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변화와 동계철 인도주의 특별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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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변화와 동계철 인도주의 특별법
[우석훈의 세상읽기]
  • 우석훈 2.1 연구소 소장
  • 승인 2010.01.25 14:2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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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석훈 2.1 연구소 소장 (88만원 세대 저자)
이번 겨울은 참 추웠다. 앞으로는 더 추워질 것이다. UN 기후변화협약의 기본 내용이 그런 것이다. 온난화의 영향으로, 일관되게 더워지기는 할 것이지만, 그것이 늘 더워진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만은 아니다. 홍수, 가뭄, 혹서, 혹한, 지진, 쓰나미, 이런 일들이 우리에게는 더 흔해질 것이다. 지구생태계가 온난화로 인한 교란이 생기게 될 것이라는 게 온난화협약에서 기후변화협약으로 이름을 바꿀 당시의 예측이었다.

그 예측이 맞다면, 지금까지 기후의 균형 체계가 깨어지면서 인류가 경험해보지 못한 대규모의 기상이변이 일상적인 일이 될 것이라는 게, 기후변화협약이 딛고 있는 근본 가설이다. 지구 전체로 평균 기온이 1도 변한다고 할 때, 어떤 곳은 10도 이상 더워지고 어떤 곳은 5도 정도 추워지는 일이 같이 벌어지게 된다. 기후의 불균형 현상은 그렇게 예측 불가능할 정도이다.

물론 반론도 있다. 지금의 기후변화 현상 중에는 온실가스로 인한 현상도 있지만, 산업화와 도시화로 인한 열섬 현상이라는 것도 있다는 것이다. 서울이 더워지는 것은 도시화의 열섬 현상이 더욱 강할 것이다. 한반도 인근해의 급속한 해온 상승에는 공장이나 발전소에서 내뿜은 온배수, 즉 더워진 폐수처리와도 관련이 있을 수 있다. 일반적인 해수 온도의 상승과는 상관없이 핵발전소나 석탄발전소 같은 곳에서 매일 같이 배출하는 온배수가 영향을 미치기도 할 것이다. 포스코 광양만의 평균 해수온도는 제철소와 연관하지 않고는 설명이 어렵다.

신자유주의라는 한국 정부가 일관되게 지난 1년 동안 추진한 경제정책은 한국에서 가난한 사람들을 아주 많이 만들어놓았다. 이걸 이해하는 게 한국 사회를 이해하는 첫 걸음이다. 중산층이 “마지막 기회”라고 하면서 사교육이든, 부동산 투기든, 어떻게든 부유층으로 붙으려고 하는 노력과는 상관없이, 우리 주위에 가난한 사람들이 아주 많아졌다. 아무리 부정하고 싶더라도, 한국의 평균적 대학생은 ‘개털’이 되었다. 학자금을 대출하더라도, 원금이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늦게 갚으면, 9000만원 정도를 ‘인생의 빚’으로 안고 살아가야 하는 것이 ‘한국의 정상적인 시민’의 재생산구조이다.

▲ 경향신문 2009년 12월 31일 1면
물론 우린 대부분 이 사안에 대해 눈을 질끈 감아버린다. 한국의 공론장의 틀을 만드는 PD들과 기자들, 그들 역시 집으로 돌아가면 대부분 “마지막 기회”를 외치며 부유층에 합류하기를 바라는 바로 그 선수들이기 때문이다. 우리 주변에 가난한 사람이 얼마나 늘었는지, 참담한 삶이 얼마나 늘었는지, 그들은 ‘희망적’이라는 미명으로 ‘성공사례’만을 보여주기에 바쁘다. 이제 더 이상 신문과 방송은 ‘버려진 것들’을 보여주지 않는다.

그러나 진실은 있다. 한국은 패한 사람을 버린 사회이다. 버려진 것들에 대해서 얘기하면 “지겹다”고 한다. 물론 지겹다. 이것은 앞으로 비슷한 패턴으로, 더욱 더 가혹하게, 한국에서 계속해서 벌어질 일들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겨워도 이것은 진실이다. 가혹하지만, 한국의 진실은, 우리는 계속해서 사람들을 버리고, 대학생에게는 빚을 얹고, 그 빚으로 핸드폰을 팔아먹는 나라이기 때문이다.

겨울철에는 이 진실이 더욱 가혹한 진실이 된다. 기상이변과 가난, 두 가지가 합쳐지면 이번 겨울, 모두가 눈감으려 하는 이 가혹한 진실이 현실이 된다. 지금이 바로 ‘박애’가 필요한 순간이 아닌가? 아니면 혁명이다. 이 겨울, 매일 밤 아마도 수십 명씩 한국에서 죽어나갔을 것이다. 추위로 수십 명씩은 죽어도 그 정도는 신경도 쓰지 않는 한국, 그게 내가 살고 있는 이 더러운 나라이다. TV와 신문에는 없다.

그러나 진실은 변하지 않는다. 길거리에서 죽고, 방에서 죽고, 그렇게 매일 밤 사람이 죽어도 “우리는 잘 몰라요”하고 있는 것이 한국의 지성이고, 한국의 공론장 아닌가? 한 마디로, 이런 나라에 산다는 것이 창피하다. 유럽, 미국, 하다못해 중남미도 이 정도는 아니다. 산 사람이라도 살아야 하지 않느냐? 사람이 죽어나가도 “난 아직 배고프다”고 말하는 사회, 결국 다 죽는다. 지배층이 부패했는데 혁명도 나지 않는 나라, 그런 나라는 역사 속에서 사라진다. 한국이 딱 그 경우 아닌가?

최소한 두 가지만 주문하고 싶다. 앞으로 닥칠 기후변화를 위해서 우리는 두 가지만 서로 약속하자. 첫째는, 겨울철에 철거하지 말라는 거다. 부자들을 위한 뉴타운, 4대강, 도심재개발, 다 좋다. 어차피 너네 나라니까 다 좋지만, 철거는 겨울에 하지 마라. 용산참사도 겨울에 철거하다 생긴 일이다. 둘째는, 세입자는 겨울에 내쫓지 말라는 거다. 지금 내쫓으면 나가 죽으라는 얘기다. 참고로 프랑스 등 유럽에서는 겨울에 세입자 내쫓지 않는 것이 제도화되어 있다. 국회 열면, ‘기후변화와 동계철 인도주의에 관한 법률’, 이런 이름으로 딱 두 조항만 넣어서라도 법률 하나만 만들어주면 된다. 인도주의도 법률로 제도화되어야 한다. 철거민, 세입자, 이만큼이라도 겨울에는 좀 인도주의적으로 생각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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