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의 마이크, 시민 그리고 국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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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의 마이크, 시민 그리고 국민
[시론] 최경진 대구가톨릭대 언론광고학부 교수
  • 최경진 대구가톨릭대 교수
  • 승인 2009.10.20 1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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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사회는 21세기의 화두이자 글로벌 사회를 움직이는 가장 역동적인 민주주의 주체의 하나이다. 시민사회는 과거의 권위주의적이고 획일적 사고가 지배하던 시대에 대한 사회적 자기교정의 결과요 새로운 세계사회를 지향하는 방향타이기도 하다. 시민의 힘과 역량은 사람의 몸에 비유하자면 없어서는 안 될 필수 아미노산이자 비타민과 같은 존재기도 하다.

그래서 이성과 합리가 생활의 기본적 철학으로 작동하는 서양에서 이미 시민은 정치 경제 사회 문화 교육 예술 등 거의 모든 분야에서 삶의 방식을 자율과 자치 그리고 협치(governance)를 통해 기능하게 하고 조율하는 주체적 존재가 되어왔다.

우리나라의 경우도 이제 예외는 아니다. 2009년 한국사회를 실질적으로 움직이는 것은 정치 조직도 아니요 경제 집단도 아니다. 그들은 외형적으로는 사회의 제도권 안에서 권력과 자본을 움켜쥔 현실적 실세로서 사회를 주도하는 세력처럼 보일지 모르나 실상은 그렇지 않다. 인류의 역사가 증명해오듯 근현대 사회를 움직여온 주체는 시민이었기 때문이다.

1987년 민중항쟁의 승리를 기점으로 한국의 현대사회를 희망의 사회로 이끌어온 조타수는 바로 시민이었고 민주정권이 들어선 이후 시민의 힘은 우리사회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더욱 구체적으로 제시했다. 그들의 역량은 시민사회로서의 대한민국을 만들고 가꾸는 지혜와 혜안으로 모아졌던 것이다.

종종 일각에서는 시민의 힘과 지혜를 지나치게 정치적으로 해석하고 심지어 불순한 세력으로 몰아붙이기도 하는데, 그들은 본질적으로 정치적 이데올로기와는 거리가 멀다. 설령 시민단체가 정치운동을 펼친다 하더라도 사실 그것은 일차적으로 ‘정치’ 그 자체가 아닌, 올바른 정치가 되기 위한 ‘감시’일 뿐이다.

최근 민주주의가 급격하게 쇠퇴하고 그 근간이 흔들리는 현상들이 사회 곳곳에 나타나면서 시민들은 우리사회에 다시 과거의 절대권위주의적 편협함과 극단주의가 꿈틀거리는 것은 아닌가 하는 위기의식 속에 심각하게 불안해하고 있다. 시민사회 단체들에 대한 국가기관들의 조직적이고도 음습한 사찰과 압력은 바로 그 대표적인 사례다.

며칠 전 진보개혁 성향의 시민단체ㆍ학계ㆍ종교계 등 주요 인사들이 대거 참여해 시민사회의 새로운 ‘희망과 대안’을 모토로 새롭게 출범하려 했던 창립 행사장에 한 극우보수단체의 방해로 행사가 도중에 중단되는 불상사가 일어났다. 작금의 후퇴한 민주주의의 치부를 드러냈던 씁쓰름한 광경이었다.

왜 이런 일들이 벌어지는 것일까. 국정의 가장 큰 책임을 지고 있는 정부의 편향된 방향키 때문이다. 정치를 직업으로 하는 사람들, 특히 정권을 잡고 나라를 이끄는 정부가 국민에게 희망과 미래를 제시하지 못할 때 사회는 불안에 떨 수밖에 없다. 그리고 위기와 불안에 처한 시민은 희망과 대안을 스스로 찾기 위해 자발적인 민주 세포분열을 하게 된다.

▲ 최경진 대구가톨릭대 교수
라디오 방송을 통해 울려 퍼지는 대통령의 정례담화가 사회적 소통을 위한 전략적 대안이라고 확신한다면 그것은 큰 오산이다. 적어도 현재 대한민국의 현실에서는 그렇다. 시민과 국민의 목소리를 수 십 번 듣고 난 후 한 번쯤 말씀하시는 자세가 중요하다. 그들이 진정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잘 듣고 갈파하며 직시해야 한다. 그것이 바로 진정한 소통이다.

그렇지 못할 때 시민과 국민의 귀에 일방적으로 전달되는 대통령의 라디오 마이크 소리는 공허한 메아리에 그칠 것이다. 우리사회가 현재 아파하고 힘들어하며 고통 받는 것이 무엇인지 대통령과 그 주변의 권력자들은 깨달아야 한다. 시민과 국민들이 우리사회와 우리나라가 필요로 하는 ‘희망과 대안’을 찾아 외롭고 먼 길을 떠나지 않기를 바랄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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