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 ‘수신료 인상’ 왜 보수·진보 다 반대할까?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명분·계획 제시 못하고 서두르기만" … “이병순 사장 연임 때문이냐”

KBS는 현재 2500원인 수신료를 4500~4800원으로 인상하는 방안을 연내에 처리하겠다는 방침이지만, 분위기는 그리 녹록치 않아 보인다.

KBS는 지난 8일 ‘수신료 현실화’를 위한 공청회를 열었지만, 참가자들은 “구체적인 내용이 공개되지 않아 ‘요식행위’에 지나지 않는다”며 냉소적인 반응을 보였다.

▲ KBS는 지난 8일 오후 서울 목동 방송회관에서 '디지털 전환과 공적서비스 확대를 위한 텔레비전방송수신료 현실화에 관한 공청회'를 개최했다. ⓒPD저널
토론자로 참석한 최영묵 성공회대 교수(민주언론시민연합 정책위원)는 임창건 KBS 정책기획센터장의 발제 후 “가장 궁금한 내용을 얘기하지 않았다”며 수신료 인상 금액과 시기 등에 대해 질문하기도 했다.

보수 패널들도 공청회서 KBS ‘준비 부족’ 지적

이날 공청회를 앞두고 일각에서는 “KBS가 친여·보수 인사들로 패널을 구성해 수신료 인상에 우호적인 여론을 형성하려는 것 아니겠냐”는 의혹도 제기됐다. 하지만 보수적 입장을 취하는 토론자들도 KBS의 ‘준비 부족’에는 이의를 제기했다.

윤석민 서울대 교수는 “발제문 내용이 부실하다”며 “인력 15%를 감축하겠다고 했는데 어떤 인력을 줄이겠다는 것인지 구체적이지 않고, 수신료를 디지털 전환에 쓴다면 어떤 항목에 얼마를 쓸 건지 밝히지 않았다”고 꼬집었다.

이병철 대한변호사협회 사업이사도 “KBS의 뚜렷한 비전이나 실천계획 등이 느껴지지 않는다”면서 “경제가 어려운 상황에서 조세 성격의 수신료를 인상하겠다는 입장을 국민들이 얼마나 받아들일 수 있을지 설득력이 부족하다”고 말했다.

보수·진보단체, 일제히 논평 내 수신료 인상 추진 비판

KBS의 수신료 인상을 바라보는 외부단체들의 시선도 곱지 않다. 공청회 직후 보수·진보단체들은 일제히 비판의 목소리를 냈다.

뉴라이트 계열의 민생경제정책연구소(이사장 김진홍, 이하 민생연)은 ‘29년째 수신료 동결’이라는 KBS의 주장을 정면으로 반박했다. 민생연은 10일 논평을 내 “1990년대 2000억원 정도 되던 수신료 수입은 1994년도 징수방법을 바꾸면서 70% 대폭 증가했다”며 “29년 동안 수신료 인상이 없다는 주장은 의도적 은폐”라고 비판했다.

민주언론시민연합(민언련)도 지난 9일 논평을 통해 “KBS가 지금 수신료를 ‘현실화’ 하겠다는 것은 국민을 얕봐도 너무 얕보는 행태”라며 “지금은 이 정권이 파괴해버린 공영방송의 시스템을 복구하고 정상화시키는 것이 먼저”라고 강조했다.

KBS가 당일 9시 뉴스와 보도 자료를 통해 밝힌 대로 공청회에 참석한 패널들은 대체로 수신료 인상의 필요성에 충분히 공감했다. 민언련이나 미디어행동의 논평을 봐도 수신료 현실화 자체를 반대하고 있지는 않다.

하지만 이들은 KBS가 수신료 인상을 위해 어떠한 명분을 갖췄는지, 구체적으로 어떤 계획을 갖고 있는지 모르겠다고 입을 모은다. KBS는 당초 공청회에서 ‘공적 서비스 확대 대국민 약속’ 10가지를 제시할 예정이었지만, 이 또한 토론자들에게만 약식으로 배포하고 발제문에는 포함시키지 않았다.

임창건 KBS 정책기획센터장도 준비가 부족하다는 점을 인정했다. 임 센터장은 공청회에서 “수신료를 왜 올려야 되는지 설득할 수 있는 명분이 부족하다는 지적이 많다”며 “충분히 공감하고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 준비하겠다”고 밝혔다.

서두르는 KBS, 이병순 사장 연임 때문?

KBS가 이렇게 ‘서두른다’는 인상을 주다보니 방송가에서는 임기를 두 달여 앞둔 이병순 사장이 연임을 위해 수신료 인상을 무리하게 밀어붙이는 것이 아니냐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하지만 공청회 이후 KBS의 태도를 보면 이런 분위기를 감지하지 못하고 있거나, 애써 외면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공청회가 열린 8일 방송된 <뉴스9> ‘KBS 수신료 현실화 공청회’ 리포트다.

“29년째, 공영방송 수신료는 2500원. 단 한 푼도 오르지 않았습니다. 오늘 공청회에 모인 각계 전문가들은 수신료 현실화에 공감하며 공영방송의 책임을 강조했는데요. (중략) KBS는 오늘 공청회에서 공영방송으로서의 신뢰성 강화와 공익적 책무를 확대할 것이며 디지털 전환을 통해 수신환경을 개선하고 시청자 주권을 강화해 나가겠다는 등 ‘수신료 현실화 대국민 약속’을 발표했습니다.”

30여년간 수신료가 제자리였다며, 각계 전문가들은 수신료 현실화에 공감하고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수신료 인상을 위한 명분이나 비전이 부족하다는 패널들의 지적은 기사에 전혀 언급되지 않았다. 더구나 ‘수신료 현실화 대국민 약속’은 토론자들에게만 전달됐을뿐 ‘발표된’ 적은 없다.

수신료를 올려 공영방송의 재정 안정화를 꾀하고 공영성을 높이겠다는 KBS의 주장은 충분히 일리가 있다. 하지만 지금 시점에서 KBS는 보수·진보단체 모두 수신료 인상에 냉담한 반응을 보이는 이유를 생각해봐야 한다. KBS가 밝힌대로 “수신료 인상이 정치적 프레임에 갇혀서는 안 된다.” 결국 국민적 동의가 필요한 상황에서 KBS가 앞으로 어떻게 수신료 현실화를 추진해나갈지 주목된다.

저작권자 © PD저널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모바일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