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개의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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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개의 생각
[경계에서] 박봉남 독립PD
  • 박봉남 독립PD
  • 승인 2009.09.14 1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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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서출판 돌베개
하나, 서경식의 책을 읽고 있다. <디아스포라 기행-추방당한 자의 시선>, <나의 서양미술순례>. 앞은 2년 전에 나왔고 뒤는 1992년에 나왔다. 읽으면서 마음이 참 복잡해지는 것을 어찌할 수 없다. 서경식은 서승의 둘째 동생이다.

1990년 4월, 제대를 하고 막 복학을 했던 나는 무시무시한 두 사람을 모시고 지리산에 올라야 했다. 통혁당 무기수였던 오병철 선생, 그리고 재일유학생간첩단 사건으로 구속되어 18년간 복역을 하고 막 출소했던 서승, 이 두 사람의 지리산 등반 안내를 맡으라는 선배의 지령(?)을 받은 때문이었다. 설레고 한편으로 두려운 마음으로 함께 했던 몇 일간의 산행, 두 분은 출소하자마자 남도의 땅 지리산을 보고 싶었다고 했다. 그런데 사실 난 좀 충격을 받았다. 그렇게 지독한 흉터를 얼굴에 새긴 사람을 본 일이 없었으니까… 세석평전 옆 연화봉에 앉아 멀리 능선을 바라보던 그 분의 옆모습, 그 참혹하게 일그러진 상처라니.

재일교포로 서울대에 유학을 와 있던 서승, 서준식 형제가 간첩단 사건으로 구속된 것은 1972년이다. 그 간첩단 사건(이것은 명백히 조작된 사건이다)으로 한 가족과 전도유망하던 형제의 모든 것이 끝장나고 말았다. 더욱이 서승은 혹독한 고문을 견디지 못해 죽을 생각으로 난로를 온몸에 끼얹었으니 다행히 목숨은 건졌으나 얼굴과 상반신에 지울 수 없는 혹독한 화상을 천형처럼 남겨야 했다. 형제가 풀려난 것은 88년과 90년이었다.

작가 서경식의 글에는 두 형을 빼앗기고 야만의 세월을 인내하며 유랑해야 했던 디아스포라의 고통, 추방당한 자의 시선이 잘 드러나 있다. ‘이런 책을 이제야 읽어보다니… 젠장. 나이 마흔이 넘어서야 비로소 이런 이야기들이 이렇게 절실히 와 닿는 거라니…’ 서경식의 글을 보며 생각했다. 언젠가 이 형제의 이야기를 어떤 형식으로든 만들어보리라.

둘, 싱가포르에 왔다. 사실 이곳에 오기 전 나는 마음이 퉁퉁 불어있었다. 두 사람의 죽음이 남긴 긴 파장 때문이었을 게다. 어쨌든 우울한 마음을 구겨 넣듯 정리하고 이곳에 온 것은 순전히 공짜 공부를 하기 위함이었다. BCPF(방송콘텐츠진흥재단)에서 주최하는 국제공동제작 워크숍이 여기서 진행되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 4일째 진행 중인데 열심히 공부를 하고 있다.

▲ 발제를 하는 NGC Asia 대표 초이린 ⓒ박봉남PD
개인으로는 절대 접촉하기 어려운 소위 글로벌 에이전트(디스커버리 채널, 내셔널지오그래픽 채널 담당자 및 관련 제작자들)에게 강의도 받고 영어로 피칭도 해봤다.(Pitching도 처음인데 그것도 Enlgish로 해보는 것이라니, 그래도 유익했다.) 다큐멘터리의 글쓰기, 배급, 제작과정, 법적인 계약 문제 등 국내에서는 얻기 어려운 이야기도 듣게 되니 여간 유익한 게 아니다. National Geographic Asia 아시아 책임자인 초이 린이 어떤 외모와 스타일을 가진 사람인지, 디스커버리 프로그램이 BBC와 어떤 점에서 다른지도 알게 됐다. 그냥 한국에 있으면서 막연하게 생각했던 해외시장 진출, 국제공동제작의 허와 실을 비교적 짧은 시기에 정확히 가늠할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내년에도 많은 연출자들이 이런 공간에서 배우고 같이 고민을 했으면 좋겠다.

▲ 박봉남 독립PD
피칭 시간에 나를 소개하면서 그런 이야기를 했다. 사실 요즘 지루한 시간을 보내며 고민을 많이 하고 있다고, 그리고 이후의 나의 삶을 아시아인의 삶과 현재를 기록하는데 헌신하고 싶다고. 4~5년 후 더 변화된 나의 모습을 기대하며 제 8강, CASE STUDY 2(싱가포르와 한국의 국제공동제작 경험 사례발표)를 경청한다. 발제자는 ‘Sitting in Pictures’라는 독립제작사의 대표인 Chih Chong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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