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8월 8일. 정권 차원의 사장교체 작업이 한창이던 KBS에는 사복 경찰이 투입됐다. 이날은 이사회가 정연주 전 사장의 해임제청안을 상정하기로 한 날이었고, 이를 저지하기 위해 나섰던 기자·PD 등 KBS 사원들은 경찰에 의해 강제로 끌려나왔다.
그리고 1년. ‘그날’을 기억하는 사람들이 다시 모였다. 80여명의 기자·PD들은 7일 오후 6시 30분부터 본관 민주광장에 모여 ‘8.8 폭거 1년, KBS를 돌아본다’고 적힌 현수막을 내걸고 집회를 열었다.
KBS 안전관리팀, 언론노조 관계자 시청자광장 출입 제지
하지만 집회 시작부터 사측은 ‘과민반응’을 보였다. 오후 6시 40분께 최상재 전국언론노조 위원장, 이근행 MBC본부 위원장 등 언론노조 관계자들이 집회참석을 위해 본관으로 들어서자, 안전관리팀 직원과 청원경찰 20여명은 이들을 막아 나섰다.
결국 민주광장에 모여 있던 KBS 사원들이 몰려가 청원경찰과 몸싸움을 벌였고, 10여분의 실랑이 끝에 언론노조 관계자들은 입장할 수 있었다. 집회가 열린 민주광장의 다른 이름은 ‘시청자광장.’ 시청자라면 누구나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는 공간이지만, 안전관리팀은 특별한 이유를 밝히지 않고 언론노조 관계자들의 출입을 제지했다.
소동 끝에 집회는 오후 6시 50분께 속개됐고 지난해 8월 8일 ‘경찰 난입’ 직후 결성된 ‘공영방송 사수를 위한 KBS 사원행동’의 양승동 대표(당시 PD협회장)와 김현석 대변인(당시 기자협회장)이 무대에 섰다.
양승동 대표는 “지난해 8월 8일은 치욕과 분노를 느낀 날이지만, 한편으로는 굴종하지 않았기 때문에 희망을 본 날이기도 하다”면서 “정부·여당은 사장이 바뀌고 나서 KBS가 장악됐다고 얘기하지만, 절대 그렇지 않다. 이 자리에 모인 후배들이 KBS의 독립과 공정방송 수호를 위해 싸워줄 것을 굳게 믿는다”고 말했다.
현재 PD협회와 기자협회를 이끌고 있는 협회장들도 마이크를 넘겨받았다. 김덕재 KBS PD협회장은 “시청자광장을 막아나선 청원경찰들과 싸우면서 몸이 지난해의 기억을 되살려낸 것 같다”며 씁쓸해했고, 김진우 기자협회장은 “정권도 바뀌고 사장도 바뀌지만 KBS 구성원들은 그대로 있다”며 “희망을 잃지 않고 싸웠으면 한다”고 밝혔다.
KBS 노조 중앙위원을 맡고 있는 민일홍 PD는 “지난 1년간 KBS가 많이 망가졌지만, 이 자리를 지킨 사원들이 있어 더 나락으로 떨어지는 것을 막을 수 있었다”면서 “앞으로가 더 중요하다. 힘을 합쳐 끝까지 투쟁하자”고 말했다.
‘우여곡절’ 끝에 입장한 최상재 전국언론노조 위원장은 “지난해 8월 7일 저녁 KBS 앞 촛불집회에서 갑자기 연행돼 8일 상황을 지켜보지 못해 안타까웠다”며 “그날 저녁 인터넷으로 KBS 사원들이 경찰과 싸우느라 땀흘리고 탈진한 사진을 보며 눈시울을 붉혔다”고 말했다. 최 위원장은 또 “작년에 KBS를 지키기 위한 촛불집회에 참석할 때 ‘아빠가 왜 KBS를 지켜’라고 묻는 딸에게 ‘아빠가 봤던 뉴스랑 프로그램을 너희에게도 보여주기 위해서야’라고 답했다”고 덧붙였다.
양문석 미디어행동 사무총장은 “이 자리에 모인 KBS 사원들이 언론악법 저지 뿐 아니라 공영방송법 저지투쟁에도 함께 나서야 한다”며 “당장이라도 사측이 오판하고 있는 공영방송법을 막아내는 싸움을 시작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이날 집회에 모인 ‘8월 8일을 기억하는 KBS 사람들’은 결의문에서 “지난 1년간 많은 것이 변했다. 신뢰도·영향력 1위를 차지했던 KBS는 영혼마저 권력에 팔아버린 3류 방송이라는 시청자들의 비난에 직면했다”며 “언론의 독립과 자율성을 위협하는 세력에 맞서 당당히 싸울 것”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