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도도 행동도 없는 ‘당신들의’ 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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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김세옥 기자

“이런 식이라면 우리가 지켜야 할 당신들의 양심이 무엇이냐는 국민의 질문에 답해야 할 수도 있다.” 얼마 전 점심을 함께한 지상파 방송사 관계자의 말이다. 그는 지난달 22일 여당의 언론법 날치기 처리 이후 지상파 방송사들의 보도와 종사자들의 후속 투쟁에 고개를 저었다.

그의 지적이 아니더라도 여당의 언론법 날치기 처리 이후 19일(8월 10일 기준)이 지난 현재의 방송 보도들을 보면 1년 6개월 동안 세 차례나 방송·언론인들의 파업을 이끌어냈던 언론법 관련 논란은 모두 끝난 듯 보인다.

그도 그럴 것이 언론법 날치기 개정 효력 무효를 주장하며 대표가 앞장서 의원직을 버리고 100일 장외투쟁에 나선 민주당의 행보는 여야 정쟁의 한 구도로만 보도되고 있고, 정부·여당의 방송장악 시도의 한 축인 MBC 민영화 논란의 핵심 요소로 꼽을 수 있는 방송문화진흥회 신임 이사진 선임 관련 쟁점은 일부 신문을 제외하곤 사실상 보도조차 안 되고 있다.

▲ ‘언론악법 원천무효와 언론장악 저지를 위한 100일 행동’이 지난 7일 오전 10시 30분 방통위 사옥 앞에서 ‘이명박 정권의 일방적 방문진 이사 선임 반대 기자회견’을 가졌다. ⓒPD저널
언론법 관련 논란만이 아니다. 노사가 극적 타협을 이루긴 했지만, 열흘가량 도장 공장을 점거하고 있던 쌍용차 노조원들을 향한 경찰의 비인권적 고사작전과 테러를 방불케 하는 폭력진압 등을 방송3사는 제대로 보도하지 않았다. 경찰과 노조 양측 모두의 문제로 국한했을 뿐이다. 극단적 갈등에 이르기까지 수수방관한 정부책임도 사실상 언급하지 않았다.

일련의 문제제기에 대해 지상파 방송사 노조의 한 관계자는 “아프게 받아들이고 있다”면서도 “보도 이후 문제제기를 하고 시정의 방향을 찾아가는 노력은 할 수 있지만, 보도 이전엔 노조가 개입하기 어려운 구조적 측면도 있다는 점도 이해해 달라”고 말했다.

그러나 그들의 어려움을 이해하면서도 선뜻 수긍하기 어려운 점이 있다. 보도가 그러하다면 언론법 무효화를 위한 100일 투쟁에 돌입한 언론·시민단체와 야당들의 장외 활동에 지상파 방송 종사자들은 왜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있는지에 대한 부분이다. 최상재 위원장 등 언론노조 관계자들이 참여하고 있긴 하지만 지상파 방송 관계자들이 1만명에 달한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는 사실상 참여하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다.

또 다시 파업을 하라는 게 아니다. 방송·언론 공공성을 지키는 일이 방송·언론인들의 양심과 관련한 문제라면, 퇴근 후 언론·시민단체 그리고 의원직을 던진 정치인들과 함께 방송·언론의 공공성을 지켜달라는 호소에 동참하는 게 그리 어려운 일일까.

당사자인 방송·언론인들이 이처럼 소극적 태도로 일관하고 있는데 시민들의 계속적인 지지를 바라는 건 이중적이다 못해 이율배반적이다. 민주주의를 위해 방송·언론의 공공성·공정성을 지켜야 한다며, 두 번의 여름을 거리에서 맞은 촛불시민들이 스스로의 땀방울을 언제까지 가치 있게 여길 수 있을지 방송·언론인 스스로 아프게 곱씹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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