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만 원짜리 햄버거와 결식아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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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만 원짜리 햄버거와 결식아동
[경계에서] 최영기 독립PD협회장
  • 최영기 독립PD협회장
  • 승인 2009.10.27 09: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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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 생각 없이 햄버거라는 검색어로 웹 서핑을 하다가 18만 원짜리 매우 고급스러운 햄버거가 고급 호텔에서 고급 손님을 위해 판매된다는 오래된 기사를 접했다. 18만 원짜리 햄버거는 어떻게 생겼을까? 그런 햄버거를 사 먹는 사람이 있을까? 의구심은 들었지만 소비자가 있으니 상품을 내 놓았을 것이다.

▲ 경향신문 9월30일자 1면
요즈음 비교적 쉽게 먹을 수 있는 보통 햄버거는 3000원 정도다. 기사에서 설명하는 고급 햄버거의 내용물이 무엇인지 이해할 수 없지만 햄버거임은 틀림없다고 한다. 이렇게 보면, 소위 고급과 보통 햄버거의 가격을 비교해보면 60배의 차이가 생긴다.

비싼 햄버거는 시장형 자본주의의 단상이다. 철저한 경쟁 무대에서 사람들은 부를 축적하고 자신들의 능력에 걸맞은 정도의 소비를 한다. 비싼 햄버거를 먹을 수 있는 사람들은 시장의 경쟁에서 그런 능력을 얻어낸 사람들이다. 있는 자들의 풍성한 소비는 시장을 활성화해서 없는 사람들이 일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준다. 없는 자들이 보통의 햄버거를 먹을 수 있는 기회는 비싼 햄버거를 먹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에 마련될 수 있다고 한다. 경쟁에 따른 차이는 정당한 차이라는 주장은 큰 무리 없이 수용될 수 있는 사회적 철학이다.

역사를 통해 그렇지 못한 사회가 어떤 결과를 초래했는지 경험적으로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구 소련연방을 포함한 동구권의 사회주의 국가들이 대표적인 사례다. 누구도 자신의 노력에 합당한 보상이 없으면 자발적으로 최선을 다하지 않는다. 이런 측면에서 경쟁을 통해 발생하는 차별의 인정은 사회의 발전과 유지에 매우 중요한 요소임은 틀림없다.

통계청의 발표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계층 간 소득 격차는 국가 통계 작성 이후 최대로 벌어졌다. 상위 소득계층 20%와 하위 소득계층 20% 간의 소득 차이가 8.41에 이른다. 잘 사는 사람들이 못 사는 사람들에 비해 약 8.5배 정도의 소득을 얻고 있다는 것이다. 극심한 소득 격차는 사회 구성원들에게 사회가 정당하게 운영되지 않고 있다는 인식을 갖게 한다. 사회 운영의 정당성에 대한 의문이 증가하면 할수록 사회의 건강성이 위협받는다. ‘자본주의와 정의(Capitalism and Justice)’의 저자 존 이스비스터(John Isbister)는 미국이 건강한 사회가 되기 위해선 계층 간의 소득 격차가 8배 이내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우리 사회가 미국에 비해 상대적으로 소득이 낮고 사회적 평등성이 강하다는 점을 고려해보면, 이스비스터의 주장이 우리에게 더욱 절실하게 들린다.

▲ 최영기 독립PD
18만 원짜리 햄버거는 비싼 보석과는 다른 느낌을 준다. 보석은 없어도 보통 사람에겐 큰 문제가 생기지 않는 사치성 재화다. 반면 햄버거는 신분의 높고 낮음과 무관하게 끼니를 해결하는 생활에 기초한 기본적인 재화다. 초등학교가 방학을 하게 되면 점심을 굶을 수밖에 없는 결식아동이 30만 명을 넘는다고 한다. 한 끼의 비싼 햄버거는 60명의 결식아동에게 보통 햄버거를 마련해줄 수 있다.

음식과 같은 기본 재화는 경쟁성보다는 평등성을 바탕으로 제공되어야 건강한 사회가 만들어진다. 잘 살고 못 사는 차이와는 별개로 모든 사람은 비슷한 내용과 방식으로 먹는 문제를 해결하기 때문이다. 정부가 나서서 비싼 햄버거를 먹지 말라고 할 수는 없다. 그러나 적어도 먹는 것에 대해선 있는 사람들이 스스로 보통 사람들과 비슷하게 행동하는 것도 우리 사회를 건강한 사회로 만드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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