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일본의 와이드 쇼

|contsmark0|기묘한 광경이었다.
|contsmark1|제법 나이든 중년의 두 여자가 취재진으로 어수선한 기자회견장의 정리를 제안하고, 서둘러 의자며 책상들을 배치하기 시작한다. 칠판 앞쪽으로 기자회견을 할 사람들이 앉을 책상과 의자를 놓고, 그 앞으로 ㄷ자 모양으로 책상과 의자들을 빙둘러 늘어놓은 다음, 한 가운데 의자 두 개를 갖다 놓더니 딱하고 버티고 앉는다.
|contsmark2|
|contsmark3|
|contsmark4|나머지 취재진은 자연스레 그 두 여자를 중심으로 앉거나 혹은 서거나 하는 모양새가 되었다. 기자회견이 시작되었다.
|contsmark5|
|contsmark6|
|contsmark7|그런데, 또 기묘하게도 회견내내 질문을 한 사람은 이 두 여자뿐이었다. 회견이 끝날 무렵, 진행자가 “다른 분 질문 없습니까?”하고 묻자 추가질문을 한 사람이 딱 한 사람 있긴 했지만. “슬프고 힘드실텐데도 불구하고 오랜 시간 질문에 대답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더 이상 질문 없으면, 이 정도로 회견을 끝냅시다” 두 명 중 한 여자가 이렇게 말하고 회견의 끝을 선언하자 나머지 사람들은 말없이 일어서서 카메라 장비를 챙기고 메모지를 정리한다.
|contsmark8|
|contsmark9|
|contsmark10|지난 1월27일 심야, 토쿄의 신오쿠보역에서 선로에 떨어진 일본인 취객을 구하려다 숨진 한국인 유학생 이수현 씨 부모가 아들이 다니던 일본어학교에서 가진 기자회견장에서 본 광경이다.
|contsmark11|
|contsmark12|
|contsmark13|이 기자회견을 처음부터 끝까지 지휘하고 독점쇼를 한 두 여자는, 아나운서도 아니고 기자도 아니고 pd도 아닌, 아니 어쩌면 이들 모두의 성격을 합해놓은 듯한 일을 하는, 일본에서 일반적으로 ‘와이드쇼 리포터’로 불리는 사람들이었다.
|contsmark14|
|contsmark15|
|contsmark16|말 그대로 와이드쇼에서 주로 활약하는 이들 리포터들을 평소 tv화면에서 보면서 나는 여러번 감탄을 했었다. 방송사에서 말하는 걸 전문으로 하는 직종이야 단연 아나운서지만 와이드쇼 리포터들은 아나운서에게 뒤지지 않는 말솜씨에다가, 사건의 현장을 발로 뛰며 직접 취재하고 스스로 원고를 써서, 생방송에서 오랜 시간 동안 원고는 거의 보지도 않고 계속해서 말을 해낼 수 있는 능력까지 갖추고 있으니 감탄하지 않을 도리가 없는 것이다.
|contsmark17|
|contsmark18|
|contsmark19|알다시피, 도쿄에서 일어난 이수현 씨 사망 뉴스는 한일 양국 매스컴이 엄청나게 크게 다루었다. 단순한 교통사고가 아니라 여러 가지 요소를 포함한 뉴스였기 때문이다.
|contsmark20|
|contsmark21|
|contsmark22|그런데, 일본에서 이 뉴스를 누구보다도 깊이 취재해 보도한 사람들은 바로 다름아닌 각 방송사의 와이드쇼 리포터들이었다. 물론 정규 뉴스에서도 계속해서 다루었지만, 이수현 씨 사고 당시의 상황에서부터 문제점, 그리고 이 사건이 갖는 의미를 알기 쉽게 분석해서 자세하게 전달한 것은 대부분 와이드쇼였다.
|contsmark23|
|contsmark24|
|contsmark25|일본의 tv방송에서는 보통 보도국 사회부가 다루는 사건 가운데서 특히 사람들의 감정에 크게 작용하는, 이른바 선정성이 강한 내용의 사건현장에 반드시 와이드쇼 리포터들이 등장한다.
|contsmark26|
|contsmark27|
|contsmark28|현장에서 가끔 만나는 이들은 엄청나게 정력적이다. 이수현 씨 부모의 기자회견장에서 본 것처럼 의자의 배치, 마이크의 위치까지 지휘하면서, 각 신문 방송사의 사회부 기자들을 제치고 자신들 중심으로 일을 진행시킨다. 다른 취재진들은 이들의 박력에 눌려서 입을 다물고 가만히 있는 것이 습관이 되어있는 것처럼 보일 정도다.
|contsmark29|
|contsmark30|
|contsmark31|일본에서 와이드쇼 리포터들이 이렇게 기세를 올리고 있는데는 나름대로의 이유가 있다. 이들은 일반적으로 프리랜서나 프로덕션 소속으로 해당 프로그램과 계약을 하고 있는데, 대부분이 지방 방송사의 아나운서나 라디오 dj 출신으로 원래 말하는 것을 업으로 삼았던 사람들이거나 간혹 연예인이나 잡지 기자 가운데서 말솜씨와 취재능력을 인정받아 도쿄의 전국 네트워크 방송사에서 일할 수 있는 찬스를 잡은 사람들이다. 밑바닥 생활이 긴 만큼 대부분 별로 젊지도 않고 미남미녀도 아니다.
|contsmark32|
|contsmark33|
|contsmark34|일부러 내가 ‘와이드쇼 리포터’라고 와이드쇼라는 말을 덧붙여 강조하는데는 이유가 있는데, 그것은 이들이 조금 예쁘다고 해서 발탁되어 작가가 써준 원고를 그저 그대로 읽을 줄밖에 모르는 류의 리포터와는 완전히 구분되기 때문이다.
|contsmark35|
|contsmark36|
|contsmark37|처음부터 커다란 찬스가 주어져있는 방송사 직원도 아니고 용모가 빼어나지도 않은 이들 일본의 와이드쇼 리포터들은 스스로 취재하고 말하는 실력만으로 승부하고 있는 것이다.
|contsmark38|
|contsmark39|
|contsmark40|그런데, 아침과 낮에 편성되어 주부를 주된 시청자층으로 하고 있는 와이드쇼의 성격상 이들은 가벼운 연예기사를 많이 다루어야 하고 때로는 프라이버시 침해에 해당할 정도의 취재수법으로 비난을 받기도 하기 때문에 실력에 비해서는 그다지 지위가 높지 않다.
|contsmark41|
|contsmark42|
|contsmark43|일본에서 일반인들이 ‘와이드쇼 리포터’라고 부를 경우, 아나운서나 기자를 부를 때와는 다른 약간의 편견 섞인 뉘앙스를 느끼게 되는데, 그 이유는 연예인들의 꽁무니나 뒤따라 다니고, 다른 사람의 불행에 기생해서 밥을 벌어먹고 있다는 이미지가 있기 때문이다.
|contsmark44|
|contsmark45|
|contsmark46|하지만, 연예가 화제든 심각한 사회부 사건이든 하여간 pd와 카메라맨과 함께 직접 현장에 나가 취재하고 그것을 자기 말로 전달하는 이들의 능력에는 배워야 할 점이 적지 않다.
|contsmark47|
|contsmark48|
|contsmark49|일본의 와이드쇼를 딱딱한 보도 프로그램과 비교해서 저속하다고 하는 비판이 적지 않지만, 그 내용을 차치한다면, 한국의 정보프로그램들이 리포터를 활용한 제작을 할 때, 오랜 밑바닥 생활을 통해서 착실히 실력을 쌓은 프로다운 리포터들한테만 기회가 주어지는 일본의 와이드쇼는 하나의 좋은 모델이 될 수 있다고 여겨진다.
|contsmark50||contsmark51|
저작권자 © PD저널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모바일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