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들로드’ 다음 선택은? 런던 요리학교 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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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음식전문PD 꿈꾸는 KBS ‘누들로드’ 이욱정PD

이욱정 PD는 요즘 매우 바쁘다. ABU(아시아태평양 방송연맹) 대상 수상 이후 밀려드는 인터뷰와 각종 강연, 게다가 출국 준비까지. 이 PD는 회사에 휴직을 내고 이달 말 영국으로 유학을 떠난다. <누들로드>로 다큐멘터리 연출자로서의 입지를 다진 그가 선택한 다음 목적지는 런던에 위치한 세계적 요리학교 ‘르 꼬르동 블루’다.

<누들로드>가 ‘국수’를 통해 인류의 문명사를 관찰했던 다큐멘터리이긴 하지만, 방송사 PD가 요리를 배우겠다고 유학까지 떠나는 모습은 생경하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오래 전부터 ‘음식·요리 전문 PD’를 꿈꿔왔던 이욱정 PD에게 이번 유학은 꼭 필요한 과정이다.

▲ 이욱정 KBS PD
그는 “인터넷에 각 분야 전문가가 넘치는 시대에 PD가 전문화 되지 않고서는 마니아와 일반인까지 다양한 시청자들을 만족시키는 프로그램을 만들기가 쉽지 않다”며 “요리 이론이나 비평보다 직접 재료를 만지고 음식을 만드는 것을 배워야겠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수많은 도시 중에 런던을 선택한 이유는 “다양한 식문화가 공존하고, 요리에 관한 TV 프로그램을 가장 많이 생산하고 소비하는 BBC가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이 PD는 “언뜻 영국이 음식으로 유명하지 않은 것 같지만, 런던은 다르다. 최고의 레스토랑이 밀집해 있는 등 음식·요리 전문 프로듀서에게는 분명 매력적인 도시”라고 강조했다.

음식·요리 전문 PD의 길을 선택한 이욱정 PD의 ‘먹는 것’에 대한 애정과 관심은 남다르다. ‘이욱정의 책상에는 항상 먹을 것이 있다’는 말이 있을 정도. 그는 “저희 집이 워낙 식도락을 즐기는 환경이었어요. 어머니는 아이스크림, 빵, 피자, 순대를 모두 집에서 만들 수 있는 분이셨죠. 어머니가 요리하시던 모습도 아직까지 기억에 남아있고, 어렸을 때 추억도 음식이나 요리에 관한 것이 많습니다”라고 말했다. 

험난했던 <누들로드>의 제작과정도 ‘국수’가 주제였기 때문에 견딜 수 있었다. 이 PD는 “250여일 동안 10개국을 오가는 강행군이었지만 먹는 걸 좋아하고 음식 만드는 것을 지켜보는 것이 즐겁기 때문에 버틸 수 있었다. 만약 도자기나 실크를 주제로 하는 다큐멘터리였다면 절대 못 만들었을 것”이라며 웃었다.

‘오리엔탈리즘’ 벗어던진 아시아 다큐, 세계시장에 통했다

처음 <누들로드>를 기획하면서 이욱정 PD는 기존 음식 다큐와 어떻게 차별성을 보일 것인지 고민했다. 지금까지 음식을 다룬 다큐멘터리는 건강이나 한국의 식문화에 초점을 맞춘 것, 또는 두 가지를 적절히 섞은 내용이 많았다. 이 PD는 “국수라는 흥미로운 소재와 문명의 교류라는 딱딱한 주제의 균형을 맞추는 것이 중요했다”고 말했다.

그는 또 <누들로드>를 통해 아시아 다큐멘터리의 새로운 가능성도 발견했다. “그동안 아시아를 다룬 다큐는 서구인들이 동양을 바라보는 시각(오리엔탈리즘)에 맞춘 것들이 많았다. 야생의 오지나 숨은 부족 이야기들 말이다. 하지만 <누들로드>의 국수는 그렇지 않다. 도시적인 이야기이고 고대와 현대를 오가며 아시아를 넘어선 전 인류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냈기 때문에 세계시장에서 통했다.”

ABU 행사에서 만난 아시아 프로듀서들도 그 점에 관심을 나타냈다. 이욱정 PD는 “숨겨진 이야기가 아닌 ‘국수’라는 평범한 소재로 시리즈 다큐멘터리를 만들어 세계 유수채널에 판매했다는 점 자체에 관심이 많았다”고 전했다. 그는 “지금까지는 영미권의 프로듀서들이 아시아의 훌륭한 소재를 활용한 다큐를 많이 만들었는데, <누들로드>를 통해 우리 스스로 우리 콘텐츠를 활용할 수 있는 기획·제작능력이 충분하다는 자신감을 얻었다”고 덧붙였다.

▲ <누들로드> ⓒKBS

그러나 경기침체 이후 KBS가 다큐멘터리에 대한 제작지원을 줄인 것은 이 PD에게도 안타까운 일이다. KBS는 제작비 절감을 위해 ‘인사이트 아시아’ 후속 시리즈로 기획한 <불교>의 제작을 중단한 상태다. 이욱정 PD는 “공영방송은 특히 명품 다큐멘터리가 갖는 무형의 가치를 인정하고, 이를 통해 그 나라의 문화적 소양, 상상력의 지평을 넓히는 역할을 해야 한다는 것을 자각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도 이 PD는 “이전과 비교해 공중파의 입지도 좁아졌고, 당장 성과가 보이지 않는 다큐에 수억원의 제작비를 투입하는 호시절이 다시 오기는 어려울 것”이라며 “기업이 다큐 제작의 가장 큰 후원자로 나서는 근본적인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를 위해 그는 “홍보까지는 아니지만 어느 기업이 이 다큐멘터리를 후원했다고 고지할 수 있는 규제완화도 필요하다. 그래야 기업들도 나서지 않을까”라고 조언했다.

“요리사에 대한 인간탐구 다큐로 만들어보고 싶다”

이야기를 나누면서 ‘국수’ 다음으로 그가 생각하고 있는 아이템이 뭘까 궁금해졌다. 이 PD는 “요리사에 대한 인간탐구를 다큐멘터리로 만들어 보고 싶다”고 답했다. 그는 “21세기의 요리사는 TV를 통해 새로운 형식의 아티스트, 나아가 스타로까지 자리매김했다”며 “세계적인 요리사에 대한 인간탐구 또는 그의 요리세계를 조명하는 시리즈 다큐멘터리도 재미있을 것”이라고 귀띔했다.

영국 유학 중에도 이욱정 PD가 ‘요리’에만 전념할 것 같지는 않다. 출국을 앞둔 이 PD는 새 카메라와 매킨토시도 장만했다. 그는 “음식이 문화의 중요한 요소라는 것을 가장 일찍 깨달은 게 유럽사회다. 이 나라들의 먹거리와 음식에 대한 철학을 탐구해보는 로드 다큐도 찍어보고 싶다. 유명 레스토랑이 아닌 시골 할머니 등 평범한 사람들의 레시피(조리법)를 통해 그들의 역사가 자연스럽게 그려지는 로드 다큐멘터리도 해보고 싶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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