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O와 대통령, 공화국 정체성과 충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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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O와 대통령, 공화국 정체성과 충돌”
경향신문, ‘새로운 공화국을 꿈꾸며’ 토론회 개최
  • 원성윤 기자
  • 승인 2009.08.12 20:0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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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라는 헌법 제1조는 익히 알려져 있지만, 대의민주주의에 대한 막연한 이해 수준에 머물러 있는 게 사실이다. 그러나 현 정권 들어 늘어나고 있는 시민들의 직접행동과 정치권의 개헌 논의와 맞물려 학계에선 ‘공화주의’의 정체성을 구체적으로 규정할 시점이 됐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이런 가운데 학계의 주요 연구자들이 ‘공화주의’에 대해 심도있는 의견을 교환하는 토론회가 마련돼 눈길을 끈다. 〈경향신문〉 주최로 12일 오후 2시 서울 정동 경향신문사 5층 대회의실에서 열린 ‘새로운 공화국을 꿈꾸며’ 토론회다.

이날 토론은 김상봉 전남대 교수(철학)과 박명림 연세대 교수(정치학)가 민주 공화국으로서의 대한민국의 정체성에 대한 질문을 시작으로 정치·사회·경제 등 13개 주제를 놓고 26편의 서신을 주고 받은 ‘김상봉-박명림의 서신대화’를 정리하는 차원에서 마련됐다. ‘김상봉-박명림의 서신대화’는 지난 1월부터 7개월 동안 〈경향신문〉에 연재됐다.

◇ 김상봉 “CEO 대통령, 공화국 정체성과 충돌”

첫 번째 발제에 나선 김상봉 교수는 “헌법 1조는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라고 쓰고 있지만 민주국과와 공화국가는 별개의 범주”라며 한국에서 공화국의 개념이 잘못 쓰이고 있다고 지적했다. 귀족정이나 군주국도 공화국일 수 있는데 영국의 입헌공화국, 북한의 인민공화국과 구분하기 위해 ‘민주공화국’라는 개념을 사용한 것으로 보인다는 것이다.

김 교수는 “민주주의가 의사결정·권력행사의 형식적 절차를 말하는 것이라면 공화국은 내용적 측면에서 공공성을 뜻하는 것”이라면서 “경제 가치가 아닌 공공성의 ‘국가적 이상(理想)’을 공유해야 참 공화국이라 할 수 있다”고 말했다.

▲ 〈경향신문〉은 12일 오후 2시 서울 중구 정동 경향신문사 5층 대회의실에서 ‘새로운 공화국을 꿈꾸며’라는 토론회를 열었다. ⓒPD저널

그러면서 김 교수는 이명박 대통령이 당선될 때의 캐치프레이즈인 ‘CEO 대통령’에 대한 비판에 대해 “옳으면서도 틀리다”고 지적했다. 함석헌 선생의 말처럼 모든 국가가 기업에 의해 포획된 ‘기업국가’(cooperater state)가 됐으니, 국가의 가장 중요한 관심사가 ‘CEO 대통령’과 같은 경제문제가 된 것은 당연할 수 있다는 것이다.

김 교수는 그러나 ‘사익’, ‘시장’, ‘경쟁’을 대표하는 CEO 대통령으로서의 성공과 ‘공익’, ‘균형’, ‘조정’을 표상하는 공화국 대통령과는 충돌할 수밖에 없고, 이런 모순의 상황은 ‘대통령의 실패’로 귀결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그는 “대한민국은 (CEO 대통령의 당선 이후) 고전적 경제이론에서도 최소한의 공공재에 속한 ‘교육’을 비롯해 고속도로 등 모든 것이 민영화되고 최고의 선인 양 떠받들어지면서 (공화국의 정체성과 달리) 공공성의 영역이 협소해지는 결과가 나타나고 있다”며 CEO 대통령과 공화국 대통령의 정체성 충돌의 위험을 지적했다.

◇ 박명림 “사회 공공성 회복 없이 인간화 없다”

두 번째 발제에 나선 박명림 교수는 1987년 6월 항쟁이후 30년간 절차적 민주주의는 이룩했지만, 신자유주의의 가속화로 인해 실질적 민주화를 이룩하지 못했음을 지적했다. 민주화가 정치영역으로 한정되면서 기득세력의 자유화를 촉진해 도리어 공화화, 복지화, 평등화 ,사회화, 인간화로 나아가지 못했는 것이다.

박 교수는 “(87년 6월 이후) 민주주의의 내용을 채우는 문제를 소홀히 한 결과 (대한민국은) 공동체 붕괴와 해체 상태에 진입했다”고 꼬집었다.

이어 공화국의 정의를 내리는 문제에 대해 “어떻게 국가 공동체의 기준, 즉 공준을 확립할 것인가가 중요하다. (국가 공동체의 기준에) 공화주의, 공공성 등의 개입이 없다면 민주주의의 후퇴를 넘어 개인의 내면 실존과 국가의 분리 현상이 심화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는 이와 같은 한국사회의 현실을 압축해 보여주는 사건으로 김수환 추기경과 노무현 전 대통령의 사례를 거론했다. 김수환 추기경 개인의 나눔·분배는 칭송, 존경의 대상이었지만 노무현 정부의 분배 정책은 좌파 정책, 성장 동력을 파괴시키는 정책으로 비판받았다는 것이다. 박 교수는 “개인의 내면적 문제가 사회로 상승되면서 공동가치나 공준으로 확대되는 것에 미숙한 것을 보여준다”고 지적했다.

▲ 〈경향신문〉은 12일 오후 2시 서울 중구 정동 경향신문사 5층 대회의실에서 ‘새로운 공화국을 꿈꾸며’라는 토론회를 열었다. ⓒPD저널

박 교수는 한국 사회의 가장 심각한 문제 가운데 하나로 지적되는 시장화와 양극화에 대해 “재산과 돈, 시장의 논리가 국가, 공공 영역을 장악해 국가의 역할이 결정적으로 왜곡되는 상태에 돌입했다”고 비판했다. 이어 “공화화를 통한 공공성 회복, 사회화와 복지화 없이는 선진화와 인간화가 가능하지 않다”며 공화국에 대한 논의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우리 사회는 정치적 민주화가 준 환상 속에 사회적 과두화가 동시에 진행됐다”고 진단하며 “정치가 민주화되면 모든 게 민주화된다고 생각해 사회적 과두화가 초래하는 탈공화화를 보지 못했다. 교육, 기업, 병원, 종교 등 전 영역이 과두화됐다. 우리 사회가 지속가능한 사회가 되기 위해서는 사회 권력자원의 형평화가 필요하다”고 마무리했다.

◇ 김종철 “이분법적 진단, 현실왜곡 할 수도”

토론자로 나선 〈한겨레〉 논설위원인 김종철 연세대 교수(법학)는 두 사람의 대담을 관통하는 공화국의 정의가 분명하지 않은 점 그리고 민주화 세력은 ‘선’으로, 산업화를 통해 기득권을 구축한 세력은 ‘악’이라는 식의 선악규정론이 강한 점을 문제로 지적했다.

김 교수는 “국가의 문제, 국가와 국민의 관계는 복합계로 단선적 이분법이 오히려 현실을 왜곡할 수 있다”고 말했다. 또한 그는 “시민적 덕성을 새로운 공화국 건설의 중요한 요소로 지적하면서도 어떻게 이 시민적 덕성을 고양하는지에 대한 방법론이 극히 취약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CEO 대통령 비판과 관련해 “자유시장경제의 장점을 어느 정도까지 인정할지에 대한 문제는 그리 간단하지 않다”며 “기업친화적 국가정책을 부정하는 것은 노동친화적 국가정책을 부정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독재적 발상”이라고 단언했다. 

이어 헌법 제119조 2항에 규정된 ‘경제 민주화’를 거론하며 “경영에 대한 노동자의 참여를 보장하는 것으로 적극적으로 해석해야 하겠지만, 반대로 기업의 모든 부분들을 조합원 지주제로 한다면 우리 헌법에서 수용할 수 있을까. 헌법체제가 가지고 있는 역사적 무게를 고려해 볼 때 쉽지 않은 문제”라며 ‘엘리트주의적 조급성’이라고 지적했다.

김진석 인하대 교수(철학) 역시 “이제까지 한국 사회에서 공공성이 무시되었다는 점에서 공화국에 대한 논의는 중요하다”면서도 “공화국에 대한 기본적인 원칙과 기준을 세운다는 목표 때문인지 논의는 구체적인 반면 정책적 모색은 다소 부족했다”고 꼬집었다.

김 교수는 “공공성의 옹호는 자칫 사적인 것과 개인적인 것을 송두리째 비난하는 쪽으로 흐른다”며 “그것들을 너무 내치거나 배제한다면 자칫 현실에 대한 대안이 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예를 들어 김상봉 교수가 “돈은 공공성과 양립할 수 없다. 돈에 대한 욕망에는 아무런 공공성의 계기도 들어있지 않다”고 한 것에 대해 김 교수는 “이는 실천 가능한 공화국을 논의하는 자리에서 다소 공허하거나 근본주의적일 수 있다”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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