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도에 KBS 파업 부결 후폭풍
상태바
여의도에 KBS 파업 부결 후폭풍
[이희용의 주간미디어리뷰]
  • 이희용 연합뉴스 미디어전략팀장
  • 승인 2009.12.11 09:3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KBS 노동조합이 내우외환에 시달리며 쪼개질 위기에 놓였습니다. 집행부는 전원 해직과 구속을 각오하고 낙하산 사장을 막아내겠다고 공언했는데, 조합원들이 최후의 무기인 파업을 결행하는 데 반대했기 때문입니다. 11월 26일부터 12월 2일까지 치러진 투표에서 노조 집행부가 내건 총파업안은 84.5%의 투표율에 57%의 찬성률을 기록했으나 재적 조합원 대비 48.18%로 과반수에 못 미쳐 부결됐습니다.

이에 따라 김인규 신임 사장이 멀게는 1990년 청와대 대변인 출신의 서기원 KBS 사장이나 가깝게는 지난해 이명박 후보 특보 출신의 구본홍 YTN 사장처럼 깊은 상처를 입고 어렵사리 자리를 잡거나, 아니면 2003년 노무현 후보 고문이었던 서동구 사장처럼 며칠 만에 물러날지도 모른다는 예상은 보기 좋게 깨졌지요.

KBS 노조가 김인규 사장 후보를 일찌감치 부적격 후보로 낙인찍은 것은 그가 대선 당시 이명박 후보 캠프의 방송전략실장을 맡았고 당선 직후에도 인수위의 언론보좌역으로 활동해 공영방송 KBS의 신뢰성과 공정성을 심각하게 위협할 것이라고 봤기 때문입니다. 언론노조와 언론관련 시민단체 등도 이에 동조했지요.

▲ 김인규 퇴진을 위한 KBS노조의 총파업 투표가 재적 인원 과반수 이상의 찬성을 얻지 못해 부결됐다. 사진은 지난 2일 저녁 개표 모습. ⓒKBS노동조합
그러나 파업안이 부결되면서 노조는 협상력이든 투쟁력이든 힘을 잃고 말았고, 이들이 나서지 않는 터에 외부 단체들이 할 수 있는 일은 별로 없지요. 지난해 여름이라면 이른바 촛불 시민들이라도 달려와 밤을 밝혔겠지만 이제는 그마저도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3명의 유력 후보를 모두 반대한다고 선언했던 노조가 유독 김인규 후보에 대해서만 콕 찍어 총파업을 불사하겠다고 거듭 경고했음에도 불구하고 KBS 이사회는 11월 19일 김인규 후보를 선임해 폭풍전야의 위기를 예고했지요. 그것도 이병순 현 KBS 사장과 팽팽한 이파전 구도를 이룰 것이라는 전망과 달리 2차 투표에서 6대 1로 김 후보를 택했거든요. 노조의 경고가 엄포로 끝날 줄 미리 알았기 때문일까요?(김 사장은 나중에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파업 찬반투표가 가결될 줄 알았다고 털어놓았습니다)

노조 집행부는 4일 대국민 사과문을 통해 "예상치 못한 결과가 나와 공정한 방송을 바라는 대다수 국민들을 실망시킨 것에 대해 국민 여러분께 머리 숙여 깊이 사과드린다"면서 "정치 파업에 대한 신중한 접근을 요구하는 공영방송 구성원의 표심이 반영된 것이지 MB 특보를 사장으로 인정한 것은 아닌 점을 국민들에게 말씀드린다"고 밝혔습니다.

집행부 스스로 '정치 파업'임을 선언한 대목이 눈에 띕니다. YTN 해직자들에 대한 1심 판결에서 법원이 방송 공정성을 위한 노조 투쟁의 정당성을 인정하긴 했지만, 사장 선임을 반대하는 파업 자체는 통상적인 노조의 쟁의대상에서 벗어나 불법으로 규정될 소지가 크긴 하지요. 철도노조가 파업 과정에서 정부와 보수언론으로부터 뭇매를 맞는 모습을 보고 부담감을 느꼈을 가능성도 크지요(반대로 철도노조는 KBS의 파업 부결에 영향을 받아 파업을 철회했다는 말도 들리더군요).

노조 강경파를 포함해 언론운동진영에서는 이를 노조 집행부에 대한 불신의 결과로 해석하고 있습니다. 정연주 사장 해임과 이병순 사장 취임, 그리고 이 과정에서 벌어진 조합원 징계와 프로그램 개편, 미디어법 개정 등에 대처하는 방식이 미덥지 못했기 때문에 투표에 불참했거나 반대표를 던졌다는 겁니다.

그러나 이는 어디까지나 파업의 필요성을 인정한다는 전제에서 나온 해석이지요. 혹자는 파업에 찬성한 조합원은 김 사장을 반대하는 것이고, 파업에 반대한 조합원은 노조 집행부를 불신한 것이라고 해석하기도 하더군요. 그렇다면 애초부터 김 사장의 취임에 찬성하는 조합원은 거의 없다는 셈이 되는데 과연 그럴까요?

낙하산 사장의 기준은 과연 무엇인가?

김 사장은 2006년 정연주 사장의 재임 직전부터 조합원 설문조사에서 차기 사장으로 가장 적합한 인물로 꼽혔고 이사회 표결에서도 한나라당 성향 이사들로부터 지지를 얻었다고 합니다. 지난해 특보 논란이 불거진 이후에도 KBS 안팎에서는 그에 대한 '러브 콜'이 끊이지 않았지요.

원 포인트 릴리프 투수로 불렸던 이병순 사장이 확신을 주지 못했거나 KBS 노조의 투쟁력이 강고하지 못했던 탓도 있지만, 그는 특보라는 치명적 결함에도 불구하고 공채 1기라는 상징성에 경기고-서울대 정치학과-정치부장-워싱턴특파원-보도국장 등으로 이어지는 화려한 학력과 경력, 대통령을 비롯한 여권의 두터운 신임, 청와대 수석 제의를 거절할 정도로 굳은 KBS 사장을 향한 의지 등이 갖춰진 덕분에 사장의 꿈을 이룰 수 있었다고 봐야 할 것 같습니다.

▲ 지난달 24일 열린 취임식에서 경영계획을 밝히고 있는 김인규 사장 ⓒKBS
2003년 서동구 사장이 취임했을 당시 KBS 노조는 대선 후보의 언론고문을 맡았다는 이유로 거세게 반발했고, 당시 보수신문들도 "특보를 맡았다는 이유만으로도 공영방송의 사장이 될 수 없다"고 주장했지요.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이제는 언론 유관기관이라면 몰라도 적어도 공정성이 중요시되는 언론사에는 대선후보 특보가 사장으로 취임할 수 없는 관행이 만들어지는 모양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이 점을 의식했기 때문인지 김인규 사장도 처음에는 KBS 사장을 염두에 두고 캠프 합류를 거절했던 것 아니겠습니까. 나중에 강권에 못 이겨 방송전문가로서 조언을 했다고 말했지만, 김 사장의 말대로 캠프 합류는 여의도행의 발목을 잡았습니다. 스카이라이프, 아리랑TV, 한국방송광고공사(KOBACO) 등에 이어 구본홍 씨가 YTN 사장에 취임하자 노조의 거센 반발에 부딪혔고, 정연주 사장 퇴임 이후 촛불 시민들까지 KBS로 달려와 낙하산 사장의 임명 시도에 제동을 걸었지요. 더욱이 청와대 대책모임 논란이 불거지자 김인규 사장은 지난해 8월 사장 응모 포기를 선언하기에 이르렀습니다.

1년여 만에 사정은 크게 달라졌습니다. 그 사이에 임은순 신문유통원장이나 최규철 뉴스통신진흥회 이사장, 차용규 OBS 사장 등 특보 출신 기관장의 릴레이 인사가 이어졌지만 노조나 시민단체의 반발 수위나 주목도가 크게 떨어진 것은 물론 이병순 사장에 대한 안팎의 평가가 그리 호의적이지 않은 것으로 나타나면서 특급 구원투수로서 김인규 사장의 존재가 부각된 것이지요. 

여야는 낙하산 인사나 코드 인사를 두고 극단적으로 견해가 엇갈립니다. 여권은 특보 경력이나 청와대의 낙점 여부를 떠나 방송 전문성을 중요시하는 데 비해 야권은 그 반대지요.

여권의 주장에 따르면 박권상, 서동구, 정연주 전 KBS 사장은 방송 경험이 전무하다시피한 신문 출신 언론인이어서 낙하산 사장, 관제 사장이라 불리는 것이 마땅하지만 김인규 사장은 그렇지 않다는 것입니다.

김 사장도 지난해부터 "잠시 정치권에 몸담기는 했지만 KBS에 30년 이상 근무했는데 내가 왜 낙하산이냐"고 반문해왔고, 11월 24일 취임식에서도 "일부에서는 내가 KBS를 장악하러 왔다고 주장하지만 정치권력과 자본권력으로부터 KBS를 지키기 위해서 왔다"고 힘주어 말했지요.

그러나 야권에서는 "대통령 만들기에 나섰던 사람이 어떻게 정치권력의 독립을 말할 수 있느냐"며 불쾌하다는 반응입니다. KBS 내부에서도 "앞으로 KBS 사장이 되려는 사람은 유력 대선후보의 캠프를 기웃거리지 않겠느냐"는 푸념이 나오고 있고, 김인규 사장이 정치부 기자 시절 5공 독재정권을 찬양하는 해바라기 성향을 보였다며 진정성을 의심하기도 합니다.

낙하산 사장의 명확한 기준이 무엇인지는 알 수 없으나 해당 기관의 경력 여부가 내부의 투쟁 수위에 영향을 미치는 것은 사실이지요. 이병순 사장 취임 당시에도 청부 사장, 관제 사장 논란이 일기는 했지만 그가 KBS 출신이라는 점이 노조의 반발을 누그러뜨린 측면이 있습니다. 만일 구본홍 전 YTN 사장이 YTN에 근무한 경험이 있거나 적어도 YTN 경력기자의 주류를 형성하고 있는 KBS 출신이었다면 상황이 다소 달라질 수도 있었겠지요.

KBS 노조 분열되면 사장 입지 강화될까?

KBS 노조는 통례와 달리 즉각 집립적 사장 선임구조를 제도화하고 공정방송에 대한 약속을 사장으로부터 받아낸 뒤 대의원들에게 신임을 묻겠다"고 밝혔습니다. 당장 집행부가 사퇴할 경우 지도부 공백과 그에 따른 혼란이 불가피하고 정치권으로부터의 독립과 공정방송을 위한 투쟁이 노조를 중심으로 이뤄져야 한다는 현실론에 기반을 둔 것으로 풀이됩니다.

그러나 싸늘한 시선을 보내는 조합원들이 적지 않습니다. "강동구 위원장의 진정성을 믿지 못하겠다"거나 "파업이라는 무기를 빼앗긴 마당에 사측과 협상을 구걸해 무엇을 얻어낼 수 있겠느냐"는 반응이 터져 나오고 있는 것이지요. 강 위원장의 결의에 찬 단식에도 불구하고 "5천여 조합원과 함께 새로운 결의를 다져 정권의 방송장악 시도에 맞서 싸우겠다"는 의지와는 반대로 분열이 가속화되고 있습니다.

기자와 PD 조합원들은 7일과 8일 잇따라 총회를 열어 KBS 노조를 탈퇴한 뒤 산별 전국언론노동조합에 가입하기로 결의했습니다. 이와는 별개로 노조 대의원 등을 사퇴하겠다는 선언도 잇따르고 있지요. 기자와 PD 조합원들은 이번 주까지 KBS 노조 사퇴서와 언론노조 가입서를 받아 내주 초 새 노조를 설립할 계획이라네요. 그렇게 되면 간부직 노조와 함께 산별 언론노조 지부까지 3개의 노조가 생겨나는 겁니다. 반면 경영협회 등 10개 직능단체는 8일 공동성명을 내 "노노갈등을 지양하고 노조 깃발 아래 모이자"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현행 노동관계법 규정에 따르면 가입대상이 겹치는 경우 복수노조 설립이 불가능하지만, 산별노조에 개별 가입하는 경우 교섭권이 산별노조에 주어져 기존 노조와 중복되지 않기 때문에 가능하다는 판례가 있다고 합니다. 그렇다고 해도 사측이 사무실 제공이나 전임자 임금 지급 등을 용인할 리 없고 언론노조와 직접 교섭하려 하지도 않겠지요.

이런 현실 때문에 지난해 정연주 사장 퇴임에 이은 조합원 징계, 미디어 관련법 투쟁 등의 과정에서 사원행동을 중심으로 노조 탈퇴 움직임이 몇 차례 시도됐다가 무산된 겁니다. 그러나 이제는 온갖 현실적 제약에도 불구하고 더이상 용인할 수 없을 만큼 임계점에 이르렀다는 것이 탈퇴파들의 판단입니다.

탈퇴파의 한 조합원은 "새 노조가 설립된다고 해도 현 노조와 적대관계가 되는 것은 아니고 함께 할 수 있는 사안에는 힘을 합쳐 싸울 것"이라고 말했지요. 노조에서도 조합원들에게 설득작업을 계속하고 있다고 합니다. 직능단체의 당부에 따라 노조 집행부가 타협안을 내놓을 가능성도 있겠지요. 그러나 워낙 노조 집행부와 사원행동 진영 사이에 불신의 벽이 두텁고 갈등의 골이 깊어 한동안은 각자의 길을 걸어갈 것으로 예상됩니다.

김인규 사장 입장에서는 노조의 힘이 약화되니 더욱 입지가 탄탄해지겠지요. 이이제이(以夷制夷)의 전술을 발휘하며 경영권을 더욱 안정시킬 수도 있을 겁니다. 그러나 그렇게만 볼 수는 없는 까닭도 있습니다. 강경 지도부의 노선에 반발해 온건파들이 탈퇴한 것이 아니라 그 반대이기 때문에 산별노조와 기존 노조가 선명성 경쟁을 벌이며 강경투쟁으로 치달으면 오히려 곤혹스러운 처지에 빠질 수도 있지요.

K뷰 플랜 앞에 가로놓인 7가지 난관

김인규 사장은 11월 24일 취임식에서 "반드시 내년에는 수신료를 현실화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약속한 뒤 "수신료를 인상하기 위해서는 우리가 먼저 해야 할 일이 있는데 국민들이 수신료를 내고 싶은 KBS로 만들어나가야 하며 이를 위해 무료 지상파 디지털 TV 플랫폼을 구축하려 한다"고 밝혔습니다.

그는 영국 BBC가 주도하는 프리뷰(FREEVIEW) 채널을 본떠 가칭 'K뷰 플랜(K-VIEW PLAN)을 제안하며 "KBS는 1TV와 2TV를 비롯해 KBS드라마, KBS스포츠, KBS조이, KBS월드 6개 채널에다 24시간 뉴스전문채널까지 7개 채널을 운영하고 EBS의 4개 채널, 그리고 KTV, NATV(국회방송), 문화예술 채널 등 공익방송 채널을 모두 포함한 플랫폼을 만들겠다"는 구상을 설명했지요. 여기에 "MBC와 SBS 등 지상파방송사가 참여한다면 채널이 20개 이상으로 늘어나게 되고 시청자들은 별도의 유료 시청료를 내지 않고서도 양질의 프로그램을 무료로 볼 수 있게 된다"고 덧붙였습니다.

수신료를 인상하기 위한 전제로 먼저 이뤄질 가능성은 매우 희박하지만 시청자들로서는 눈이 번쩍 뜨이는 구상이 아닐 수 없습니다. 지상파방송의 디지털 전환을 획기적으로 앞당길 수 있고 저소득층의 혜택이 늘어나며 상업화의 홍수에서 청정지역이 만들어질 수 있는 것이지요.

그러나 방송가에서는 시큰둥한 반응입니다. '시청자 복지'나 '공익성 확대'를 외쳐온 언론관련 시민단체에서도 김 사장의 '국면전환용'이라고 깎아내리고 있고, 그의 취임을 지지해온 보수신문들도 드러내놓고 말을 안 하지만 종합편성채널 진출계획과 관련해 지상파의 독점력을 강화하려는 시도라며 불편한 심기를 내비치는 듯합니다.

케이블TV방송협회는 보도자료를 내 "멀티모드서비스(MMS) 도입은 KBS 권한 밖의 일일 뿐더러 KBS가 새로운 플랫폼을 구축해 20여 개로 채널을 확장한다면 유료방송은 존폐 위기에 직면하게 될 것"이라며 반대하고 나섰습니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그가 회장을 맡았던 디지털미디어산업협회를 중심으로 하는 IPTV업계 입장에서도 "고향으로 돌아가자마자 한때 몸담았던 곳에 칼을 겨누는 것 아니냐"며 반발할 만하지요.

중요한 것은 업계간 이해관계보다는 타당성과 현실성이겠지요. 영국은 당초 ITV가 유료로 지상파 다채널 방송을 시작했다가 셋톱박스를 무료로 공급하는 부담을 이기지 못하고 2년 6개월 만에 파산했습니다. 이후 2002년 새롭게 무료 지상파 다채널 서비스를 실시하면서 BBC가 주도하고 B스카이B, 채널4, ITV, 내셔널그리드와이어리스가 가세했지요. 지금은 김 사장의 말대로 프리뷰 채널이 디지털 전환을 앞당기는 데 혁혁한 공로를 세웠고 이 덕분에 BBC가 향후 10년간 수신료를 보장받았다는 평가도 낳았습니다.

그런데 좋은 취지와 많은 기대효과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에 도입하기까지는 숱한 난관이 예상됩니다. 우선 영국은 1996년 지상파에서도 플랫폼과 프로그램 공급자의 면허를 이원화했으나 우리나라에서는 유료방송에서만 이원화돼 있어 방송법을 개정해야 합니다. 국회 승인만 있으면 되는 수신료 인상보다 방송법 개정이 훨씬 어렵다는 것은 상식이지요.

둘째로 현재 디지털 전환 특별법에 따르면 채널 대역을 압축 분리해 서비스하는 다중모드서비스(MMS)의 개념이 들어가 있으나 구체적인 추진 방안은 나오지 않고 있어 방송통신위원회 차원의 논의가 필요합니다. 현재 해당 주파수 대역(6㎒)을 허가받은 기존 지상파사업자에 사용권한을 줄지, 쪼개서 따로 허가를 내줄지 현재로서는 알 수 없지요. 케이블협회가 월권이라고 말한 근거가 바로 이것이지요. MPEG2와 MPEG4 기술을 혼용해 채널 수를 증가시키더라도 마찬가지입니다.

셋째로 영국 프리뷰는 SD(표준화질)급 채널로 운영하고 있고 우리나라는 HD(고화질)급 서비스 확대에 주력하고 있어 K뷰 구상이 실현되려면 정책도 달라져야 하고 가전사들의 이해와도 배치됩니다.

현행 MMS 기술표준에 따르면 6㎒ 대역의 한 채널에 HD 1개와 SD 1개, 혹은 SD 4개를 송출할 수 있다고 합니다. KBS 2개 채널로는 1HD+5SD, 혹은 2HD+2SD가 가능한 것이지요. MPEG 기술을 적용하면 한 채널에 HD 1개와 SD 3개가 가능하다고 하니 2HD+6SD까지 나올 수 있지요. 그러나 기존 수신기로는 새로운 채널을 시청할 수 없고 기술적 검증도 필요하다고 하네요.

어쨌든 HD를 기준으로 하면 MMS를 도입하더라도 채널수가 별로 늘어나지 않고 그에 따른 난점도 있지요. 또 일각에서는 MMS를 채널을 늘리는 데만 사용할 것이 아니라 3D 채널이나 부가 서비스 등 차세대 방송기술에 활용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어 논의가 복잡 다양하게 전개되고 있습니다.

넷째는 케이블TV뿐 아니라 위성방송, IPTV 등도 반대에 나설 것이라는 점입니다. 현재 지상 의존하고 있기 때문에 유료방송 플랫폼 사업자들이 지상파 재송신을 거부한다면 곤란한 지경에 빠지게 됩니다. 아날로그에 비해 디지털 전파는 반사파까지 수신할 수 있어 난시청 비율이 줄어든다고 하지만 도심 난시청 가구가 워낙 많아 근본적인 한계가 있지요. 이 문제는 현재 법정으로 비화된 지상파와 케이블의 재송신 공방에도 영향을 미칠 전망이어서 신중한 판단이 필요합니다.

다섯째로 우리나라의 수신료 액수는 월 2,500원으로 연 3만 원입니다. 김 사장의 구상대로 월 5,000원 수준으로 올린다 해도 연 6만 원에 불과하고 이에 따라 2TV의 광고를 축소해야 하기 때문에 가용재원은 크게 늘어나지 않지요. 이에 반해 영국의 수신료는 142.5파운드(29만 6,300원)으로 10배에 이릅니다. 현재 KBS는 디지털 전환 비용을 대기에도 벅찬 처지여서 무료 지상파 디지털 TV 플랫폼을 도입할 재원이 모자랄 것으로 전망됩니다.

여섯째, 여기에 KBS드라마, KBS스포츠, KBS조이 등 알짜 채널들을 무료로 서비스하겠다고 한다면 KBS 사내 및 계열사들의 반발도 만만치 않을 것으로 여겨집니다. 같은 이유로 MBC와 SBS를 끌어들이기는 더 어렵겠지요. 정부가 특단의 지원을 한다면 모르겠지만 지금의 경제사정과 KBS를 둘러싼 여야의 구도와 미디어업계 판도로 볼 때 가능성이 희박해 보입니다.

마지막으로 지금은 공개적인 언급을 꺼리고 있지만 조중동을 비롯한 보수신문들도 유료방송 기반인 종합편성채널을 준비하고 있어 무료 지상파 디지털 TV 플랫폼에 대해 반대할 가능성이 높고 정부로서도 종합편성채널을 신규로 승인하면 수익 기반을 마련해줘야 하기 때문에 이를 선뜻 받아들이기 어려울 겁니다.

KBS는 매체간 균형발전을 저해할 것이라거나 광고시장을 독점하려 한다는 등의 비판에 대해 조목조목 반박하고 해명했지만 난관이 많다는 점은 스스로 인정하고 있습니다. 이를 위해 다른 방송사는 물론 시민단체, 학계, 정부 등과 공감대를 형성해나가면서 단계적으로 문제를 해결해나가겠다고 밝혔지요.

또다시 시험대에 오른 엄기영 MBC 사장

엄기영 MBC 사장이 나머지 임원들과 함께 대주주인 방송문화진흥회에 일괄 사표를 제출했습니다. 방문진은 10일 오후 이사회를 열어 사표 수리 여부를 논의할 예정입니다. 부사장과 본부장들이 사표를 낸 것은 8일 밤 노조 등을 통해 알려졌으나 엄 사장까지 사표를 낸 것은 9일 오전까지 비서실 등 최측근들도 몰랐다고 하네요.

▲ 엄기영 MBC 사장 ⓒMBC
엄 사장은 11월 30일 방문진으로부터 '뉴 MBC 플랜'의 구체적인 이행 성과가 미흡하다는 평가를 받는 과정에서 많은 압박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김우룡 이사장은 "가시적 성과가 없다면 스스로 책임을 지겠다고 공언했다. 스스로 검토하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는군요.

방문진 지적의 핵심은 '뉴 MBC 플랜'에 급격한 미디어 환경의 변화 속에서 MBC의 경영혁신을 위한 큰 밑그림이 부족하고 11월 말까지 단체협약의 일부 조항을 개정하겠다던 약속도 지켜지지 못했다는 것이랍니다. 또 'PD수첩'의 광우병 보도 문제와 '100분 토론'의 시청자 의견 조작 의혹에 대해서도 "사측의 실체 규명 노력이 미흡하다"는 평가가 주류를 이뤘다네요.

엄 사장이 사표를 낸 것이 방문진의 주문에 의한 것인지, 또다른 외압에 의한 것인지, 스스로의 판단인지는 알 수 없습니다. 엄 사장 처지에서는 다른 임원들의 사표를 받으면서 자신은 내지 않으면 몇몇 본부장의 교체를 대가로 임기를 연장하려 한다는 비난이 나올까 부담스러웠겠지요.

이에 대해 MBC 노조 등은 거세게 반발하고 있습니다. 야권 방문진 이사들도 "방문진이 방송섭정위원회로 전락했다는 것을 입증한 것"이라며 꼬집었고 야권 국회의원들도 "공영방송 사장의 임기는 보장돼야 한다"고 주장하고 나섰습니다. MBC 노조는 김우룡 방문진 이사장의 퇴진을 주장하며 투쟁방법과 수위 등을 논의하고 있지요.

방송가에서는 엄 사장의 유임을 점치는 사람이 많은 듯합니다. 2011년 2월까지 임기를 채우기는 어려울지 몰라도 내년 2월 정기주총이 예정돼 있는 터에 굳이 연말에 임시주총까지 열어 물러나게 하겠느냐는 것이지요. 경영 공백도 걱정스럽고 야권과 노조의 반발도 우려된다는 설명도 뒤따릅니다.

어떤 이는 11월 27일 MBC에서 진행된 '대통령과의 대화' 출연을 마치고 이명박 대통령이 "MBC에 좋은 일 있을 것"이라는 말을 남겼는데 이것이 엄 사장의 잔여 임기 보장을 뜻할 가능성이 높다는 말도 하더군요. 4일 엄 사장이 김 이사장과 독대할 때 어떤 밀약이 있지 않았겠느냐는 추측도 떠돌고 있습니다.

이에 따르면 몇몇 본부장(특히 보도본부장과 제작본부장)을 상징적으로 교체하고 엄 사장에게 더욱 강도 높은 경영 혁신을 주문하며 일단 내년 2월 정기주총 때까지 지켜본다는 결정이 내려질 것이라는군요.

그러나 엄 사장이 자리를 지킨다 해도 논란은 피하기 어려워 보입니다. 방문진을 통한 방송 길들이기 의혹이 쉽게 가라앉지 않을 뿐 아니라 강도 높은 경영 혁신을 수행하려는 과정에서 뜨거운 공방이 예상됩니다. 엄 사장이 정연주 전 사장의 길을 택할 가능성은 극히 희박하지만, 그렇다고 방문진의 주문을 그대로 따르기도 어렵겠지요. MBC에 급격히 이런 국면이 조성된 것도 KBS 파업 부결의 영향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 이 기사는 한국언론재단에서 제공했습니다. [이희용 기자  블로그 바로가기]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
이슈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