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영방송 독립성 사수’ KBS 새 노조 뜨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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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업 접힌 강동구 집행부, 공정방송 제도적 장치 마련 가능?

▲KBS 총파업투표 왜 부결됐나= 현 노조에 대한 불신 때문이라는 지적이 높다. KBS의 한 관계자는 “(반대 또는 무효표를 던진) 1500여명의 조합원이 언론특보 사장을 용인하겠다는 의미는 아니”라며 “집행부의 모호한 거취는 이미 조합원의 신뢰를 잃었다”고 비판했다.

경영직군의 한 조합원은 “그동안 노조가 진행한 낙하산 사장 반대투쟁에 대한 조합원들의 평가가 반영된 결과”라며 “노조가 쓸 수 있는 가장 강력한 카드인 파업 투쟁이 부결됐으니, 집행부가 책임지고 총사퇴해야할 것”이라고 말했다.

▲ 김인규 퇴진을 위한 KBS노조의 총파업 투표가 재적 인원 과반수 이상의 찬성을 얻지 못해 부결됐다. 사진은 2일 저녁 개표 모습. ⓒKBS노동조합
KBS내부의 보수적인 정서가 반영된 결과라는 지적도 있다. 한 중견PD는 “공영방송 사수보다 구조조정 등 생존에 대한 위기의식이 팽배해 있다”며 “노조 지도부에 대한 확신이 없기 때문에 싸워 이기는 것보다 새 사장에게 붙는 게 낫겠다고 판단한 것 같다”고 말했다.

노조의 한 중앙위원도 “김인규 씨가 구조조정 등을 강하게 밀고 나오면서 조합원들 사이에 막연히 불안심리가 있었던 것이 사실”이라며 “이길 수 있다는 확신이 있다면 싸울 텐데 그렇지 않으니 타협하는 쪽으로 흐른 것 같다”고 밝혔다.

‘이병순 체제’에 대한 염증에서 원인을 찾는 이들도 있다. 한 PD는 “이병순 전 사장 재임기간 동안 하루도 조용할 날이 없었기 때문에 구성원들의 피로감이 누적돼있다”며 “김인규 씨가 아무리 나빠도 그보다는 나을 것이라는 반사이익이 작용한 것 같다”고 지적했다.

▲KBS노조, 둘로 갈라설까=기자·PD 조합원들의 노조 탈퇴가 처음 나온 얘기는 아니다. 지난 11대 노조(위원장 박승규)와 그를 계승한 12대 노조(위원장 강동구) 임기 내내 기자·PD들은 집행부와 대립각을 세우며 비판적 입장을 고수해왔다.

현 노조는 미디어법 반대 투쟁이나 이병순 사장 반대투쟁 등에 집행부가 미온적인 입장을 보여, 기자·PD 조합원들의 비판 여론에 직면했다. 김인규 사장 선임에 대해서는 “낙하산 사장을 반대한다”며 한 목소리를 냈지만, 파업 투표가 부결되자 집행부에 대한 책임 공방 끝에 결국 노조가 둘로 쪼개질 위기에 처했다.

기자·PD 조합원들은 9일 사내게시판에 제안글을 올려 별도 노조 설립의 필요성을 공론화하고, 다양한 직종의 참여를 독려할 계획이다. 이어 조만간 준비위원회를 꾸려 전국언론노조 KBS본부 또는 지부 설립에 착수할 전망이다. 한 PD는 “산별 노조 가입은 복수노조 금지 에 저촉되지 않는다”며 법적 문제는 없다고 설명했다.

새 노조는 방송의 공정성·독립성·자율성을 최우선으로 보도·프로그램 감시를 통해 김인규 사장 퇴진 투쟁을 이어간다는 방침이다. 노조 탈퇴를 결심한 기자·PD들은 “공정방송의 가치를 최우선으로 추구하지 않는 현 노조와는 더 이상 같이 할 수 없다”고 입을 모았다.

성재호 노조 12구역(보도본부) 중앙위원은 “현 노조의 투쟁 방식으로는 보도의 공정성·자율성을 지킬 수 없다”며 “뜻을 함께하는 조합원들과 새로운 노조를 만들어 방송의 독립성 수호를 위해 싸울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민일홍 5구역(라디오) 중앙위원은 “새 노조와 현 노조 집행부는 뜻이 다를 뿐 적대관계가 되는 것은 아니”라며 “우리는 공영방송사 노조 본연의 모습을 찾아가는 것일 뿐”이라고 밝혔다.

▲강동구 집행부의 향방은=KBS노조는 사측과 방송의 공정성을 위한 안을 마련하는데 힘을 쏟고 있다. 이것이 마무리 되는대로 대의원대회를 열어 신임여부를 묻겠다는 방침이다. 9일로 10일째 단식농성을 이어가고 있는 강동구 위원장은 그동안 두 번이나 응급실에 실려 가는 등 건강상태가 심각한 수준인 것으로 알려졌다.

따라서 노조는 강 위원장의 건강 상태 등을 고려해 대의원대회를 최대한 서둘러 연다는 방침이다. 최성원 노조 공정방송실장은 “공정방송을 위한 제도적 장치 마련을 위해 여러 경로로 사측을 압박하고 있다”며 “공방위 경험 등을 토대로 방송의 공정성을 담보할 수 있는 모든 요구들을 담아낼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총파업’이라는 마지막 카드를 빼앗긴 노조가 사측을 상대로 어느 정도 수준의 협상을 이끌어낼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기자·PD 중앙위원들은 지난 4일 성명에서 “파업이라는 무기를 잃어버린 이른바 ‘식물 집행부’를 계속 끌고 나가는 것이 가장 유리하다는 것은 사측도 알고 있다”고 지적했다.

사내게시판에 노조 탈퇴를 공개 선언한 강릉방송국 강명욱 PD도 “사장과 협상을 해서 결과물로 신임을 묻겠다는 결정을 보면서 강동구 집행부의 ‘무뇌아적’ 수준에 절망을 느낀다”며 “진퇴 위기에 몰린 집행부가 사측과 협상을 하겠다는 건 ‘김인규에게 구걸을 하겠다’는 의미와 다름없다”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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