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통심의위는 ‘PD수첩’에 사과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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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조능희 MBC 전 ‘PD수첩’ 책임PD

결국 〈PD수첩〉의 승리였다. 지난 20일, 서울중앙지방법원 형사13단독 문성관 판사의 입을 통해 낭독된 판결문은, 미국산 쇠고기의 광우병 위험 보도가 공무원의 명예훼손이 될 수 없다는, 제작진이 검찰을 상대로 지난 1년 7개월간의 끈질기게 싸우며 주장했던 바로 그 이야기였다.

46쪽에 달하는 판결문 말미에는 정운천 전 농림식품수산부 장관과 민동석 전 농업통상정책관의 명예훼손에 여부에 대한 판결이 있다. “미국산 쇠고기의 안전성, 특히 광우병 위험성과 피해자들이 공적 지위에서 수행한 이 사건 쇠고기 수입협상의 결과 및 그 과정상의 문제점에 대해, 의구심을 가질만한 충분한 합리적인 이유가 있었다. 정부정책을 비판한 행위는 언론의 자유의 중요한 내용인 보도의 자유에 속하는 것으로 볼 것이다. 명예를 훼손한 것이라거나 그러한 고의가 있었다고 볼 수 없다. 범죄의 증명이 없는 경우다.”

그들은 처음부터 이야기했다. 애초 시사 보도가 국가의 명예를 훼손했다며 형사처벌을 하는 것은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을 뿐더러 표현의 자유를 뿌리부터 뒤흔드는 것이라고. 검찰의 강제구인과 MBC 사내에서의 농성, 20세기에 흘려보낸 줄로만 알았던 이야기들은 21세기에 또 다시 재현됐다. 하지만 “나쁜 선례를 남겨서는 안 된다”며 타협도 거부했다.

▲ 조능희 전 MBC < PD수첩 > 책임 PD ⓒPD저널
판결 다음 날인 21일, 보수언론은 원색적인 용어를 써가며 제작진과 법원을 향해 비난의 화살을 쏘아댔다. 〈조선일보〉 1면 사진이 대표적이다. 안녕너머로 조소하는 듯한 조능희 전 MBC 〈PD수첩〉 책임PD의 모습과 당당한 얼굴로 제작진을 성토하는 민동석 전 정책관의 모습. 이를 본 조 PD는 “내가 봐도 참 야비하게 나왔다”며 그만 헛웃음을 짓고 말았다.

이날 오전 조능희 PD를 서울 여의도 MBC 본사에서 만났다.

- 무죄 판결을 받았다. 좀 쉬었나.
“쉬지를 못했다. 언론에 공개된 변론서 이외에 〈PD수첩〉 홈페이지에 올릴 공개 변론서를 만들었다. 그동안 조중동이 중상모략을 하도 많이 해서 이걸 어떻게 차근차근히 풀어갈까 고민이 많았다. 1심 판결이 굉장히 부담이었다.”

- 법원은 이례적으로 검찰의 기소이유에 대해 조목조목 반박했다.
“우리는 처음부터 이게 형사기소 거리라고 보지도 않았다. 판사는 판결로 말하지 않나. 이번 형사재판에 제출된 자료만도 1만2000페이지에 달하고, 증인만도 17명을 불렀다. 이번 판결이 얼마나 충실했는지 그 근거가 판결문에 모두 드러난다.”

- 하지만 판결 이후에도 검찰과 보수언론은 제작진이 아레사 빈슨 사인을 vCJD(인간 광우병)로 허위 보도했다는 점을 계속 반복했다.
“아레사 빈슨 유족이 제기한 의료소송 소장이 가장 결정적이다. 이들 유족이 아레사 빈슨 사인을 vCJD(인간 광우병)로 제기한 것, 검사가 여태까지 숨기고 있었다. 공익을 위해 일해야 하는 검사가 국민 세금으로 외교라인을 통해서 받았다고 알려진 의료 소장을 여태 공개하지 않다가, 우리가 입수해 공개했다. 사법공조를 운운하며 소송서류 구했다고 하더니 숨기고 결국 국민을 속였다. 그런데〈중앙일보〉는 검찰의 말을 빌려 ‘아레사 빈슨의 소장 어디에도 인간광우병 언급이 없음이 확인되었다’며 거짓말을 유포시켰다. 정말 이건 형사적 범죄행위다.”

인간광우병(vCJD)에 대한 부분도 판결문을 보면 명확해진다. 판결문에 따르면 “아레사 빈슨 보도내용 전부를 보통의 주의를 기울이고 시청하는 시청자에게 주는 전체적인 인상을 고려해 보면, 아레사 빈슨 관련 보도 내용의 의미는 ‘아레사 빈슨이 MRI 검사 결과 인간광우병 의심진단을 받고 사망하였고 현재 보건당국에서 부검을 통해 정확한 사인을 조사하고 있다’는 것으로 볼 것”이라고 지적했다. 재판부는 〈PD수첩〉이 인간광우병 의심진단에 대한 상황을 정확하게 적시한 것에 손을 들어준 것이다.

또 재판부는 취재 당시 아레사 빈슨의 어머니가 여러 차례 아레사 빈슨이 MRI상 인간광우병 진단을 받았다고 밝혔던 점, 아레사 빈슨의 유족이 제기한 소장에 아레사 빈슨이 MRI상 인간광우병 진단을 받았다고 기재되어 있는 점 등을 근거로 이 부분도 보도 내용을 허위로 볼 수 없다고 했다. 검찰과 보수언론이 끈질기게 주장해온 ‘허위사실’ 논란에 쐐기를 박은 셈이다.

번역가 정지민 씨에 대해 재판부가 판결문에서 별도 할애한 점도 이색적이다. 판결문에는 “정지민의 진술은 자신이 경험하지 않은 것을 직접 경험한 것처럼 주장하거나, 검찰 조사 당시 했던 진술을 납득할 만한 이유 없이 이 법정에 이르러 번복하고 있는 점 등에 비추어 그대로 믿기 어렵다”고 판결했다.

▲ 조능희 전 MBC < PD수첩 > 책임 PD ⓒ연합뉴스

- 〈조선〉, 〈동아〉에 따르면 정지민 씨는 “내가 보지도 않은 것을 허위로 진술했다는 것처럼 들린다. 심한 모욕감을 느낀다”고 말했다.
“위 절제술 후유증으로 사망했다거나, 아레사 빈슨 사망 전 비타민 처방 등과 같은 말은 어머니 인터뷰 어디에도 없다. 도대체 어디서 봤다는 건지. 검찰이 압수수색해서 취재원본 확보한 다음 봐도 없으니까, 얼마나 황당했겠냐. 정지민도 재판정에서 자기가 잘못 알고 있었다고 거짓말 해온 것을 자백했다. 이 부분은 판사가 직접 정지민에게 물어보며 자백을 재차 확인했다. 그런데 또 거짓말을 했다. 위증죄를 물을 수 있는 중대한 사안이다. 판사가 오죽하면 판결문에도 썼겠냐. 어떻게 (언론에) 나와서 또 거짓말을 하는지….”

- 결국 검찰이 기소한 미네르바, 정연주 전 KBS 사장, PD수첩은 법원에서 모두 무죄 받았다.
“정권은 전시효과를 노린 것 같다. ‘정부를 비판하면 이렇게 된다’는 본보기로 삼겠다는 것이다. 효과는 상당했다. 검찰도 처음부터 안 되는 것을 알면서 했지만, 수사결과에 상관없이 사건에 관련된 검사들은 영전했다. 검찰총장까지 지명된 사람도 있지 않나. (검찰이) 그래서 권력의 하수인이라는 이야기를 듣는 거다.”

- MBC 사과명령이 발목을 잡은 모양새가 됐다.
“그렇게 안 된다고 했는데…. 평생 가지고 다닐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입수한 미국 소장에서 보듯이 결국 CJD를 vCJD로 고친 게 맞는 거다. 그걸 제대로 고쳤는데 사과명령을 받은 것이다. 방통심의위의 중징계가 결국 엉터리였다. 한나라당과 청와대에서 임명한 사람들이 공정한 심의를 했다고 하지만, 그 안에는 선거 특보도 있다. 그런 사람들이 어떻게 공정성 심의를 하냐. 지금이라도 방통심의위는 제작진에게 사과하고, 사과명령을 취소해야 된다.”

- 〈PD수첩〉 사태 이후 시사 프로그램에서 정부 정책 비판은 고사하고, 오히려 홍보프로그램이 증가하는 등 연성화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크다.
“〈PD수첩〉으로서는 그게 제일 힘들고, 괴롭다. 누누이 말했지만 언론은 권력에 대한 비판과 감시를 꾸준히 해야 된다. 그걸 못하면 언론이 아니다. 이후 쇠고기의 ‘쇠’자가 보도되는 걸 봤나. 대만도 우리와 비슷한 수준으로 미국과 쇠고기협상을 타결했다가 국민 반발이 들끓자 정부가 나서서 내장, 분쇄육 수입을 금지했다. 이런 게 방송되지 않는 현재 상황이 안타깝다.”

▲ 조능희 전 MBC < PD수첩 > 책임 PD ⓒPD저널
- 수사 도중 사임한 임수빈 전 부장검사에 대한 심정은.
“임수빈 전 검사를 생각하면 얼마나 원칙을 지키는 게 힘들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는 검찰이 바이블로 삼아야 하는 헌법에 기초해 원칙을 지켰다. 법조인으로서의 원칙과 양심을 지키는 게 이렇게 힘들다는 것을 보여줬다. 원칙을 지켜야 하는 게 법이다.”

- 제작진에게 하고 싶은 말은.
“미안하고 고맙고 자랑스럽다. 저도 선배고 팀장인데 일이 이렇게까지 돼서…. 내가 어떻게 했으면 고생을 안 시켰을까 하고 생각을 많이 했다. 하지만 그때마다 옛날 일은 생각하지 말자는 것이었다. 한 가지 믿은 게 있다면 어떤 경우에도 저널리스트의 기본 원칙을 지키자는 것이었다. 체포당하고, 농성당하고, 수구언론 이야기를 하든 말든 저널리스트의 기본원칙을 지키자는 것이었다. 왜냐면 우리가 걸어간 길이 선례가 되니까 말이다.”

- 앞으로의 계획은.
“그동안 검찰과 조중동의 거짓말이나, 번역가의 거짓말이 어떻게 사용됐는지, 공개적으로 알려나갈 것이다. 또 조중동의 허위보도에 대해서는 정정보도 청구와 사과 요구를 할 것이다. 이제 법원에서 사용했던 증거들을 차근차근 공개를 하겠다. 국민들이 사건의 본질을 금방 알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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