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운천 “쇠고기협상, 사전예방원칙 지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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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D수첩’ 공판 증인 출석…민동석 “공직자 매도, 나쁜 사람들”

MBC 〈PD수첩〉 제작진의 정운천 전 농림수산식품부 장관과 민동석 전 농업통상정책관에 대한 명예훼손 사건에 관한 속행공판이 지난 2일 서울중앙지법 형사13단독 문성관 판사 심리로 열렸다. 최종 증인신문으로 진행된 공판에는 고소인인 정운천 전 장관과 민동석 전 정책관이 증인 신분으로 출석했다. 뜨거운 관심을 증명하듯 이날 법정에는 농림부 직원으로 추정되는 십 수 명과 취재진 등이 꽉 들어차 설 자리를 찾기도 힘들 정도였다.

이날 〈PD수첩〉 제작진측 변호인은 4·18 한미 쇠고기 협상이 졸속적이고, 사전예방원칙을 준수하지 않았으며, 국민의 건강권을 무시한 협상이었다는 점을 집중적으로 추궁했다. 반면 검찰 측은 〈PD수첩〉이 조작·선동방송으로 정 전 장관 등의 명예를 심각하게 훼손했다며 〈PD수첩〉과 기소 내용인 명예훼손과의 인과관계를 증명하기 위해 애쓰는 기색이었다.

민동석 “바위산에서 뛰어내리고 싶었다”

정운천 전 장관은 “〈PD수첩〉 방송 이후 사형시키자 느니, 국민의 건강과 생명을 팔아먹은 매국노라며 장관실로 수 없이 폭력 전화가 걸려 와 여직원들이 울었다. 시위대가 집까지 찾아와 매국노라고 비난하는 등 밤낮, 안팎으로 고통을 당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지난해 4월 29일 〈PD수첩〉 방송 전에는 비난을 받지 않았냐”는 변호인 신문에 “오히려 감사하다, 수고했다는 인사를 받았다”고 답했다. 그러나 변호인은 “앞서 4월 22일에도 수백, 수천 건의 욕이 올라왔고, 협상이 타결되자마자 청와대 게시판 등에도 말이 안 된다는 글이 엄청나게 올라왔다”고 지적했다.

민 전 정책관은 〈PD수첩〉 제작진이 자신의 명예를 어떻게 훼손했냐는 검찰 측 질문에 “절대적으로 안전한 미국산 쇠고기를 위험한 독극물처럼 조작·변조·왜곡했다. 이건 언론도, 방송도 아니다. 선동의 주체다”라며 “협상 대표로서 독극물을 수입해 국민을 위험에 빠뜨린 것처럼 매도함으로써 나는 물론, 가족과 공직자 아버지를 자랑스럽게 생각해온 아들에게 씻을 수 없는 불명예를 줬다”고 토로했다.

그는 이내 울먹이며 “바위산 위에서 뛰어내리고 싶다고 생각한 게 한 두 번이 아니”라며 피고인석에 앉은 〈PD수첩〉 제작진을 겨냥, “방송으로 국민을 속이고 선동하고, 공직자를 매도하고. 당신들 정말 나쁜 사람이다”라고 말했다.

정운천 전 장관도 “얼마 전 ‘박비향’이라는 저서를 발간할 즈음 MBC측에 고소를 취하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고 하던데, 처벌 의사가 있나”라는 검찰 측 신문에서 “법과 원칙에 따라야 한다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며 “방송의 자유와 아울러 책임이란 수레바퀴가 민주주의를 끌고 가야 하는데, 지금은 책임이란 수레바퀴가 고장 났다. 국가가 바로잡아야 한다”고 처벌 희망 의사를 밝혔다.

민동석 “전문가회의 견해, 과학적 근거 없다”

이날 공판의 하이라이트는 민동석 전 정책관에 대한 증인신문이었다. 당초 1시간 30분 정도로 예정된 민 전 정책관에 대한 신문은 예정 시간을 2배 이상 넘겨 3시간 45분 만에 끝났다. 이 때문에 나머지 증인신문이 모두 뒤로 밀리면서 이날 예정됐던 〈KBS스페셜〉 ‘얼굴 없는 공포, 광우병’의 이강택 PD에 대한 증인신문은 다음 공판으로 미뤄졌다.

민 전 정책관에 대해선 변호인 신문만 3시간가량 진행됐을 정도로 열띤 신경전을 보였다. 민 전 정책관은 신문이 진행되는 내내 주로 “질문에 너무 의도가 있다”, “기억력 테스트 하는 거냐”며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였고, 이에 변호인도 지지 않고 “지금 국어 공부하는 거냐. 묻는 말에만 답하라”고 맞섰다. 결국 민 전 정책관은 재판장으로부터 “변호인이 묻는 내용에만 답하라”는 지적을 몇 번이나 받아야 했다.

민 전 정책관은 이날 “국제수역사무국(OIE) 기준이 가장 과학적”이라고 일관되게 주장했다. 그러면서 그는 전문가회의에서 SRM(특정위험물질) 7개의 수입을 금지해야 한다는 견해를 낸데 대해선 “과학적 근거가 없다”고 일축했다. 이에 변호인단이 “그럼 과학적 근거가 뭐냐”고 묻자 그는 “OIE에서 검증된 게 가장 과학적인 근거라 할 수 있다”고 답했다.

그러나 이날 변호인측 증인으로 출석한 송기호 국제통상전문 변호사는 “OIE 기준은 권고사항일 뿐, 각 나라가 OIE 기준에 따라 협상하는 것은 아니”라며 “WTO 회원국은 OIE보다 더 엄격한 조치를 취할 수 있는 권리를 보장 받고 있다. 그냥 OIE 기준대로 한다면 수입 위험 분석을 할 필요도 없다”고 지적했다.

민 전 정책관은 또 창자의 위험성에 관한 문제제기에도 불구하고 “SRM이 아니기 때문에” 미국과의 협상 테이블에서 이를 언급하지 않았다고 말했고 “OIE에선 회원국의 문화와 관습 등을 고려하도록 하고 있다”는 지적에 대해서도 “지엽적인 것”이라고 일축하기도 했다.

또 지난해 4월 정부관계자가 미국에서 인간광우병 의심 환자가 발생했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있었고, 그 환자가 바로 아레사 빈슨이었을 것이라고 지적하자 민 전 정책관은 “인간광우병이 발생했다고 해서 광우병 소가 우리 식탁에 들어올 순 없다”고 말했다. 이에 “미국에서 인간광우병 환자가 발생했더라도 협상에 영향을 줄 수 없었다는 뜻이냐”고 변호인이 묻자 그는 “그렇다”고 시인했다.

이어 변호인이 “아레사 빈슨이 인간광우병 확진을 받았다면 여러 사항을 고려해 협상했어야 한다. 그렇다면 확진을 받을 때까지 기다려서 협상했어야 하는 것 아닌가. 국민들의 생각이 그렇다”고 지적하자 그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며 “선동 때문에 그런 거다. 〈PD수첩〉이 모든 불안을 야기했다”고 책임을 돌렸다.

전문가와의 ‘깊은 대화’가 과학적 근거?

정운천 전 장관의 입장도 민 전 정책관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정 전 장관은 “4·18 쇠고기 협상이 불확실성을 감안한 사전예방원칙이 적용된 사례로 보나”라는 변호인의 추궁에 “인큐베이터처럼 100% 안전해야 한다는 수준이 아니라면 완전히 (준수)했다”고 자평했다.

그는 또 “이영순 서울대 인수공통질병연구소장과 깊은 대화를 나눴다”는 점을 바탕으로 “광우병은 5~10년 안에 사라진다고 한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과학적 근거’를 추궁하자 그는 “동물성 사료를 금지한 후 광우병 소 발생 건수가 급속도로 떨어졌다는 사실에서 알 수 있다”며 “권위 있는 이영순 박사와의 대화에서 얻은 판단”이라고 거듭 강조했다. “이영순 박사의 논문이라도 봤나”라는 변호인 추궁에는 “나에게 확실히 얘기한 것보다 중요한 게 어디 있나”라고 답했다.

또한 그는 미국에서 실제로 사료강화조치를 어떻게 시행하고 있는지 등에 대해서 “모른다” “장관이 그런 세세한 것까지 알 수 없다” “실무자가 알고 있을 것”이라는 식으로 답변을 피하기도 했다. 

피고인 신문 '한다' VS. '안 한다'

한편 검찰은 이날 증인으로 출석한 송기호 변호사가 이춘근 PD에게 보낸, vCJD가 CJD의 일종이라는 내용의 이메일을 증거로 제출하기도 했다.

이에 대해 송 변호사는 “대단히 유감스럽게도 나름대로 가지고 있는 법적 지식을 통해 언론인에게 보낸, 그리고 취재원으로부터 받은 메일이 다 공개돼 언론인에게 불리하게 작용된다면 언론에 대한 자유는 없다고 생각한다”고 재판장에게 호소했다.

이강택 PD를 제외한 모든 증인신문을 마친 가운데, 피고인 신문 진행 여부를 두고 검찰과 변호인의 입장이 팽팽히 맞서기도 했다.

변호인은 “적시된 공소 사실은 이미 방송된 내용에 있는 것이고, 테이프 등에 기록돼 있으므로 피고인 신문은 필요 없다”며 “프로그램 내용으로 유추한 개인의 세계관은 직접 판단의 대상이 아니고, 도축 시스템이란 공익적 목적이 있으므로 검사 신문에 대해 진술을 거부하고, 형평성을 위해 변호인 신문도 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검찰 측은 피고인이 일체 진술거부권을 행사하더라도 신문을 진행하겠다고 맞섰다.

〈PD수첩〉 사건의 결심공판은 오는 21일 오후 2시 서울중앙지법 519호 법정에서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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