 가장 아쉬운 것은 주인공 조재희의 ‘지독한 개인주의’가 갖는 의미가 간과된 점이었다. 접대와 회식으로 상징되는 한국의 술자리 문화가 일상 생활에서 최소한의 개인적 여유와 공간을 허락하지 않는 점을 감안하면 ‘조재희식 개인주의’는 나름 유의미성이 충분히 있는 게 아닐까. 하지만 이런 유의미성은 그의 괴팍한(?) 성격에 가려 제대로 부각되지 못했다.

개인에 대한 평가가 실력이나 진정성보다 대안관계나 인간관계에 의해 좌우되는 한국적 현실에서 조재희라는 캐릭터가 주는 의미는 남다르다. 독특한 성격 때문에 재수가 없긴 해도, 주인공 조재희 소장은 실력을 바탕으로 원칙을 지키려는 원칙주의자였다. 우리 주변에 이런 원칙주의자가 얼마나 있을까. 원칙이 ‘사회적 관계망’ 속에 의미를 잃어가는 요즘, 이들을 발견하기란 하늘에 별 따기와도 같은 일 아닐까.

모두가 조재희가 될 필요는 없지만 조재희 같은 캐릭터가 우리 사회에 소수나마 존재하는 건 다양성 확보 차원에서라도 권장해야 할 일인 것 같다. 그래서일까. 벌써부터 조재희가 그리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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