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인규, 대선특보 처음이 아니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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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기협 1987년 선거리포트 공개 … “집권당 정치특보 역할 충실”

김인규 KBS 사장은 취임사에서 “공정보도는 편파시비가 일어나기 쉬운 대통령선거나 총선 때 얼마나 공정하게 보도했느냐로 판가름 나는 경우가 많다”고 지적했다.

그렇다면 과거 정치부 기자 시절 김 사장의 선거 보도는 어땠을까? 1980년대 전두환 정권을 미화한 김인규 사장의 리포트를 연이어 공개한  KBS기자협회는 2일 1987년 대선 보도와 1990년 3당 합당 당시 리포트를 마지막으로 선보였다.

▲ 1987년 12월 15일 KBS 9시뉴스 ⓒKBS기협
첫 번째는 1987년 12월 15일, 대선 하루 전 보도된 리포트다. 6월 민주항쟁의 결실로 직선제가 실시됐지만 야권은 후보 단일화에 실패했고, 결국 선거는 노태우·김영삼·김대중의 3파전으로 치닫는다. 이에 집권당인 민정당은 ‘정치 안정’이라는 구호로 유권자를 호도하고, 영·호남의 지역감정 구도를 고착시키기 위한 전략을 펴고 있던 상황.

김인규 기자는 “노태우 후보는 대구·경북·강원·충북·제주, 김영삼 후보는 경남권, 김대중 후보는 호남권의 절대 우세를 확신하고 있다”며 “따라서 상대 후보의 지역에서 2위권을 확보하느냐가 중요하며, 이러한 점에서 민정당은 전국적인 조직과 안정 희구세력을 바탕으로 한 고른 득표로 어느 후보보다 유리하다고 보고 있다”고 보도했다. 

또 그는 리포트의 끝 부분에 “어느 선거 때보다 지역별 투표성향이 강하게 나타날 것으로 보인다”며 ‘지역감정’ 프레임을 다시 한 번 환기시켰다.

KBS기자협회는 “옛날 뉴스를 보다보니까 김인규 씨는 2007년 선거 때만 대선특보를 한 게 아니라, 정치부 시절부터 집권당의 정치특보 역할을 충실하게 해 왔다”며 “‘평생 특보’라고 부를 만하다. 그럼 이제 우리 서로 잘하는 일을 하자. 청와대 가서 정무수석하고 금배지도 다시라. 대신 ‘KBS의 독립을 지키러 왔다’는 소리는 그만하라”고 비판했다.

기협은 1990년 야권에 정국주도권을 빼앗긴 민정당이 민주당, 공화당과 손을 잡고 민자당을 탄생시킨 ‘3당 합당’에 대한 김인규 기자의 리포트도 공개했다.

KBS기협은 “3당 야합은 민정당이 유권자의 뜻을 완전히 뒤집은 희대의 꼼수였지만, 김인규 기자는 이를 ‘헌정사의 최대 변혁이고, 정치적 안정성에 국정을 효율적으로 이끌어가겠다는 의지의 표명’이라고 보도했다”며 “민자당 사내방송에서나 할 수 있는 애정 어린 훈수두기는 이 리포트의 백미”라고 꼬집었다.

다음은 리포트 전문이다.

리포트 전문

1. 1987년 12월 15일 대선 하루 전

-앵커 : 투표시각을 열시간 정도 앞두고 국민들이 가장 궁금하게 생각하는 것은 누가 대통령이 되느냐는 것입니다. 물론 지금으로서는 아무도 모릅니다. 김인규 기자가 한 달동안의 선거전을 토대로 주요 후보들의 득표전 상황을 보도해드립니다.

-리포트(김인규) : 선거 종반에서 사실상 3파전으로 압축된 이른바 1로 2김의 세 후보 가운데 과연 누가 승리할 것인가는 지금으로부터 서너 시간 뒤인 모레 새벽이면 그 윤곽이 드러날 것입니다. 그러나 이 시각까지도 민정 민주 평민 3당은 비록 투개표과정의 공정성이라는 단서를 달고 있지만 나름대로 지역별 득표분석을 통해 승리를 장담하고 있습니다. 각당은 자기당 표가 850만에서 900만표를 얻어 당선이 확실시된다고 보고 있는 것입니다. 전체 유권자 2587만명 중 90% 이상의 높은 투표율이 예상되기 때문에 유효 투표수를 2300만 표로 볼 때 40% 선인 900만 표는 당선 안정권이고, 35% 선인 850만 표를 얻으면 일단 당선권에 들어갈 수 있다는 것이 정가의 공통된 분석이기 때문입니다.

3당의 전국 지역별 분석을 종합해보면 노태우 후보는 대구와 경북 강원 충북 제주에서, 김영삼 후보는 부산을 중심으로한 경남권에서 김대중 후보는 광주를 중심으로한 호남권에서 각각 득표율 50%에서 70% 이상의 절대 우세를 확신하고 있습니다. 이 같은 후보별 절대 우세시에는 유권자 수로 볼 때 노태우 후보지역이 543만 명, 김영삼 후보지역이 448만 명, 김대중 후보 지역이 348만 명의 순으로 예상 득표율 면에서는 김대중 후보지역이 상대적으로 높기 때문에 서로 절대 우세지역에서 기대하는 득표수에는 큰 차이가 없습니다. 따라서 오히려 상대 후보의 지역에서 2위권을 확보하고 나아가 3위와의 격차를 얼마나 내느냐가 중요하며 이러한 점에서 민정당은 전국적인 조직과 안정 희구세력을 바탕으로한 고른 득표로 어느 후보보다 유리하다고 보고 있는 것입니다. 반면 경합지역으로 볼 수 있는 서울과 경인지역 충남 가운데 전체 유권자의 41.7%를 차지하고 있으면서도 어느 특정 후보가 직접적인 연고가 없는 수도권 표밭을 놓고 노태우 김영삼 김대중 후보가 40% 득표로 1위를 주장하고 있어 수도권의 개표결과가 주목되고 있습니다. 이같이 어느 선거때보다 지역별 투표성향이 강하게 나타날 것으로 보여 내일 밤 개표가 시작돼 시도별 득표수가 드러나면 전체적인 선거결과의 윤곽이 쉽게 잡힐 것으로 전망됩니다.

2. 1990년 1월 22일 3당 야합

<앵커 박성범>  오늘의 합당발표로 앞으로의 정국운영은 여소야대가 아닌 거대여당이 정국을 주도하는 정치구도가 펼쳐지게 됐습니다. 그러나 앞으로 정국의 향방은 3당 통합을 반대하는 세력이 어떻게 세력을 규합해서 대응해 나오느냐에 따라서 많은 변수를 낳게 됩니다. 그리고 합당이후 당의 문제와 요직 안배 문제, 지구당 정리문제등 중요한 정국의 변수가 남게 됩니다. 3당 이후의 정국 전망을 김인규 기자가 보도해드립니다.

<리포트(김인규)> 우리 나라 헌정사상 처음으로 겪는 여야 합당이라는 일반인들의 상상을 초월한 엄청난 대변혁이 이처럼 갑작스럽게 이뤄진 배경은 무엇이며, 이같은 정치적 대변혁을 국민들은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는가. 이에 대한 큰 흐름이 앞으로의 정국 향방을 가름하는 바로미터가 될 것입니다. 3당 통합에 나선 민정 민주 공화당 등 3당 총재는 오늘 공동 발표문을 통해 온건 중도 민주세력이라는 색깔이 같은 사람이 뭉쳐서 남북통일을 주도하고 그리고 경제적 난국을 극복하며 국가 발전에 걸맞는 정치체제를 창출하겠다고 말함으로써 신당 창당 이념을 요약했습니다. 다시 말해서 현재와 같은 여소야대의 4당 구조는 이같은 국가적 과제를 풀어갈 수 없다는 절박한 공동인식 아래 3당이 합쳐서 원내의석 3분의 2의 거대 여당을 만들어 정치적 안정성에 국정을 효율적으로 이끌어가겠다는 의지의 표명으로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다음달까지 합당절차를 마치는데까지는 어려움이 가로놓여있습니다. 당 내부적으로는 특히 민주당의 경우 야권통합파 의원들의 이탈을 최소화해야 하고, 3당 공히 원외지구당 위원장들과 사무처 요원들의 단합을 필요로 하고 있다. 더욱이 신당 외부적으로 볼 때는 평민당과 외부세력들의 장내외 반발과 투쟁이 가열될 것으로 예상되고 있습니다. 이 때문에 일부에서는 정치적 안정을 꾀하려는 이번 정계 대변혁이 오히려 정치적 사회적 불안정을 초래하지 않을까 우려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만큼 신당 추진세력은 굳건한 내부 결속을 기반으로 해서 평민당과 재야세력에 대한 보다 적극적인 대화와 보다 폭넓은 정치력을 발휘하면서 신당창당 작업과 함께 6월 임시국회에서 주요 법안 처리와 거국 내각제 구성, 그리고 지방자치제 선거 실시와 내각제 개헌 추진 등 일련의 정치일정을 쉴틈없이 밟아 나가는 장내 정치의 가속화를 통해 장외 투쟁의 충격을 최대한 흡수해 나감으로써 어느 때보다 빠른 속도의 정국 흐름이 예상되고 있습니다.

<앵커 박성범> 3당의 통합이 발표되는 날 전국은 매우 춥고 눈길은 매우 미끄러운 날이었습니다. 일요일부터 3당 합당설이 보도되면서 많은 국민들은 새로 탄생될 통합정당의 성격과 정국에 미칠 영향 등에 대해 관심을 나타냈습니다. 정치혁명이라고도 볼 수 있는 오늘의 합당 발표에 대해 국민들이 보인 반응은 일단은 놀라움과 기대가 섞인 것이었습니다.<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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