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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계에서] 박봉남 독립PD

억울하다. 어떻게 이 이야기를 시작할까.

얼마 전 모 PD가 이런 이야기를 전해왔다. ‘일하기가 갑자기 싫어집니다. OBS도 이제 작가들한테 재방료를 지불한다고 합니다. 그것도 작년 7월부터 소급적용해서요. 제가 하는 프로는 거의 PD 혼자 만드는 프로그램인데… 작가는 본방 원고료에 재방료까지 받고, PD는 만날 밤새고 세빠지게 일하는데 작가보다 적은 월급에 남들 다 받는 재방료도 못 받고… 그냥 오늘은 소주나 한잔 하면서 보내야 할 것 같습니다.’

이게 무슨 귀신 시나락 까먹는 소리일까. 바로 재방료 문제다. 이미 알고 있듯이 한국방송작가협회에 소속된 작가들은 KBS, MBC, SBS 프로그램 제작에 참여했을 때 재방료를 받고 있다. EBS는 좀 짜다고 하지만 역시 재방료는 지급하고 있다(이 사실을 모르는 인하우스 PD들이 계시다면 이번 기회에 관심을 좀 가져주시면 고맙겠다).

▲ 지상파 방송3사.
그런데 이제 OBS까지 여기에 동참한다고 하니 일단 반가운 소식임에 틀림없다. 평소 동고동락하던 작가들이 자신의 권리를 더 확보하게 됐다는 사실에 거듭 축하를 보낸다. 근데 왜 자꾸 억울한 생각이 드는 것일까. 평소 돈 버는데 애써 태연한 척 하면서 좋은 작품으로 승부하겠다고 폼을 잡아왔던 나 같은 경우에도 이 사안만큼은 진짜 속이 뒤집어진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이제 대한민국의 방송작가들은 외주제작 프로그램의 경우에도 재방료를 지급받게 됐다 (작년 9월까지만 해도 방송사 자체 제작 프로그램에 한해서만 재방료를 받았었다).

작가들이 재방료로 일 년에 십원을 받는지 오백만원을 받는지 여기서 구체적으로 논할 자리는 아닌 것 같다. 다만 창작자로서의 권리를 인정받고 있다는 점에서 작가들이 부러울 따름이다. 우리가 언제 큰 돈 벌자고 이 일을 하는 건 아니지 않은가.

그 뿐인가. 우리와 늘상 같이 작업하는 성우들도 한국방송실연자협회를 구성하여 2003년부터 재방료를 받아내고 있다. 그러고 보면 재방료는 마땅히 모든 제작주체들이 방송사에 요구할 수 있는 권리인데 독립PD만이 이 마땅한 권리를 누리지 못하고 자기가 만든 프로그램이 재방, 삼방 심지어 십방이 되어 그 수익을 방송사가 가져가는데도 우리는 멀뚱멀뚱 쳐다보고만 있는 꼴이다.

이름만 대면 모두 아는 모 방송사 프로그램의 경우 재방을 위한 재편집을 제작사에게 요구한다. 그런데 재방료를 지급해주기는커녕 재편집비용으로 겨우 한편에 10만원 남짓한 비용만을 지급할 뿐이다. 한 마디로 지나가던 개도 욕을 하고 갈 일이다. 왜 이렇게 제작사가 방송사의 밥이 되었을까. 넉넉한 제작비를 준다면 이런 관행을 그냥 묻고 넘어갈 수도 있겠다. 헌데 억 소리 나는 낮은 제작비에 저작권도 싹쓸이하고 있는 상황이고 보니 작가협회의 선전에 기쁘면서도 부아가 치미는 것은 어쩔 수가 없다. 하기야 이는 방송사를 탓할 일이 아니다. 자신의 권리를 찾지 못하고 있는 독립제작사와 독립PD들이 바보 머저리인 게지.

이 억울한 사연을 누구에게 호소할까? 아니다. 예나 지금이나 내 생각은 똑 같다. 척박한 방송현실을 탓하지 말라고, 이겨내며 실력을 키우라고, 그렇게 힘을 키워서 방송사의 낡은 관행에 정당한 문제제기를 하고 특약을 맺어서 우리의 연출저작권을 가져와야 한다고.

▲ 박봉남 독립PD
올해 KBS 수신료 인상문제가 제기될 것이다. 수신료 현실화가 필요함에도 불구하고 선뜻 찬성하기 어려운 여러 측면이 있다. 그러나 이것만은 분명히 말하고 싶다. 수신료 올리려면 독립제작사에게도 마땅히 재방료를 지급하라, 저작권 공유하고 낮은 제작비도 현실화 하라.

그냥 수신료만 올리려고 한다면? 모든 독립PD들에게 제안한다. 그렇게 되면 집단적으로 파업하고 이 일을 접어버립시다. 올해 4살이 되는 독립PD협회가 해야 할 가장 큰 과제는 바로 이것이다. 그리고 인하우스 피디 여러분, 많은 관심과 지원을 부탁드리겠습니다. 여러분들이 도움이 필요합니다. 꾸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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