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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최경진 대구가톨릭대 언론광고학부 교수

MBC 엄기영 사장이 재신임을 묻겠다고 방송문화진흥회(이하 방문진)에 일괄 제출한 경영진 여덟 명의 사표가 반은 수리되고 반은 반려되면서, 향후 MBC의 진로를 두고 자사는 물론 방송계 전체에도 일대 파장이 일고 있다. 사표가 수리된 네 명은 보도본부장, TV제작본부장, 편성본부장, 경영본부장으로 방송의 핵심 부서장이라는 점에서 사태의 심각성은 크다고 할 수 있다.

▲ 엄기영 MBC 사장 ⓒMBC
방송계에서는 드디어 올 상황이 오고야 말았다며 깊은 우려와 함께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는 분위기가 역력하다. 사실 엄기영 사장에 대한 압박과 그 진퇴여부는 이미 8기 방문진 이사회가 꾸려지면서부터 시작됐다. 이사장을 비롯한 대다수 친여 이사들이 포진한 방문진 이사회가 그동안 MBC를 지속적으로 압박해왔기 때문이다.

특히 ‘편파’, ‘왜곡’의 논리로 특정 프로그램들의 공정성 여부를 문제 삼아 보도와 편성 영역까지 간섭을 하는 등 방문진이 사실상 월권행위를 하고 있다는 지적을 받고 있던 차에 벌어진 이번 재신임 파동은 누가 보기에도 그 진정성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경영이 편성을 침해했다는 지적이 나올 수밖에 없는 대목이다.

방문진의 핵심 역할은 MBC 경영에 대한 관리 감독이지만, 제작과 편성에 대한 권한은 MBC에 있다. 경영과 편성을 분리하고 독립시키는 것은 민주주의 국가에서 방송의 자유를 보장하기 위한 가장 기본적인 원칙이다. 경영 관리 감독이 편성 편집권을 포함한다는 주장은 지나친 확대해석이다. 그 같은 억지는 군부독재정권 시절에나 통했던 주장일 뿐만 아니라 학문적으로도 어불성설이다.

사회적 물의를 일으킨 프로그램에 대해 시정 권고할 책임이 있다는 논리로 방문진의 역할을 확대하려는 발언도 적절치 않다. 특히 정부의 입지를 어렵게 하는 비판적 프로그램에 대해 심의 결과가 징계 수준으로 나왔다고 하여 사사건건 이사회가 제작 편성에 간섭한다면, 그렇지 않아도 구조적 문제로 방송통신심의위가 정파성 논리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는 비판을 받고 있던 차에 이는 누가 보기에도 방송통제의 오해를 사기에 충분하다.

이번 MBC 경영진에 대한 사표 수리를 이사장이나 친여 이사들의 MBC ‘살리기’를 위한 충정으로만 이해한다면 이는 순진한 생각이다. MBC 사표 파동에 드리워진 어두운 그림자가 정권의 옷자락까지 이어져있다는 것을 의심할 사람은 아마 거의 없기 때문이다. 방송의 비판기능을 제거하고 방송을 권력의 통제 아래로 두고자 하는 정권의 야욕이 바로 이번 MBC사태의 핵심이라는 뜻이다.

▲ 지난 10일 방문진 이사회에서, 김우룡 이사장의 모습 ⓒPD저널
MB정부 출범 후 그와 같은 야욕의 손길은 비단 MBC뿐만 아니라 다른 방송들에도 여지없이 뻗쳐졌다. YTN 사태가 그랬고 KBS 장악이 바로 엄연한 그 증거들이다. 이제 MBC마저 손아귀에 넣으려는 시도가 명백해졌으니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줄곧 시도했던 방송장악은 거의 가시화된 수준이다. 방송을 전리품쯤으로 여기는 자들의 시각으로는 ‘안정화 단계’에 들어선 셈이다.

엄기영 사장에 대한 사표는 반려됐지만 이를 두고 다시 신뢰를 받은 것으로 판단한다면 큰 착각이다. 결국 이번 사태로 엄 사장은 상당히 큰 부담을 안게 됐다. 애정을 갖고 MBC를 바라보는 국민들로부터도 실망감을 갖게 했을 뿐 아니라, 노조를 비롯한 내부 구성원 상당수도 엄 사장의 처신을 두고 수장으로서의 리더십에 심각한 회의를 갖게 되었기 때문이다.

▲ 최경진 대구가톨릭대 교수
방문진의 사퇴 압력에 못 이겨 사표를 낸 것도 문제였지만 방송의 핵심 구성원들이 교체된 후 MBC가 처하게 될 난관을 어떻게 헤쳐 나가야할 지에 대한 문제는 더욱 클 것으로 보인다. 능력과 신뢰를 잃은 수장은 설령 살아남았어도 더 이상 살아있는 것이 아니다. 현재 엄 사장 자신과 MBC가 처한 난관을 지혜롭게 극복하기 위해서는 그 어떤 외압이나 간섭도 단호히 배척해야한다. 엄 사장의 결연한 자세와 각오가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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