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스테르담에서 저주가 풀린 걸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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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스테르담에서 저주가 풀린 걸작
[경계에서] 이성규 독립PD
  • 이성규 독립PD
  • 승인 2009.12.21 1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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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는 놀랍도록 파워풀한 영상을 보여준다. 이는 프란츠 파농이 말한 ‘지구의 비참한 이들’의 삶 속으로 관객들을 초대한다. 이 영화는 쉽게 이룰 수 없는 특별한 무언가를 성취했다. 영화는 가혹한 현실 안에서 불타는 석유의 냄새와 더러운 갯벌의 끈적임을 느낄 수 있을 정도로 생생하며 노동자들에게 닥치는 너무나 사실적인 위험과 공포의 장면들을 마주한 관객들은 놀란 가슴을 쓸어내린다. 영원히 끝나지 않을 것 같은 가혹한 삶에 반하여 영화는 우리의 영웅들을 이야기한다. 그 영웅들은 극한의 가난이라는 현실로부터 떠밀려와 가족들을 부양하기 위해 하루 2달러에 목숨을 거는 사람들이다. 이 놀라운 영화가 이룩한 가장 중요한 성과는 아마도, 짓눌린 빈곤의 끝없는 순환에 갇혀있는 우리 영웅들의 용기와 존엄성, 그리고 삶을 대하는 겸허한 태도일 것이리라. 이 영화는 고통으로 빚어낸 걸작이다.”

제22회 암스테르담 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 심사위원단이 어떤 영화에 내린 평가 가운데 일부다. 그들이 말하고 있는 ‘이 영화’란 강경란PD가 제작하고 박봉남PD가 연출한 다큐멘터리 영화 ‘아이언 크로우즈’다. KBS 5부작 다큐멘터리 <인간의 땅> 가운데 2부 ‘철 까마귀의 나날’이 바로 ‘아이언 크로우즈’다.

▲ <아이언 크로우즈>(연출 박봉남 독립PD)
다큐멘터리 5부작 <인간의 땅>은 아시아인의 삶과 희망을 다룬 시리즈로, 그 내용 만큼이나 숱한 우여곡절을 겪은 끝에 완성된 작품이다. 편성에 있어서도 철저하게 외면당할 수밖에 없었던 ‘저주받은 걸작’이기도 하다. <인간의 땅> 5부작 시리즈는 지난 6월에 ‘살아남은 자들’이 첫 방영된 것을 시작으로 해서, 지난 12월 18일 밤 12시에 ‘히말라야의 딸들’을 끝으로 종영됐다. 60분 편성 5부작 시리즈였음에도 불구하고 첫 방부터 종방까지 걸린 기간은 7개월이다. 단순 수치로 계산하면 한 달 반 건너 한 편씩 방송된 셈이다.

3년에 걸쳐 제작된 다큐멘터리 <인간의 땅>은 여의도 독립PD들 사이에서 ‘저주받은 걸작’으로 불리어 왔었다. 그 저주받은 걸작의 한 가운데엔 강경란PD가 오롯이 서있었다. 제작에서 종방까지 4년이란 기간 동안 강경란PD는 제작자겸 연출자로 지내면서 그의 머리가 하얗게 샜다. 8억원이란 돈이 투입됐음에도 불구하고, <인간의 땅>을 가장 인간답게 그리고 숭고한 존엄성에 의한 다큐멘터리로 제작하려다 보니, 돈은 여전히 턱없이 부족했다. 집은 저당 잡혔고, 그래도 모자라 가족의 재산을 징발(?)해야만 했다.

그런데, 그는 요즘 빡빡한 현실 속에서 그나마 웃음을 띠고 있다. <인간의 땅> 5부작 가운데, 그가 직접 연출한 ‘서바이벌즈’와 박봉남PD가 연출한 ‘아이언 크로우즈’가 지난 11월 네델란드 암스테르담영화제로 가는 비행기에 올랐기 때문이다. 거기다가 ‘아이언 크로우즈’는 한국 사상 최초로 본선에 노미네이트되어, 모든 이들의 예상을 뒤엎고 대상을 걸머쥐었다. 암스테르담 국제 다큐멘터리 영화제, 즉 IDFA는 다큐멘터리를 제작 연출하는 이들에겐 꿈의 영화제다. 일생에 단 한번만이라고 IDFA의 스크린에 걸리는 것만으로도 가슴 벅차 하는 영화제다. 세계적 권위도 권위지만, 전 세계의 방송사와 영화의 커머셔너들이 그곳으로 몰린다. 권위와 시장을 동시에 갖춘 영화제가 암스테르담 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다.

▲ 이성규 독립PD
안에서 막힌 바가지가 밖에서 새는 경우는 있지만, 안에서 새는 바가지가 밖에서 새지 않는 경우는 없다. 그런데 <인간의 땅>은 안에서 샌다고 박대당했지만, 밖에선 맑고 깨끗한 물을 잘 담았다는 최대의 찬사를 받았다. 한국의 방송 권력이 유럽의 인텔리보다 지적 능력이 떨어지는 것은 아니었을 텐데 말이다. 안에서 저주받은 걸작이 밖에서 그 저주가 풀어졌다. 이게 우리의 방송 현실이다. <워낭소리>의 데자뷰가 다시 재현되는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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