콩으로 메주를 쑨다 해도 믿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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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계에서] 최영기 한국독립PD협회장

“이명박 대통령은 7일 청와대에서 신임 KBS 이사진에게 임명장을 수여한 뒤 방송 산업 선진화 등을 주제로 환담을 나눈 자리에서 ‘정부가 방송을 장악하려 한다는 일부의 주장이 있지만 그것은 결코 사실이 아니다’며 ‘아무도 방송을 장악할 수는 없다’고 강조했다”라는 기사를 읽었다. 이 기사를 읽는 순간 나에게는 두 가지 반응이 동시에 나타났다. 의문과 긍정으로 고개가 ‘갸우뚱’ 했다가, 곧바로 ‘끄덕끄덕’거렸다.

긍정할 수 있는 말은 “아무도 방송을 장악할 수는 없다”라는 말이었고, 의문투성이라 믿을 수 없는 말은 “정부가 방송을 장악하려 한다는 일부의 주장이 있지만 그것은 결코 사실이 아니다”라는 말이었다. 이 두 말은 사실상 자연스럽게 연결될 수 있는 말임에도 불구하고 그 기사에서는 물과 기름처럼 따로따로 받아들여졌다. 왜냐하면 “정부가 방송을 장악하려 한다는 일부의 주장이 있지만 그것은 결코 사실이 아니다”라는 말을 아무리 믿으려 해도 믿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이런 것을 ‘콩으로 메주를 쑨다 해도 믿을 수 없다’라는 것일까?

이명박 정부 탄생 이후 ‘방송장악’이라는 단어는 너무나 흔하게 나타나는 단어이다. “아무도 방송을 장악할 수 없다”라고 하는데, 왜 대한민국 모든 매체에 이 ‘방송장악’이라는 단어가 흔하게 오르내리는 것인가? 아니 땐 굴뚝에서 연기 날까? 물음표만 나타난다.

불과 1년 전 KBS 정연주 사장 해임작전은 무엇인가? 정부정책을 비판했다고 해서 언론의 순기능을 무시한 채 공권력으로 특정 프로그램을 압박하는 것은 무엇인가? 신성한 입법기관인 국회에서 도둑질 하듯 미디어법을 통과시키는 여당의 행위는 무엇인가? 또 최근에 MBC의 경영진을 압박하는 것은 무엇인가?

물음표는 꼬리에 꼬리를 물고 생긴다. 이 물음표에 대한 시원한 해명을 듣지 않는 한 ‘콩으로 메주를 쑨다 해도 믿을 수 없다’라는 속담만 생각난다. 그리고 다시 한 번 소통의 중요성을 느낀다.
최근 실시된 각종 여론조사에서 나타난 민심의 키워드는 소통과 자성으로 집약된다. ‘이명박 대통령이 앞으로 국정운영 방식을 어떻게 해야 한다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86.2%가 ‘지금보다 국민의 여론 수렴과 소통을 강화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답했다. ‘현 정부 출범 이후 우리나라의 민주주의가 전반적으로 나빠졌다’는 주장에 대해 67%가 공감을 표시했다. 이 대통령은 이러한 민심에 대해 “시간이 흐르면 어떻게 되겠지” 하는 안이함을 버리고 열린 마음으로 국민과 소통하는 자세를 갖추어야 한다.

▲ 최영기 한국독립PD협회장
우리는 작년부터 오늘까지 대한민국의 현실을 직시하면서 민주주의의 가장 소중한 덕목은 소통이라는 점을 깨달았다. 따라서 현 정부는 “비민주주의적으로 결정하고 권위주의적으로 관철하려고 한다”는 진보 진영의 비판을 흘려듣지 말고 문제 해결을 위해 고심초사해야 한다. 현 정부는 민주주의가 제대로 작동하기 위한 조건으로 유난히 법치를 강조했다. 그런데 정부가 법치를 전면에 내세울수록 국민들은 권위주의 통치로의 회귀로 인식하고 있다.

이제 국정 운영 기조의 전환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가 되었다. 정부 여당은 밀어붙이기 국정 운영을 포기하고 비판자의 목소리를 수용해서 정책에 반영해야 한다. 보수는 성장·효율·경쟁을, 진보는 분배·균등·투명을 얘기하는데 진보의 가치는 잘못됐고 보수만 옳다는 식으로 행동해서는 안 된다. 보수의 입장에서 진보의 가치를 수용하는 것이 진정한 소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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