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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김동준 공공미디어연구소 연구실장

지난달 30일 치러진 일본의 중의원 선거는 알려진 바와 같이 집권당인 자민당의 참패, 만년 야당인 민주당의 압승으로 끝났다. 민주당은 총의석 480석(지역구 300석, 비례대표 180석) 중 308석을 차지한 반면, 자민당은 119석을 얻는데 그친 것이다.

이로써 일본은 54년 만에 정권이 교체되며, 전 세계의 주목을 받았다. 정권의 교체로 인해 하루아침에 일본의 모든 것이 변하지는 않겠지만, 어쨌든 일본의 변화는 예고되고 있다. 대부분의 언론에서도 하토야마 유키오 일본 차기 총리가 대내외 정책 총괄부처에 당 실세를 배치한 것부터 좁게는 정부개혁, 넓게는 신일본 개혁의 신호탄이라고 분석하고 있다.

이 시점에서 궁금해지는 것은 NHK의 행보이다. 그간 NHK는 자민당의 영향력 하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NHK가 집권당인 자민당과 밀월관계임은 공공연한 사실이었으며, 이로 인해 일본의 사회적 비판을 받기도 했다. 대표적으로 2001년 1월 말 NHK 교육텔레비전에서 방영된 <ETV 스페셜>의 4회 연속 시리즈 ‘전쟁을 어떻게 심판할 것인가’는 빈번하게 회자되는 사례이다.

이 시리즈는 지금까지 충분히 다루어지지 않았던 전시 하에서의 성폭력에 대한 심판을 테마로 하고 있었다. 나치의 대학살,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의 집단 학살, 일본군에 의한 여성의 성 노예화 등 20세기의 끔찍한 사건들에 대한 증언을 포함하고 있는 이 시리즈는 2000년 12월에 있었던 ‘여성국제전범법정(2000년12월 도쿄 개최)’과 ‘여성에 대한 범죄 국제 공청회’를 계기로 제작되어 2001년 1월 말에 방영되었다.

그러나 일본군의 위안부 제도를 다룬 시리즈의 2회 방영분 ‘전쟁 성폭력(2001년 1월 20일 방영)’은 방영 직전에 대폭 수정이 되었다는 이유로 출연자들이 거세게 항의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외부압력에 의해 방송내용이 수정되었다는 의혹이 제기되었고, 이는 집권당인 자민당과 관계가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천황의 전쟁책임’이라는 민감한 사안에 대한 프로그램 방영 직후로 예정되어 있던 NHK 예산을 심의하는 자민당 총무부회가 그 배경으로 작용하였다는 것이다.

게다가 결정적으로 2005년 1월에 이 프로그램은 정부 여당인 자민당의 유력 정치가의 정치적 압력에 의해 방송 직전에 그 내용이 변경되었다는 내부고발이 발생하기도 했다. 해당 프로그램 책임자였던 나가이 사도루 교육프로그램센터 책임프로듀서가 기자회견을 통해 “정치가의 압력으로 프로그램 내용이 수정됐으며 NHK는 정치 개입을 허용했다”고 주장한 것이다. 뿐만 아니라 정치 개입이 일상적으로 이뤄지고 있다고 폭로하기도 했다.

2004년 이후 발생한 정치적 압력에 의한 프로그램 내용 사전 수정 등과 관련해서는 NHK 프로그램의 중립성을 의심하는 목소리와 NHK의 위상 자체에 대한 불만이 폭발하는 계기가 되었다. 그 결과 2004년 이후, 당시 권력의 중심에 있던 NHK 에비사와 회장의 사임, 재발방지를 위한 각종 개혁책 등이 계속 발표·시행되었지만 수신료 납부 거부 및 보류 건수가 과거 최대 건수인 130만 건을 넘어서는 등 사회각계 및 시청자로부터의 비판은 수그러들지 않았다.

이러한 자민당의 NHK에 대한 간섭 및 공생관계는 구조적인 문제라는 지적도 있다. NHK의 역사를 살펴보면, 자민당 혹은 정부 고위관료가 NHK 회장으로 간 사례가 빈번하여, 역대 회장들이 얼마나 정치권력과 밀접한 관계를 맺으며 방송을 정치 사유화했는지 잘 알 수 있기 때문이다.

▲ 김동준 공공미디어연구소 연구실장.

그러나 일본정권은 이제 민주당의 손으로 넘어갔다. 일각에서는 NHK가 과거와 같은 정치권의 외압이 줄어들 것이라는 분석이 조심스레 제기되고 있다. NHK가 정치권에서 벗어나 BBC에 견줄 수 있을 정도의 세계적 공영방송사로 거듭날 것인지, 아니면 또 다른 정권과의 밀월관계로 기득권을 유지할 것인지 관전 포인트가 아닐 수 없다. NHK의 미래가 KBS의 과거, NHK의 과거가 KBS의 미래와 유사할 수도 있다는 점에서 더욱 궁금해지는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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