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큰아버지는 남자의 악몽이라는 ‘군대 두 번 갔다 온 사람’이다. 두번째 갔다 온 군대는 한국군이니 별 것이 없는데, 첫번째 갔다 온 군대가 사뭇 낯설다. 큰아버지는 옛날말로 ‘왜정 때’ 만주군이셨다. 만주 독립군도 아닌, 만주군? 이게 무슨 일인가?
당시 한반도는 일본의 영토였다. 서울에 그대로 살고 있으면, 자연히 일본군 징집 대상이다. 그 당시 일본군이 갈 곳은 오직 한 군데, 옛날말로 ‘남양군도’ 뿐이었다. 아무리 친일 작가들이 나발을 불었어도, 사람들의 소문은 막을 길이 없는 법이다. 사망률 100%로 악명 높은 남양군도로 누가 가고 싶겠는가. 그런데 마침, 중국과 대결을 해야 하는 만주국에서는 일본어가 잘 통하지 않는 것이다. 그러다보니, 만주군 내의 통신, 의무, 기술 등의 분야에 일본어 능력자가 반드시 필요하게 되었고, 이것이 남한지역 조선인들에게는 유일한 살 길이 된 것이다. 경쟁률은 하늘을 찔렀고, ‘떨어지면 죽는’ 살벌한 시험이다 보니, 큰아버지께서는 며칠 동안 주무시지도 못하고 잡숫지도 못하실 정도로 긴장하셨다고 한다.
어쨌건, 합격 통보가 날아오자, 할머니께서는 ‘최고의 효도’라는 말씀을 남기셨다고 한다.
‘왜정 때’나 ‘유신 때’ 있었던 일들이 21세기에 다시 벌어지려 하고 있다. 도적떼나 상대하면 되던 소말리아나, 한 차례 휩쓸고 지나간 다음 주둔하면 되던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은 근본적으로 다르다. 살벌하기로는 베트남전에 가깝고, 이라크는 석유 사업권이라도 얻을 가능성이 있다지만, 아프가니스탄은 그야말로 바위밖에 없는 곳이다. 무슨 이득이 있느냐고 물었을 때, 파병론자들이 하는 말이 의외로 간단하다. 미국과의 의리란다. 이래서 역사를 모르는 민족은 망한다고 했나보다.
‘레이건 때’ 아르헨티나 군사 정권은 그야말로 미국을 보스로 둔 똘마니였다. 잘해야 중간보스 정도였을 아르헨티나 군정은, 영국파 보스 영국에게, 자신의 앞마당에 있는 포클랜드 섬을 내 놓으라고 싸움을 건다. 대서양을 건너 지구를 종단해야 하는 영국 해군이 과연 이름값을 할 수 있을지에 수많은 사람들이 내기를 걸었지만, 너무나 싱겁게 영국이 이기고 만다. 이 전쟁이 끝난 후 얼마 못가서 아르헨티나 군정도 막을 내린다. 나중에 알려진 사실이지만, 미국은 겉으로는 중립을 표방하면서, 군사위성으로 얻은 모든 정보를 영국에게 건네 주었다. 자신의 똘마니가 다른 조직 보스와 싸우는데, 다른 조직 보스를 돕는다? 조폭들의 ‘나와바리’ 다툼과 외교가 다른 점이 바로 이것이다. 누구와 친한가가 아니라, 누가 더 전략적으로 중요한 상대인가를 따지는 것이 외교다. 외교에서 의리만 믿고 있다간 한 순간에 쪽박 찬다.
파키스탄은 아프가니스탄과 마찬가지로 무슬림국가다. 그런데, 미국의 아프간 침공 때 파키스탄은 미군에게 기지를 내 준다. 이건 배신이다. 그러나 그 대가로 파키스탄은 핵무기를 국제적으로 공인받는데 성공한다. 의리보다 이익이 중요한 것, 이것이 외교다.
파병론자를 위한 팁 하나. 당시 바람둥이로 명성(?)을 날리며, 여성 잡지의 단골손님이었던 영국의 앤드류 왕자는 헬기 조종사로 직접 포클랜드 전에 참전했다. 파병이 정말로 국익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한다면, 당신들 자식부터 보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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